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기쁨조 노릇을 했다.
인사동에 사진전을 보러갔다가 55-67세 되시는 분들을 만날 일이 있었다.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화두 타파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얼굴과 눈빛이 아주 편안해 보이는 분들이었다.
밥을 먹으면서 사는 것에 관하여 이러저러한 이야기가 나왔다.
온 세상이 다 아름답게 보이는 아주머니 할머니들이었다.
"전 살고 싶어서 산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럼 화두는 왜 타파 하려고 했냔다.
죽는 것은 상관없지만 뭔지 모를 이 놈, 이 끄달리고 시달리는 이 놈의 정체를 알고 싶었다고 했다.
바로 그 것이란다.
준 재벌의 집에서 태어나 단 한번도 가난하게 살아 본 적이 없이 살다가 준 재벌 집으로 시집을 가셔서 지금까지도 잘 살고 계시는 분이란다.
마흔 다섯에 자기 정체를 흔드는 사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마음을 끌고 다니는 놈이 누구인지 모르고는 도저히 살 수가 없어서 화두 공부를 했고 타파했다고 한다.
얼굴이 평화 그 자체였다.
다른 분이 말씀 하시기를.
"이미 죽고 없는데 왜 죽고 싶나?"
결론은 소멸에 관한 이야기셨다.
이미 내가 없는데 뭐라고 말씀 하셨는데 어려웠다.
식사 후.
차를 대접하겠다고 하셔서 가회동엘 갔다.
전 윤보선 대통령 저택 부근이었다.
단아한 한옥이었는데 무척이나 맘에 들었다.
방엔 작은 책꽂이가 있었고 차 마실 수 있는 도구와 방석이 전부였다.
침실을 보고 싶다고 했더니 오직 이불과 요만 있다고 하셨다.
꿈에도 그리던 그런 집에었다.
작고 아담하고 소박하면서 깔끔한.
무슨 차를 줄까 물어 보셨는데 같이 간 선배가 차는 무슨 차냐며 노래방엘 가자고 했다.
차 좋아하는데,,,못내 아쉬워 하는 내 표정을 보시더니 차 한곽을 주며 가져 가라고 했다.
고맙다고 받아 들고 노래방으로 갔다.
나이가 제일 어린 나부터 노래를 하라신다.
켁, 맨정신으로? 어찌 노래를?
원래본래 노는 것엔 취미가 없는지라 내 입에서 노래방 가자는 말을 지금 껏 해보지도 않았고 그나마 술이나 취해야 노래를 불렀던 나로서는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어쩌랴, 도리가 없었다.
이문세의 나는 행복한 사람이란 노래를 불렀다.
내 노래에 맞춰 네분이 춤을 추는데 당혹스러웠다.
그 다음에 67세 되신 분이 노래를 부르셨다.
이어지는 곡들이 이미자, 조미미, 문주란, 남인수 등등.
한분이 노래를 부르고 날 시키고 노래를 한분이 부르고 날 시키고 해서 딴에는 괴로왔지만
빼고 자시고 할 자리가 아니라서 에라 모르겠다 그러고는 구닥다리 노래들을 불러 드렸더니 너무나도 좋아라들 하셨다.
나중엔 아주 계속 나만 부르라는 것이었다.
선배가 아는 분들이라 한분을 제외하고 초면인 분들이었는데 10년지기라도 되는냥 대해 주셨다.
노래를 부르는데 딱 중이야, 첨 볼 때부터 왜 이렇게 친근감이 드나 했더니 이제 보니 중이네 그러면서 얼굴을 만지고 머리를 깎았을 때를 상상해 보신다고 머리를 가려보고 목탁 같구만이라며 웃고 난리가 아니셨다.
거의 장난감이 되었다.
묘한 기분이었다.
어쨌든 행복해 하시는 모습들이 좋았다.
자주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 또 그런 자리가 있으면 굳이 피 할 것 같지 않았다.
누군가 웃게 만드는 일.
좋은 일임에 틀림이 없다.
그걸 알면서 피 눈물을 빼다뉘.
아프다.
*하루 3시간씩 차를 타고 2~3시간식 회의를 한다. 많이 피곤하다.
눈을 지긋이 감고 부르던 할머님 한 분이 부르던 노래 올린다.
가사가 확 들어 왔다.
저 할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시면서 이 노래를 불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