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허무한 십년.

monomomo 2002. 9. 22. 06:34









허무한 십년



십년을 넘게 알고 지내는 사람이 있다.

친하지도 않았고 좋아하는 유형의 사람도 아니었다.

-싫어한다에 훨씬 가까운-

그저 알고 지내는 사이다.

-아니 안다기 보다 모른다고 얘기해야 더 옳다-

자주 부디치면 일년에 다섯 번? 그것도 우연히

자주 안 부디치면 삼년에 한 번? 그것 역시 우연히

내가 가끔씩 다니는 까페에서다.

그 사람과 부디치면 어색하고 덤덤하게 눈인사를 한다.

맥주가 한 잔 두 잔 들어가고 어색한 침묵이 흐른 후

서로 별로 궁금하지도 않으면서 “잘 지냈느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러다가 좋아하는 음악이 나오면 쌍둥이처럼 고갯춤을 추기도 하고 발목춤을 추기도 한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 음악을 좋아하느냐?" " 나도 좋아하는데" 하면서

“한 잔 하실래요?”라며 술잔을 내밀면 “그러죠!”하고 받는다.

시간이 흐른 후 우리는 각자 자기 앞에 놓인 빈 술 병 만큼만 계산을 하고

그 전에도 그랬듯이 “나중에 또 뵈요!”하면 “그러죠!”하면서 기약 없는 약속을 하고

헤어질 수 있었던 사람.

정말로 서로에게 궁금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기에 그 이상의 말이 필요 없었던 길거리표 친구.

그런 그 사람이 만날 때마다 내게 묻는 것이 있었다.

“고야라는 과일을 아느냐?”고

나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관심이 없었으니까.

그 사람을 또 우연히 서점에서 부디쳤다.

까페 이외의 공간에서는 첫 부디침 이었다.

“어머! 안녕하세요?”라며 얼굴에 반가운 기색을 띄고 인사하는 그 사람의 표정이 너무 어색해서

“웬일이냐?”고 물었다.

“책을 사러 왔다”고 그 사람은 대답했다.

“아! 그래요? 그래요 그럼 그러세요”라고 말하자

“예 그럴게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헤어졌다.

그 후 정확하게 기억은 없지만 최소한 한 달은 넘었을 어느 날 그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누구냐?”고 묻는 내게 그 사람은 “누구”라고 대답했다.

깜짝 놀란 나는 얼떨결에 물어봤다.

“어떻게 지내느냐?”고

그 후 나는 거의 한 시간 동안 그 사람이 어떻게 지냈는지를 들으면서

“그냥 잘 지내죠?”라고 물을 걸 그러면 “예! ”한 마디로 끝날 걸.......

이런 저런 후회를 하며 건성으로 대답을 하자 눈치를 챘는지

“술을 한 잔 살 테니 만나자”고 했다.

그 날도 어김없이 “고야라는 과일을 아느냐?”고 물었다.

“몰라요. 근데 왜 자꾸 그 과일을 아느냐고 물어요?” 내가 한 말 이었다.

“적어도 한 번 쯤은 그 과일에 대해서 알아오길 바라면서 물었어요” 그 사람의 대답이었다.

“그러면 자세히 얘기 하세요. 그냥” 내가 한 말 이었다.

“한 번도 묻지 않았잖아요” 그 사람이 한 말 이었다.

내가 물었다. “맛이 어떠냐”고

그 사람이 그 과일 맛을 설명했다.

그 설명을 들으며 생각을 했다.

아! 그랬었구나!

한번도 묻지 않았었구나!

허무한 십년이여!





짱짱 ^*^))// 방글방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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