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평화로운 우울.

monomomo 2002. 9. 9. 02:51









평화로운 우울





계절이 기다린 자 만을 위해서 오는 것은 아니겠지만

올 가을은 나에게

참으로 향기롭게 다가왔다.

거리를 메우는 스산한 바람

등선에 따사롭게 내리쬐는 하오의 광선

그리고 삽화처럼 떠오르는 유년의 단상들

......

......

......


일요일

동료들이 만든 단편 영화를 보기 위해 ㅈ대학에 갔다

축제를 마친 후여서인지 지저분하게 널려있는 쓰레기, 막걸리 냄새를 맡으며

물어물어 건물을 찾아 씩씩하게 걸어갔다

......

......

......


눈알이 빠지도록 본 영화의 느낌은

제로

제로

제로

“고생 많았다” “수고하셨어요” “......”

겉 인사들이 떠돌며 복도를 메우는 걸 뒤로하고

뜻 맞는 동료들과 언덕길을 내려왔다.


조금 뒤 처져 걷던 나는

한 때 좋은 감정을 느꼈던 남자 옆에

도토리 만한 계집아이가 그의 새끼손가락을 열쇠 고리 쥐듯 쥐고 또박또박 걷는 것을 보았다.

둘이 결혼 할 것이라는 소문을 이미 들은 후였지만

뭔가 설명 할 수 없는 감정이 일었다.

-그와 사귀지도 않았고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슬픔도 아니고

허허로움도 아니고

......

......

......


스물 여섯인 그를 처음으로 봤을 때

......


스물 넷인 나로서는

......


설레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


단단해 보이는 턱

보스 타입의 자신 만만한 입술

상대방을 압도시키는 눈

걸을 땐 유난히 어깨에 힘을 주고

다리가 먼저 나가는 듯한 정면을 향한 몸 짓

서른이 넘은 그 나이에 여전히 어려 보이고

가늘고 숱 많은 머리카락도 여전히 찰랑거리고

그 씻은 듯 한 태도

그 정갈함

순간

그가 스물 여섯으로 보여져 스물 넷이 되어버린 나

앳되고

당황되고

무엇이 그를 그렇게 순수하게 만들었을까?

적어도 그렇게 보이게 하는......

버스 정거장에서 잠시의 눈 맞춤

“오랜만이야. 뭐하고 지내?”

“그냥......”

그리고 빽빽한 어색

“여전한 것 같애”

경어도 반말도 아닌 어색한 말투를 써가며 던지는 그의 말에

고개를 돌리지도 못 한 그런 순간

......


몇 마디의 질문에

-누구에게나 할 수 있는 평범한 인사말이라는 것을 뻔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희!

환희!

환희!

감정을 드러내기엔 멋 모르고 서 있는 그의 부인 될 여자의 눈 인사가 너무 맑아서 감춰지고

쑥스러운 듯 웃다가 이내 타인인







......

......

......


기억 안에서만 존재해 있었던 작은 감정 하나를 끄집어내어 생각하게 했던

스산한

일요일이었다.





짱짱 ^*^))// 방글방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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