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간에 내게 푸대접 받았던 책들을 꺼내 봤다.
책꽂이에 수북히 쌓인 먼지를 가운뎃 손가락으로 그어 봤다.
엄지로 문질렀더니 회색 먼지가 지우개 밥처럼 뭉쳐진다.
문득 검지 손가락이 존재하는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해 주던 선배의 말이 떠 올랐다.
선배는 검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말했다.
"이 손가락이 왜 있는 줄 아니?"
"몰라"
"마티니를 시키라고 있는 거야. 저기요~~여기 마티니 한잔 주세요. 어때? 어울리지 않아"
동의를 구하려는 그 눈빛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엄지-내가 왕이야.
약지-결혼반지 끼라고.
새끼-약속할 때.
이렇게 설명하더니 중지는 왜 있지?라고 물었다.
그때 대답 할 수 없었던 것, 지금사 알았다.
먼지를 문지를 때 쓰라고.
다른 사람들은 먼지를 어떤 손가락으로 문지르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꼭 가운뎃 손가락으로 먼지를 문지른 후 엄지로 뭉쳐서 후~~하고 불어 턴다.
먼지를 털며 책을 꺼내 접혀진 페이지를 펴 냄새를 맡아 본다.
오래된 책에서 나는 냄새는 항상 대상 없는 그리움이 묻어나는 아련함을 준다.
책머리에 손을 얹었다 떼기를 반복하다 몇 권 골라 침대에 던졌다.
딱 한권만 뽑아 들려고 했는데 제목이라 이름 붙여진 활자들이 일제히 소리를 질러 댄다.
"나도 여기 있어요오~~!!"
"오늘은 여기까지, 니들은 다음 기회에"
던져진 책을 이리저리 펼쳐 본다. 자끄를 다시 한번 읽어 볼까? 하다가 고른 한 권의 책.
Caroline Bongrand-밑줄 긋는 남자
'96,1,2 화.라고 써진 거 보니 10년 전에 산 책이다.
10년 전 난 어느 대목에 밑줄을 그엇을까?
-밑줄을 그을 땐 Tombow MONO 2B 연필이 최고다. HB 보다 느낌이 훨씬 부드럽고 4B보다 덜 무른 그 느낌, 스~으~윽~하고 나는 소리도 좋고, 밑줄을 지울 일이 없으니 지우개가 달리지 않았어도 좋다 -
읽었던 책 다시 읽을 때 재미난 건 당시에 공감이 가는 부분에 가끔씩 밑줄을 긋거나
페이지 상단을 1센티쯤 접어 놓은 흔적을을 발견할 때다.
아..저땐 내가 이런 것에 공감을 했었구나,,,
머리 나쁜 사람은 그렇게라도 해 놔야 나중에 편리하다.
내가 좋아하는 파일에 가끔씩 마킹을 해 놓는 이유도 게으르고 머리가 나빠서 듣고싶은 곡이 있는데 뭔지 모를까봐서다.
그리고 실제로 언젠가 들었던 곡 다시 듣고 싶을 때 못 찾아서 못 듣는 곡이 더 많다.
지금은 따로 모아 놓지만.
음악이 없는 적요함.
간만이다.
밤새 울어대던 발정난 암코양이가 잠잠해졌다.
애가 우는 건지 고양이가 우는 건지 구별이 안 가게 울어대더니 뭔가 해결 된 모양이다.
이제 책이나 읽다가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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