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그저,,,그렇게

빈.

monomomo 2007. 7. 14. 23:22

낮달

 

                            - 허진년

 

 

세상을 잊고 사는 낮달은

빈 배이다

 

어둠을 밝히던 색깔도 지워버려

하얗게 비어 있기에

하늘 모서리를 반 틈이나 베어 물고 있어도

누구도 나무라지 않는 것은 채워진 것이 없기 때문

흰구름이 앞다투어 지나쳐도

탐할 것 없기에 비켜서라 채근도 없다

존재하여도 인식되지 않기를 원하여

빈 배로 세상을 건넌다면

어느 누구도 맞서거나

부딪쳐 오지 않는 것인데

 

제 빛으로 사는 욕심으로

해거름이 돌아오는 저녁마다

아삭한 얼굴 단장으로

둥근 달하나 밀어 올린다

 

 

 

 

빈 배

 

-장자

 

한 사람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가

빈 배와 그의 배가 부딪치면

그가 아무리 성질이 나쁜 사람 일지라도

그는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그 배는 빈 배 이니까

그러나 배 안에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 사람에게 피하라고 소리칠 것이다

그래도 듣지 못하면 그는 다시 소리칠 것이고

마침내는 욕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이 모든 일은 그 배 안에 누군가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그러나 그 배가 비어있다면

그는 소리치지 않을 것이고

화내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강을 건너는 그대 자신의 배를

빈 배로 만들 수 있다면

아무도 그대와 맞서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그대를 상처 입히려 하지 않을 것이다

 

*

 

냉장고에 있던 썩은 밤을 꺼내서 버렸다.

썩은 오이도 버렸다.

썩은 배추와 썩은 토마토도 버렸다.

먹지도 못하면서 왜 사왔는지.

모르긴 해도 벌 받을 것이야.

이태나 죽치고 있던 쌀을 모조리 다 가져다 미싯가루를 만들어 버린 후

쌀 없이 산지 벌써 두어달째 접어 든다.

아직은 살만하다.

오늘은 썩어가는 양파를 다듬었다.

다듬으면서 생각했다.

이건 먹긴 먹을 건가?

하여간 다듬어서 냉장고에 넣어 뒀다.

이는 아직도 치료가 덜 되었다.

뭘 씹기는 커녕 물만 닿아도 시리고 아프다.

아스피린 두알을 먹고 이틀을 견뎌 보기로 했다.

뭐가 잘못 되었는지 아무래도 다시 치료를 해야 할 것 같다.

뒷골이 땡기는 게 고개를 가누기 힘들만큼 뻐근하고 심상치 않다.

과일 하나 제대로 깎지 못하는 왼손을 가지고

겨우 할 수있는 일이 자판이나 두드려 대는 일 뿐이니

,,,,,,

겁없이 책을 또 턱하니 4권을 사왔다.

빌려 보기로 결심했는데 신간이 나오면 사고야 마는 이 버릇을 어찌 고칠까나.

많은 건 아니지만 책꽂이 네개 분량의 책을 버리고도 다시 꽉 차고

빌려 본 것은 그보다 몇배나 더 많아 기억에도 없을 만큼 죄 도리를 쳐대니

불쌍한 내 눈은 주인을 잘못 만나 영화에 책에 몹시도 시달리다

지금 엄청나게 반항을 하기 시작했다.

침침침침.

노안이 올때라고 자위를 해 보지만 너무 혹사 시킨 것 같다.

내가 겨우 할 줄 아는 것이 영화나 보고 책이나 읽는 것이 전부라면

아무래도 눈을 좀 살살 달래야 할 때가 온 것 같으다.

그나저나 돋보기는 어디로 갔을까나?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인다.

 

빈 배.

 

와 닿았다.

 

빈.

중재를 자청하고 나선 나름대로 우리 동네에선 높은 분.

빈.

그래.

빈.

그래도.

빈.

하물며.

빈.

이 밤.

빈,빈,빈만 생각하다 빈사 상태가 될 것 같으다.

 

도대체 어디까지 가야 제대로 비는 것인지.

내버려 두면 되는 건가?

그러면 욕심이 없는 것이 되는 것일까?

사실,  욕심이 있고 없고 억울하고 뭐 그런 문제보다도 귀찮다.

귀찮고 게을러서는

빈 것이 아닐 것이야.

 

 

 

 

에라 모르겠다.

소주나 사러 갈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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