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달
- 허진년
세상을 잊고 사는 낮달은
빈 배이다
어둠을 밝히던 색깔도 지워버려
하얗게 비어 있기에
하늘 모서리를 반 틈이나 베어 물고 있어도
누구도 나무라지 않는 것은 채워진 것이 없기 때문
흰구름이 앞다투어 지나쳐도
탐할 것 없기에 비켜서라 채근도 없다
존재하여도 인식되지 않기를 원하여
빈 배로 세상을 건넌다면
어느 누구도 맞서거나
부딪쳐 오지 않는 것인데
제 빛으로 사는 욕심으로
해거름이 돌아오는 저녁마다
아삭한 얼굴 단장으로
둥근 달하나 밀어 올린다
빈 배
-장자
한 사람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가
빈 배와 그의 배가 부딪치면
그가 아무리 성질이 나쁜 사람 일지라도
그는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그 배는 빈 배 이니까
그러나 배 안에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 사람에게 피하라고 소리칠 것이다
그래도 듣지 못하면 그는 다시 소리칠 것이고
마침내는 욕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이 모든 일은 그 배 안에 누군가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그러나 그 배가 비어있다면
그는 소리치지 않을 것이고
화내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강을 건너는 그대 자신의 배를
빈 배로 만들 수 있다면
아무도 그대와 맞서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그대를 상처 입히려 하지 않을 것이다
*
냉장고에 있던 썩은 밤을 꺼내서 버렸다.
썩은 오이도 버렸다.
썩은 배추와 썩은 토마토도 버렸다.
먹지도 못하면서 왜 사왔는지.
모르긴 해도 벌 받을 것이야.
이태나 죽치고 있던 쌀을 모조리 다 가져다 미싯가루를 만들어 버린 후
쌀 없이 산지 벌써 두어달째 접어 든다.
아직은 살만하다.
오늘은 썩어가는 양파를 다듬었다.
다듬으면서 생각했다.
이건 먹긴 먹을 건가?
하여간 다듬어서 냉장고에 넣어 뒀다.
이는 아직도 치료가 덜 되었다.
뭘 씹기는 커녕 물만 닿아도 시리고 아프다.
아스피린 두알을 먹고 이틀을 견뎌 보기로 했다.
뭐가 잘못 되었는지 아무래도 다시 치료를 해야 할 것 같다.
뒷골이 땡기는 게 고개를 가누기 힘들만큼 뻐근하고 심상치 않다.
과일 하나 제대로 깎지 못하는 왼손을 가지고
겨우 할 수있는 일이 자판이나 두드려 대는 일 뿐이니
,,,,,,
겁없이 책을 또 턱하니 4권을 사왔다.
빌려 보기로 결심했는데 신간이 나오면 사고야 마는 이 버릇을 어찌 고칠까나.
많은 건 아니지만 책꽂이 네개 분량의 책을 버리고도 다시 꽉 차고
빌려 본 것은 그보다 몇배나 더 많아 기억에도 없을 만큼 죄 도리를 쳐대니
불쌍한 내 눈은 주인을 잘못 만나 영화에 책에 몹시도 시달리다
지금 엄청나게 반항을 하기 시작했다.
침침침침.
노안이 올때라고 자위를 해 보지만 너무 혹사 시킨 것 같다.
내가 겨우 할 줄 아는 것이 영화나 보고 책이나 읽는 것이 전부라면
아무래도 눈을 좀 살살 달래야 할 때가 온 것 같으다.
그나저나 돋보기는 어디로 갔을까나?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인다.
빈 배.
와 닿았다.
빈.
중재를 자청하고 나선 나름대로 우리 동네에선 높은 분.
빈.
그래.
빈.
그래도.
빈.
하물며.
빈.
이 밤.
빈,빈,빈만 생각하다 빈사 상태가 될 것 같으다.
도대체 어디까지 가야 제대로 비는 것인지.
내버려 두면 되는 건가?
그러면 욕심이 없는 것이 되는 것일까?
사실, 욕심이 있고 없고 억울하고 뭐 그런 문제보다도 귀찮다.
귀찮고 게을러서는
빈 것이 아닐 것이야.
'그냥,,,그저,,,그렇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몰랑...노래래 (0) | 2007.07.16 |
---|---|
,,,,,,,,,,,,,아 멀랑 (0) | 2007.07.15 |
공평한 세상. (0) | 2007.07.13 |
됴타 (0) | 2007.07.12 |
꿈 해몽 (0) | 2007.07.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