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

내가 좋아하는 먹거리.

monomomo 2008. 5. 24. 01:28

좀처럼 아프지 않는 선배가 감기 기운이 있다고 하더니 드디어 감기에 걸린 모양이다.

부모님 두분 다 북한에서 피난을 온 분들이라 빨갱이라면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 게거품을 무는 분들이란다.

하여 딸이 인권 연대나 국립공원을 사랑하는 모임, 모정당, 은평시민넷 이런 엔지오 활동을 하는데 대해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란다.

매일 아침 조선 일보를 이잡듯이 꼼꼼하게 읽고 종종 선배를 공격한다 한다.

쩝, 50이 넘은 그 나이에 웬 시집살이인지.

어제 아침에도 그런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어제 아침 일찍 집으로 와서 하룻 밤 자고 오늘 가면서 내일은 짐을 싸 와 당분간 지금 사무실로 꾸민 방에 머무르겠다고 한다.

화가 잔뜩 난 것 같다.

촛불 집회에 나가기도 하긴 하지만 일일이 어디냐고 감시하는 전화를 종종 받으면 무척 쌀쌀맞게 대답을 하고 끊어 버린다.

선배나 선배 부모나 다 이해가 간다.

그들 사이를 보면 사람 사이에 절대 용납이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핏줄 아니라 핏줄 할애비로 묶어 놔도 안되는 이놈의 이데오로기.

 

어쨌든, 선배가 아팠다.

회 냉면이 먹고 싶단다.

사람들은 아프면 왜 꼭 먹고 싶은 걸 먹고 나면 나을 것만 같은 착각을 하는지.

내게도 그런 음식이 있다.

바로 '배'다.

지금은 건강하지만 어릴 때 잦은 병치레를 해대느라 시름시름 앓고 있을라치면 왜 그렇게 배가 먹고 싶었는지.

배 하나만 먹고나면 벌떡 일어날 것만 같은데, 당시 배라는 것이 추석이나 설날 이외엔 씨알도 구경을 못할 시절이었으니.

해서, 난 혹시라도 아프면 먹을려고 지금도 다른 건 몰라도 사시사철 거의 배는 떨어드리지 않고 산다.

아픔에 대한 공포로부터 해방 될 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줬던 그리운 과일이다.

 

회냉면을 먹기 위해 인터넷을 뒤져서 응암 오거리로 갔다.

생각만큼 맛난 건 아니었지만 엇비스무리한게 그래도 선배의 헛헛증 쯤은 해갈이 될 정도의 맛은 있었다.

난 당연히 만두도 시켰다.

음홧하하하하. 마안두우~~~

 

선배가 물었다.

"넌 왜 만두를 그렇게 좋아하면서 다른 건 다 만들어 먹어도 만두는 안 만들어 먹니?"

"어렵잖아"

"뭐가 어려워?"

"만두 피 만드는 게"

"사서 하면 되잖아"

"너무 얇고 작아서 싫어"

"만두피 큰 것도 있어"

"그래? 그럼 나중에 한 번 만들어 먹어 보지 뭐"

 

그러면서 맛잇는 음식 이야기를 시작했다.

배가 엄청 부르고 먹고 싶은 거 다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먹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늙었구나,,,싶었다.

"우리가 왜 이러니? 배 부른데도 먹는 타령 이야기만 하고 있네?"

"늙었으니까 그렇지. 할 거 뭐 있나? 맛있는 거 먹고 사는 거 이외에 달리 할 일이?"

 

먹는 타령을 적어 보자면.

 

-만두

-회냉면

-바지락 칼국수나 수제비

-녹두 빈대떡

-냉모밀

-살얼음 동동 뜬 동치미

-버섯굴죽

-생선초밥

-오징어나 낙지 볶음

-감자 넣은 갈치조림

-굴 넣은 무나물

-콩나물 김치국

-복지리

이상이 내가 아프거나 입맛이 없을 때, 하여간 툭하면 생각나는 음식이다.

 

그 밖에 또 종종 생각나는 음식.

-멸치로 육수를 우린 가는 국수

-야채 샐러드

-갓김치

-연포탕

-대구탕

-해물샤브샤브

-배나 토마토, 오이,홍시. 곶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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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어느 자리에서 어느 분이 한 말 중 기억나는 말 한 마디.

 

"짜장면이 자장면이 된 후부터 짜장면이 아니라서 그런지 영 짜장면 맛이 안나. 짜장면이 짜장면스러워야지 자장면이 뭐야 자장면이" 

하하하하.

내용물은 똑 같은데 짜장면이 자장면으로 불리워진 후 그 맛이 안 난다며 덧 보탠 한 마디가 더 웃겼다.

"효과도 그래. 효꽈가 아닌 후부터 별 효꽈가 없어. 효과, 효과가 뭐야. 세련도 그래. 쎄련되지 못하게 세련이 뭐야"

 

 

 

 

 

 

 

 

 

강병철과 삼태기 - 냉면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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