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

농활 후기 - 마음으로 웃어야 웃는 거지요.

monomomo 2009. 6. 14. 22:33

 

 

은평 시민 회원들은 해마다 가을로 농활을 간다.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여차저차한 이유로 참석하지 못했다. 이번엔 참석하리라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농활 계획이 선약이 있는 날로 갑자기 잡히는 바람에 잠시 망설이다가 선약을 미뤘다. 아침 일찍 출발을 했지만 노는 토요일이라 그런지 도로가 많이 막혔고 휴게실은 북새통이었다. 휴게소 쉼터에서 준비해간 김밥이랑 샌드위치로 아침을 먹는데 어찌나 햇살이 따가운지 햇볕 알러지가 있는 나로서는 함께 가는 회원이 팔을 챙기라고 해서 챙겨오긴 했지만 속으로 은근히 걱정이 됐다.

마을 중간쯤 오른쪽 끝자락 양지바른 곳에 위치한 선생님 집에 도착하자 하늘이 도우하사 구름이 끼고 선선해져서 작업 조건이 최적인 날씨로 변해 있었다. 마당에 계시던 선생님께서 반갑게 맞이하여 주셨고 텃밭에 계시던 사모님도 집으로 들어와 반갑게 맞이하여 주셨다. 예정 시간보다 많이 늦게 도착한 우리에게  선생님은 점심을 먹고 작업을 시작하라고 말씀하셨지만 우리는 조금이라도 일을 하고 먹겠다며 작업복을 갈아입는 동안 남자 아이들은 선생님의 지도를 받아 잔디 깎는 기계 다루는 법을 배웠다. 남자 아이들이라서 그런지 기계 다루는 법을 금방 배워서 바로 잔디를 깎기 시작했다.

작업복으로 갈아 입은 회원들은 앞에 있는 심을 밭으로 갔다. 검은 비닐을 덮은 곳에 구멍을 뚫고 콩알 두서너 개씩 넣고 묻어 주면 되는 일이라서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같은 일을 반복해서 오랜 시간 자세로 일을 한다는 것이 쉽다고도 없는 일이었다. 다른 회원 분들은 이미 경험이 있어서 인지 척척 했고 빠른 강원 소년이 두서너 몫을 혼자 해내는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여자 아이들도 심는데 거들었다. - 두둑이나 심었나? - 콩을 심던 나는 점심 식사 도우미로 발탁(자처인가?) 돼서 사모님을 도우러 일단 밭에서 나왔다.

선생님이 텃밭에서 뜯어다 놓은 푸성귀를 씻고 마당 켠에 자리잡은 야외 식탁에 상을 보는 일이었다. 푸성귀가 어찌나 큰지  헬스를 치커리 붙이면 치어리더 치마 정도는 충분히 만들 있고 보디빌딩을 케일 장만 이어 붙이면 농활 참석자 가운데 가장 나이 어린 솔이의 원피스를 만들어 입힐 있을 만큼 이파리들이 컸다. 내가 푸성귀를 씻는 동안 사모님이 부엌에서 만들어진 음식을 식탁에 놓는 일을 나리가 했다. 우는 솔이를 안고 접시를 나르는 나리를 보고 선생님이 중간에 받아다 식탁에 놨다. 온갖 채에 처음 보는 반찬들과 쭈꾸미 무침으로 풍성하게 상이 차려지자 농군들을 불러들여 밥을 먹었다. 나는 식사를 끝낸 이미 배가 불음에도 불구하고 남은 우렁이 된장을 보자 다시 식욕이 돋아 밥을 비벼 그야말로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 민들레 김치, 질경이 장아찌, 우렁이 된장. 맛도 맛이려니와 처음으로 먹어 보는 음식이라서 그런지 색다른 맛이 일품이었다. 사모님이 식사 끝에 뭔가 허전하니 빠진 있었다면서 오신 막걸리를 마시는 걸로 식사를 마쳤다.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하는 동안 정원을 보니 잔디를 제법 깎아 놓았다. 정원 가장자리에 울타리로 앵두나무가 있었는데 앵두가 빨갛게 아주 익어있었다. 아이들은 앵두도 먹고 보리수 열매도 먹으며 배드민턴을 치고 놀았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 설치해 놓은 해먹 위에 누워 노는 모습을 보는 아이도 있었다. 어른들은 다시 콩밭으로 가서 콩을 심었다. 콩을 심은  새참으로 수박을 배불리 먹고 잠시 사모님이 남자들은 논을 매고 여자들은 밭을 매라는 다음 작업지시를 내렸다. 우렁이 농법으로 제초작업을 하셔서 그런지 풀이 그다지 많이 보이지는 않았으나 간혹 보이는 잡초를 뽑으러 남자들은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리고 논으로 들어갔고 여자들은 근처에 있는 텃밭으로 김을 매러 갔다. 김을 매고 매실을 따고 사모님이 데리고 곳에서 질경이 이파리를 땄다. 이거 사람들이 밟고 지나다니는 풀인데 싶었지만 점심 먹었던 맛이 생각나 일단 뜯었다. 사모님께서 질경이 장아찌 담그는 법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다. 정작 열심히 경청해야 아줌마 분은 듣는 마는 (열심히 들었나?) 했지만 나는 열심히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일이지 싶어졌기 때문이다. 질경이를 뜯자 사모님은 오디가 익을 때라면서 뽕나무가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 오디는 물론이요 산딸기가 지천에 깔려있었다. 여자 아이들을 불러내 산딸기를 따게 하고 우리는 오디를 따러 갔다. 그런데 오디가 너무 많아서 도저히 여자들의 힘으로 따기는 불가능했다. 내가 집으로 가서 논을 매고 쉬고 있는 남자 회원을 데리고 왔다. 강원 소년이 뽕나무 가지에 올라가 나무를 흔들자 그야말로 비가 내렸다. 여자들은 줍고 남자들은 흔들고, 가져간 통이 금방 가득 찼다.

오디를 집으로 와서 막걸리를 마시며 한담을 나누다가 선생님 작업실을 들러 구경도 하고 선생님 작업하시는 모습도 보다가 시간이 되어 시내 중국집에서 탕수육과 자장면을 먹고 서울로 왔다.
오디는 강원 소년 집으로 갔고 질경이는 우리 집으로 왔다.

 

콩도 심고 밭도 매고 하긴 했지만 농활을 아니고 사실 놀러 갔다 기분이다.

아니 놀러 갔다 왔다.

내내 웃었다.

마음으로 웃었다.

좋았다.

마음으로 웃을 있었던 시간을 가질 있어서.

  

 

 

오디를 딸 때 날렵하게 움직이던 강원 소년의 뛰어난 서커스의 한 장면 동영상으로 올린다.

 

 

 

 

 

 

'횡설수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텃밭  (0) 2009.06.21
해바라기 사랑  (0) 2009.06.21
그리고 이철수 선생님 판각하는 모습과 미발표작 두점.  (0) 2009.06.14
농활 - 오디와 산딸기 따기  (0) 2009.06.14
농활 - 논매기와 밭매기  (0) 2009.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