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다쳤다
30년을 술 마시고 돌아다녔는데도 얼굴을 간다거나 그런 일 없었고
10년 동안 비탈진 골목을 오르내리는 집에서 살았어도 넘어지 지 않았는데
지난 겨울 그 많은 빙판 길에서도 잘 버텼는데...
맨 정신에, 것도 대낮에, 쩝 계단에서 굴렀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발이 꼬이는 순간 얼굴이 바닥에 닿아있었고
그 상태로 몇 초 있다가 고개를 드니 피가 계단에 철철 흘러 내렸고
어디가 다친 지도 모르겠고 어디에 다친 지도 모르겠고 그냥 멍 할 뿐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나가 남의 차 백밀러로 얼굴을 보니 으흐흐흐.
밤 고구마 껍질 터지듯이 쫘악~쫘악! 아프지도 않았다.
백밀러로 보면서 떨어져 나간 게 없으니 다행이군 하면서 벗겨져 쳐진 살점 도로 살 위에 올려 놓고
살 가죽 위로 밀어 올려 붙여 보니 뭐 사이즈가 모자라지는 않아 꼬매면 되겠구나 싶었다.
연신내에 있는 성형외과 갔더니 소 닭보듯이 하는 간호사들.
여긴 응급실이 없으니 2시간 정도 기다려야 한단다. 것도상담 때문에.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응급환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렇지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데 뭐 하다못해 거즈라도 뜯어 들고와서 닦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순간 아는 선생님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더니 괜히 응급처치라고 얼기설기 꼬매는 것보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이쪽으로 와서 꼬매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니 오라고 했다.
택시를 타고 가다 차가 막혀 내려서 전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병원엘 갔다.
엑스레이 찍고 아무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 한 후
수술을 시작했다.
"많이 찢어졌네?"
그러시더니 막 무가네로 거즈로 박박 닦는데도 다친 자리가 얼얼해서 그런지도 아프지도 않았다.
다 닦으신 후 마취제를 놓고 수술을 시작했다.
"뼈에 이상도 없고 콧 뼈도 안 나가고 눈도 이상없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해"
"예"
"요즘은 뭐해?"
"뭐 그냥 준비하고 있어요"
"오래 노네"
"엑스레이 보니까 이빨은 또 왜 그래? 많이 없네?"
"좀 그래요"
"염색 좀 하지 머리는 왜 또 이렇게 허옇게 하고 다녀?"
"염색 안 할려구요"
등등 수술 내내 이야기를 하셨다.
조심하지 그랬어? 어디에 왜 다쳤어? 이런 하나마나한 이야기는 한 마디도 안 하셨다.
수술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셨다.
"지그재그로 찢어져서 이쁘게는 안됐어. 붕대 풀면 좀 무서울 거야. 할 수없지 뭐."
간호사들이 좀 웃겼을 것이다.
대화 내용만 녹음을 했다면 무슨 카페에서 커피 마시면서 나누는 이야기인 줄 알 정도로.
두 시간 가까이 약 300바늘 꼬맸고 비용은 150만원(사람 소개 시키라고 말씀하시며 탕감)
수술대 위에 누워서 생각했다.
그 동안 참 행복하게 살았구나.
나이 반 백년 사는 동안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원인도 모르고 검사를 무수히 받아야 하는 병도 아니고
수천만원 씩 돈이 드는 병도 아니고
생명에 지장이 있는 병도 아니었으니 이 또한 얼마나...헤헤
보기는 좀 안 좋을 거라고, 눈 두덩이가 자갸드 원단이 된 듯 멋진 무늬가 생길 것이란다.
이 나이에 뭐...시집을 갈 것도 아닌데 뭐, 누가 뭐라 그러면 그 쪽 눈 중심으로 한번 째리주면 카리스마도 있어 보일 것 같고 뭐... 정 아니면 쿠크 선장 되는 거지...그럴까 한다.
생각해 보니...낙상을 조심해야 할 반 백년을 산 액땜인 것 같다.
그 신호탄으로 조심하라는 경고인 듯 싶다.
내 턱과 뱃살을 그렇게 수술하고 싶어하셨는데 엉뚱한 일로 수술을 하게 해서...많이 죄송하다.
아침이 되니 정작 찢어지고 꼬맨데는 안 아픈데 온 몸이 지알려서 그런지 사방천지가 다 쑤시고 아프다.
모두모두 낙상 조심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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