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처음 지인을 통해 감독님 소식을 들었다.
난 그 때 촬영 중이었다.
땀과 눈물로 범벅을 하고 촬영을 중단 할 수 없어 계속 하긴 했지만 마음을 다잡기 어려웠다.
늦은 시간 일이 끝나고 병원으로 갔다.
조문을 마치고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서서 영정을 보며 울었다.
모래시계를 함께 했던 분들이 보였다.
송작가님께서도 조인형 편집감독님과 몇몇 배우들과 자리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가서 안아드리고 싶었지만 어떻게 말문을 시작해야 할지 몰라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다른 분들 곁에 고개를 수그린 채 한참을 앉아 있었다.
눈물이 그칠 만 하면 다른 분이 나타나서 눈물이 나고,
눈물이 그칠 만 하면 또 다른 분이 나타나서 눈물이 나고,
그러기를 한 시간,
송작가님 곁으로 갔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냥,
그랬다.
가겠다는 나를 왜 벌써 가냐면서 송작가님께서 잡으셨지만 일어나 나왔다.
앉아있기 힘들었다.
감독님과의 기억들.
빈틈없이 진행해 나가는 현장 장악력에 사람들은 무서워했지만 나는 감독님이 어렵긴 했어도 무서워 하진 않았다.
일하면서 20여명의 감독님들과 함께 했지만 나와 유일하게 배짱이 맞는 감독이셨는데…….
맘 안 맞는 감독님과 일 할 때는 감독님께 쪼르르 달려가 하소연을 하곤 했는데…….
촬영 중에 너무 바빠 은행 갈 시간이 없어 월급 받은 걸 지갑에 넣고 다니다 잃었을 때 다는 못 주고 반만 주겠다며 잃은 돈을 메꿔 주신 분.
"오늘 하루 쉬어라!" 촬영 중에 거의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나를 잠깐 나갔다 오자며 집 앞으로 데리고 가서 맥주를 사 주시던 분.
약 사러 갈 시간이 없어 기침을 하며 일하는 나를 마음에 담아 두셨다가 나갔다 들어오시는 길에 말 없이 책상 위에 약 봉지 하나 툭 던지고 가셨던 분.
잠도 자기 못하고 밥도 먹지 못하고 살인 스케줄을 소화해 낼 때도 현장에선 항상 장난을 치고, 놀리던 분.
촬영이 끝나고 조명기를 걷고 있을 때 배우 옷이 튀거나 연결이 안 맞은 걸 말씀 드리면 일단 철수를 멈추게 하고 골똘히 생각하는 척 하시다가 아무래도 조명이 저쪽으로 지나가는 보조 출연자한테 직접적으로 닿아 시선이 뺐기니 다시 찍자면서 촬영 감독과 조명 감독, 조보출연자 감독과 상의를 하면서 시간을 벌어 주셨던 분.
이동하며 딱 한마디 하신다. "앞으론 잘 해라" 사실 이럴 때가 가장 무섭다.
현장을 지휘 할 때를 빼고는 어떤 일이 벌어져도 큰 소리를 내지 않았고 현장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욕 한 번 안 하시는 분이셨다.
해는 지고 있고, 찍을 분량은 많고, 이동차는 깔아야 하고, 그럴 때 감독님께선 이동차 까는 촬영부 막내들이랑 직접 쐬기를 박고 레일을 들고 직접 깔았다.
조연출인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쐬기라도 들라치면 얼른 뺐어들며 "너는 하지 마라. 나는 하다 안 해도 누가 뭐라 안 그러지만 너는 하다 안 하면 변했다는 소리 듣게 된다."
감독용 의자를 감독님이 움직일 때 옮겨 드릴 때도 말리며 한 마디 하신다.
"나 다리 안 아프다. 너는 의자 들고 다니지 마라. 아니면 내일 부터는 AD 보조 한 명 더 불러라."
무슨 말인가 와전되어 흘러 다닐 때도 밥 먹으러 가다 식당 계단에서 아무도 들리지 않게 내게 조용히 말씀 하셨다.
"너라고 그래서 화가 났다. 니가 아니라면 넘길 수 있었는데 니가 그랬다 그래서. 너는 안 그럴 줄 알았는데"
"감독님 저 안 그랬어요. 진짜 그러지 않았어요. 그래도 누구라고 말 할 수는 없어요."
"그래? 알았다"
연출부가 버벅거리던 어느 날인가 연출부들을 집합시켜 놓고 하신 말씀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았다.
"니네는 젊어서 다른 일을 찾아도 되지만 난 다른 일을 하기엔 나이가 너무 많아 이것 밖에 할 게 없다. 그러니 좀 잘 도와주라"
욕이라도 날라 올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나즈막이 말씀 하시는데 정말 무서웠었다.
그래서 나도 가끔 저 흉내를 낸다. 무지막지하게 화나는 일 있으면 그냥 조용히 말씀하시던 그날을 떠 올리며.
스케줄 관리를 하던 내게 힘을 실어 주기 위해 전 스텝이 있는데서 이렇게 말씀 하신 적도 있다.
"모레 우리 엄마 생일인데 점심 시간 1시간만 좀 빼 줄 수 있겠니?"
이 말을 들은 사람은 그 어떤 누구도 내게 스케줄 가지고 뭐라고 하지 않았다.
쫑파티 때의 일이다.
나를 무대로 불러내시더니 어깨를 짚으며 소개를 했다.
"이 친구가 없었으면 모래시계는 방송이 어려웠을 겁니다.(사실이 아니었지만) 여러분한테 현장 안 가르쳐 준 것, 다 내가 시킨 것이니 이제 마음 풀고 이해해 주세요." 그러시고는 기자들에게 큰 절을 시켰다.
촬영 막바지에 들자 도저히 현장을 뛸 수 없을 만큼 바빠져 몇몇 스텝들과 방송국 옆에 숙소를 잡고 사무실에서 근무를 했다.
해서 사무실로 오는 전화는 도맡아 받아야 했다.
세 보지는 않았으나 하루에 족히 300백통이 넘는 전화가 왔다.
현장이 어디냐고 묻는 기자들을 따돌리는 역할을 오롯이 맡았던 나는 여차직하면 맞아 죽을 수도 있을 만큼 기자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국장님이 모자라 사장님까지 내려와 일개 조연출한테 촬영 현장 기자들한테 가르쳐 달라고 해도 가르쳐 주지 않았었다.
결국 감독님한테 전화가 왔다. 현장 가르쳐 주라고.
분명 높은 사람이 우리말은 안 들으니 감독님께서 조치를 취해 달라고 하신 것 같다.
나는 가르쳐 줬고 그날 촬영이 끝나고 감독님이 사무실 문을 열자마자 나한테 말했다. "그냥 하던 대로 해라. 촬영을 할 수가 없었다."
겨우 한 작품 함께 한 나도 이렇게 기억이 새록새록 올라오는데 송작가님은 어떻겠는가 싶어 더 아프다.
현장에서 평생을 같이 했다고 볼 수 있는 서득원 촬영 감독님은 영결식장에서 거의 넋이 나간 상태였다.
아니 거의 모든 관계자들이 그랬다.
떠나는 운구차를 보내며 기도했다.
이제 편히 쉬시라고…….
운구차가 먼저 떠나고 뒤 따라 떠날 버스에 오르는 사모님을 안아 드렸다.
저를 기억하시겠냐고 묻자 기억하신다고, 그래서 힘내시라고, 그리고……. 그냥, 아무 말 없이 안아 드렸다.
내가 감독님을 마지막 본 날이 태왕사신기를 준비 할 때 영화 '실미도' 감독을 부탁드리러 갔을 때다.
정말 관심이 많이 가는 작품이긴 하지만 준비하는 작품과 스케줄이 맞지 않아 할 수 없겠다고 거절하셨다.
그래도 시나리오는 주고 가라면서 진심으로 관심을 보이셨다.
이후 명절 때 통화하고 전화번호 바뀌었다고 가르쳐 주고 영 못 뵀다.
많이 무심했고 많이 미안하다.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정신이 없다.
혼자서 길을 걷다가도 자려고 누워 가만히 있어도 명치끝에서 부터 순식간에 푹!하고 올라온 눈물이 툭툭 흐른다.
지난 열흘 동안 내내 함께 해 준 아이가 한 마디 했다.
"이제 정신 차리고 일 하기다?"
"그래야지……."
고마웠다.
위로의 힘을 알게 해준 아이다.
나 혼자 뒀더라면 아마 더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그날 이후 매일 쓰던 보고서를 글자 한 자 쓸 수 없어 미루고 미루다가 담당자의 독촉 문자와 전화를 받고서야 겨우 써서 마무리를 했다.
*두서가 없네요.
일 다 내쳐두고 마음을 다지려고 그냥 생각나는 대로 썼습니다.
이렇게라도 쓰고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서.
쓰는 내내 눈물이 흐르네요.
*송작가님~~!! 힘내라는 말 한 마디 못하고 말았네요.
위로의 힘을 알면서도 나는 왜 이럴 때 힘내라는 전화 한 통 못 넣는지.
죄송합니다.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