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 줄 아는 여러가지 일 중에
특별히 잘하는 것이 있다.
전화번호 못 외우는 것.
물건 잃어 버리는 것.
정리정돈 못하는 것.
그 외에도 잘 하는 것이 셀 수 없이 많다.
그 중에 가장 빼어나게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
ㅡ참는 것ㅡ
이 바닥(영화계) 일을 하다보면
참아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서
쉽게 참아지는 경우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꾸~~우~~~ㄱ 참는 경우엔
참았던 것이 억울해서 참을 수 없었던 경우도 많다.
며칠 전 조감독과 제작실장에게 복창을 시켰다.
"조감독은 동네 북이다"
"제작부는 갈보다"
장사로 치면 조감독은 잘해야 본전이다(경우에 따라서 잘해도 밑진다)
이 바닥에선 조감독을 동네 북이라 칭하기도 한다.
위에서 찍어 누르지 아래서 치받고 올라 오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감독님이 제발 우물에서 숭늉을 찾지 않길 바라는 것 뿐.
"이 산이 아니가벼~~"
이 한마디에 벌벌 떨면서도 감독의 요구사항을 툴툴 거리면서도 해 내야 하는 일이라서
참을성이 없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제작부 역시 참을성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이 바닥에서 제작부 일하는 사람들을 갈보라 부른다.
속내장 다 꺼내 놓고 해야 하는 일이다.
병든 부모와 가르쳐야 할 동생이 딸린 부모의 역할까지 해야하는 갈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정당화 시켜서 명분을 만들고 자기 최면을 걸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싸움도 불사하고
속이 썩어도 웃어야 하고
웃어도 되는 일도 화를 내야 할 경우도 있고
그야말로 나는 없고 다른 내가 되어야만 할 수 있다.
제작부에게 스텝은 병든 부모이고 가르쳐야 할 동생들이다.
돌아서서 육두문자를 써가면서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고
그렇게 정이 들고 어렵고 지난한 시절을 보내면서
수 없이 참아 왔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충무로 100년이 존재 할 수 있었다.
난 조감독과 프로듀서를 다 경험했다.
그래서 아주 잘 참는다.
참아서는 안 될 일도 너무 참아버려서 후회했던 일도 많다.
그러나.
이제 참는 것을 참기로 했다.
참는 것을 참아야만
감독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이다.
맘을 독하게 먹고
힘들겠구나...어렵겠구나...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
약해지는 맘을 닫고 눈도 감아 버리고
오직 목적을 향해서 매진해야 한다.
모든 것을 결과론적으로 말 할 수는 없겠지만
영화는 매체의 특성상 오직 결과로만 말 할 수 있는 작업이기 때문에.
촬영지로 떠나기 전.
ㅡ참는 것을 참자ㅡ
주문을 외워 본다.
Duel In Busan 영화제작현장일기
짱짱^*^))// 방글방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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