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은 아니지만 지금은 백수예요.”
전 칼럼 술자리에서 친구의 친구가 왔다.
친구를 제외한 우리들에게 그 친구는 나름대로 어색함을 없애려고 묻지도 않는 말에 한 말이었다.
“아 그러세요? 우린 영화 하면서 살았는데 그래 뭐하고 살았어요?”
우린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동시에 질문을 던졌다.
친구의 친구는 전작이 있었는지 눈도 약간 풀리고 혀도 약간 꼬인 상태로 길고 장황한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말입니다. 학교 땐 운동을 했어요. 그리고 사회에 나와서는 노동운동을 하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어요. 노동조합도 만들고 기업 합병을 할 때 그 중심에서 일도 했고.-이하생략-저 회사 그만 둔지 한달 됐거든요? 이제 귀농 하려고요.”
“결혼은?”-우리
“했지. 애가 둘인데”-친구가 대신 한 대답
잠시 숙연 분위기.
“왜 그만 뒀는지 아세요?-친구의 친구
“안 물어 봤어요…말 안 해도 돼요…”우리들 몇몇.
“말해 봐요…들어 보자…”우리들 또 다른 몇몇.
“그만두기 바로 직전에 아버님이 급한 일이 있다고 만나자고 해서 집엘 가는데 온 도로가 다 막혀 있더라고요. 맘은 급한데 갈 수는 없고…이리저리 빨리 가볼라고 도로를 빠져 나가는데 어디나 마찬가지였어요. 그래서 결심했죠. 회사를 그만 두기로. 이렇게 차가 많은데 난 차를 많이 만들어 팔아먹어야만 되는 회사에 근무하잖아요. 이건 그 동안 내가 했던 운동과 너무 위배가 되는 거라서. 그래서 그만 뒀어요.”
그의 진지함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잘했니 못했니 몇 마디가 오고 가고.
잘했다고 말해야 옳은 것인지 못했다고 말해야 옳은 것인지.
저렇게 사는 것이 반듯하게 사는 것이라면 그 반듯하게 산 자 앞에서 부끄러워질 법도 한데 부끄러움에 앞서 걱정이 먼저였으니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다름에 관한 문제인 것 같았다.
어쨌든 적어도 가족들이 충분히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불을 보듯 훤히 보이는 고생문을 향하여 생각을 실천에 옮기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올곧게 살려고 노력하는 그의 귀농이 모쪼록 성공하길 바란다.
목적은 다르지만 도시에서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은 그나 나나 마찬가지다.
그의 눈에서 혹은 꼬인 발음에서 어쩐지 쓸쓸한 냄새를 읽었다면
그의 술기운 때문이었을까? 아님 단지 나만의 감상적인 느낌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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