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잠깐, 죄라도 지은 듯 발걸음을 멈추게 만든 컷이었다.
신발 옆에 있는 것으로 봐선 분명히 저 안에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 추운 겨울에.
급히 카메라를 꺼내 찍었다.
촛점이 맞지 않은 걸로 봐서 찍으면서 발걸음을 옮긴 것 같다.
기억이 나지 않을만큼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그리고 할머님 한 분.
역시나 촛점이 맞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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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관심이 많았다.
거지와 미친 사람들.
기억에 남는 몇몇 사람들이 생각 났다.
장용이라 불리워졌던 언청이 아저씨와 그의 아내.
얼굴이 심하게 얽었고 정신이 이상했으나 늘 웃었던 걸로 기억 된다.
동네 힘든 일을 도맡아 해 오던 그는 경운기와 트랙터가 등장하면서부터 지게와 쟁기처럼
할 일이 없어져버린 사내였다.
이들 부부에겐 아들이 둘 있었는데 이 가족이 동네를 한바퀴 거닐고 나면
골목골목마다 찌린내가 베어 진동을 했다.
일제때 버려진채 홀로 남은 앵심엄마.
앵심이 아빠가 누군지도 모른채, 엄마가 되어 버린 여자.
아무도 그녀의 이름은 모르지만 앵심이라는 딸이 있어 앵심엄마라고 불리워지는 여자.
허리에 새끼줄을 두르고 그 새끼줄을 비틀어 생긴 틈새 사이에 빗이며 숟가락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면서그 여자도 내내 웃기만 했다.
목포에서 왔다는 노래를 잘 불렀던 어떤 여자.
그 여자가 부르던 노래는 딱 한가지였다.
제목이 뭔진는 모르나 어찌나 졸졸 따라 다니면서 들었는지 전 가사를 다 외운다.
"물어 물어 찾아봐도 내 님이 계시는 곳, 저달 보고 물어 본다, 님 계신 곳을, 울며 불며 찾아 봐도 내 님은 간 곳이 없네," 이런 가사였던 걸로 기억 된다.
초등학교 3학년 한해를 저 노래를 부르던 여자를 따라 다니면서 놀았던 기억이 있다.
금잔듸라는 담배를 맛나게 피던 여자였다.
재 넘어 곰배팔이한테 시집을 갔던 이름을 까 먹은 여자.
아무도 그녀와 놀아 주지 않았는데 난 항상 그녀가 소 꼴베러 갈때 같이 가서 이야기도 듣고 놀아 줬다.
그래서 그러지 나보다 나이가 많았는데 항상 나더러 언니라 불렀으며
사사건건 이야기를 해 줬다.
그녀가 어느 날 시집을 간다고 사라지고 난 후 1년 뒤 다시 나타났을 때
어김없이 낫과 꼴망태를 들고 있었다.
왜 다시 왔느냐고 묻자 남자가 자기를 때렸다고만 말하고 역시나 웃고 있었다.
외에 컷으로 기억 되는 사람들.
신세계 백화점 앞에 온갖 세간살이를 다 이고지고 진짜로 머리에 꽃을 꽂고 다니던 어떤 여자.
백년전부터 입고 다녔음직한 바지와 짝짝이 신발을 신고 다니던 남자.
대학로에 머리 긴 어떤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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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치료를 받는 내 사촌, 멀리 섬에서 약간 모자란 여자를 데리고 와서 산다.
그 여자는 말로만 며느리이지 시어머니가 며느리 노릇을 다 해주고 산다.
그 여자의 역할은 오로지 내 사촌과 함께 지내 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워서 며느리를 모시고 사는 시어머니.
이들 둘은 완전히 미친 사람은 아니지만 가끔씩 사람 아닌 행동을 하곤 한다.
그리고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한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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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을 제외하곤 이들이 지금 무엇을 하는지 어찌 사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어디 살든 늘 그랬듯이 이들은 누리는 것 없어도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웃고 살 것이다.
세인트어브뉴욕이나 돌베개 같은 영화처럼
의지와 상관없이 살고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따뜻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하여 뭔가를 잃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싶었다.
겁이 없었을 때 이야기다.
지금의, 나는 누구를, 혹을 무엇을 위로 할 수있는 상황이 아니므로.
하지만 쉬 놓아지지 않는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