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목탁 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

그것은 목탁 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

monomomo 2006. 12. 16. 08:33
 

10 장


        어둠 속에서 천둥소리.

        이어서 소나기와 번개불이 무대를 가른다.

        용명되면 도법의 작업실.

        망령은 의자에 앉아 술을 마시고 도법은 창가에 서서 소낙비를 보는 듯 뒷모습을 보이고 있다.


망  령  (거나하게 취해서 흥얼댄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도법당, 이리 와서 한잔 하자고. (대답이 없자) 비 구경 처음 하나? 이 비는 금방 그쳐. 지나가는 비거든. 호랑이 장가가는 날일세. 도법당, 이리 와서 회포나 푸세. 실은 오늘이 마지막이야. 난 이 밤이 지나면 여길 떠나야 한단 말일세. 이제 가면 오고 싶어도 못 와. 허허 내 말이 안 들리나? 술 생각이 나서 찾아온 친구에게 이건 너무 하지 않나.

도  법  …….

망  령  헤헤헤, 그래도 난 자네가 좋아. 재주꾼이거든. 그에 비해 겸손하고. 헤헤헤. (자작한다) 도법당, 나에 대해 궁금한 게 많지?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할 수 있어. 자넨 입산할 때만큼이나 착잡하고 고통스러울 테니까. 불상문제도 그렇지 탄성이도 그렇지 게다가 지금은 비까지 오고 있으니까. 자넨 예나 지금이나 빗방울만 보면 맥을 못추누만. 그래가지곤 중이 될 수 없어. 너무 감상적이야. 하긴 옛날에도 자네같은 녀석이 있긴 있었지. 유명한 놈이야. 조주(祖疇)스님이라고. (詩를 읊는다)


        독좌시문낙엽빈(獨座時聞落葉頻)이니

        수도출가증애단(誰道出家憎愛斷)고

        사량불각루첨건(思量不覺淚沾巾)이라.


        홀로 앉아 낙엽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때

        누가 말하였던고 출가하여 도를 닦으면 사랑과 증오가 끊어진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깨우치지 못하니 흐르는 눈물이 수건만 적시누나.


        … 헤헤헤. 그 자식의 무상시(無常詩)지. 십년간 토굴에서 면벽(面壁)했지만 힐끗 본 치마 때문에 도로 헬까닥했다는 아픈 얘기야. (밖을 본다) 아! 비가 그쳤군. 거 봐. 내 말이 맞다니까. 자, 이젠 술 좀 마시자고. 응? 오늘이 마지막이라니까. 자, 어서.

도  법  (의자에 앉는다)

망  령  (건너편 의자에 앉으며) 머루주야. 맛이 그만이지.

도  법  (한 입에 털어 넣고 다시 잔을 내민다)

망  령  한잔 더?

도  법  (연거푸 세 잔을 마신다)

망  령  맛있나? 아니면 오긴가?

도  법  이젠 어디로 갈 거지?

망  령  하늘나라로.

도  법  그래?

망  령 실은 갈 데도 없어. 자네가 하두 싫어하니까 아무데나 가려는게지. 그냥 있어도 되겠나? 그건 싫지?

도  법  그리 싫지도 않아.

망  령  그래?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내가 무섭지 않나?

도  법  도대체 네 정체가 뭐야?

망  령  나도 한잔 주게.

도  법  (따르며) 원포리 지물포집 혼령인가?

망  령  그 말 귀치않고.

도  법  그럼 아무 관계도 없단 말인가?

망  령  난 몰라.

도  법  그런데 왜 그 시체 속에 있었지?

망  령  무슨 소리야. 난 나야. 내가 도대체 어디에 있었다는겐가.

도  법  당신이 그때 벌떡 일어섰잖아.

망  령  허허 정신차리게. 뭘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봤구먼.

도  법 거짓말말어. 여기 처음 나타났을 때도 구면인 사이에 뭘 그리 놀래느냐고 안 그랬어?

망  령  그래? 그럼 그렇다고 하지. 그런데 그게 뭐 그리 중요한가?

도  법  (잔을 비운다) 자, 이제 다 털어놓어 보시지.

망    뭘?

도    불상을 왜 부쉈지?

망  령  꼭 알고 싶어?

도  법  그래.

망  령  눈 감아봐.

도  법  (눈을 감는다)

망  령  니놈이 불상을 만들 자격은 있는 거냐?

도  법  (눈을 부릅뜨며) 뭐야?

망  령  허허. 눈 감어. 넌 내가 알기로 이세상에서 가장 비겁하고 째째한 놈이야. 너도 부숴버리고 싶었잖아. 왜? 가짜였으니까. 고양이가 호랑이 흉내를 내본 거였으니까. 넌 불상을 만들어 공덕을 쌓고 그 공덕으로 니 죄를 탕감하고 싶었을 거야. 허나 공덕으론 죄가 없어지지 않아. 깨우쳐야지. 자, 눈떠.

도  법  (눈을 뜬다)

망  령 (술을 따르며) 헤헤헤. 아직도 내가 징그러운가? 도법당! 도인이 되려면 하나로 볼 줄을 알아야 돼. 자비와 해탈은 일승(一乘)이지. 니 속마음이 내 겉모양일 수도 있거든. 안그래?

도  법  훈계하려 들지 말어.

망  령 훈계가 아니야. 사실 자네의 속것이야 내 얼굴에 비하겠어? 벳겨놓으면 가관일테지.

도  법  결국 말하고자 하는 것이 뭐야?

망  령  자네의 화두지.

도  법  내 화두가 어때서?

망  령  어떻긴? 엉터리지. 어떤 사람이 잠자고 일어나 거울을 보니 얼굴이 없어졌다. 어디로 간 것이냐? 가긴 어디로 갔겠어. 무아(無我)야. 내가 없으니 죽음을 싫어할 나도 없고 삶을 기뻐할 나도 없어. 진짜란 가고 옴이 없어. 있고 없고가 없어. 있든 없든 그게 그거야. 자 무진법문을 들었으니 넌 이제 진짜 호랑이가 된 거야. 됐다치구 나를 보라구.

도  법  (외면한다)

망  령  못 쳐다보는건 또 뭔가. 죄의식이 다시 발동한 건가?

도  법  …….

망  령  마누라가 불쌍하겠지.

도  법  뭐야?

망  령  마누라!

도  법  (강한 반응)

망  령  마누라가 불쌍하겠다고.

도  법  (노려본다)

망  령  아하 알았네. 술맛 잡친다 이거지. 다른 얘길 하자구. 도법당. (묘한 웃음을 입가에 흘리면서) 자고로 술이 있으면 계집이 있어야 흥이 난단 말일세. 안 그런가? 내 이럴 줄 알고 미리 준비해뒀지. 자네도 계집이 필요한가? 필요없지? 그럼 내것만 부르겠네. (손뼉을 치며) 어서 들어와라.


        짙은 화장을 한 여인이 그네를 타고 내려온다.


망  령  옳지 옳지. 사뿐사뿐. (도법에게) 괜찮은 아이지. 서울 무슨 술집인가 하는데서 비싸게 주고 사왔다고. (여인에게) 자, 인사해. (도법에게) 아마 구면일걸?

도  법  (여인을 보자 깜짝 놀란다) 아니…….

망  령  (여인에게) 어서 인사해. 아참 얜 말을 못해. 그러니 인사하고 싶으면 자네나 하게.

도    아니… 이럴 수가.

망  령  (여인에게) 뭘 꿈쩍거려. 어서 여기 앉지 않구. (옆에 앉힌다. 여인의 가슴속에 손을 넣어 주무르면서) 자식, 처녀처럼 보송보송하군. 도법당, 자네 또 생떼 부리지 말어. 이젠 이 아이가 내 계집이니까. 자고로 버린 계집 미련두는 녀석이 제일 못난 사내라구.

도  법  여보, 부인!

망  령 얜 내가 최면을 걸었어. 너에 대한 기억을 싹 빼버렸지. (여인에게) 여기 왔으면 신고식을 해야지.

여  인  (망령에게 입을 맞춘다)

도  법  이봐. 그 손 놓지 못해?

망    왜?

도    …….

망  령  아하! 왕년에 쟤의 남편이었다? 이젠 아무것도 아냐. 안 그래?


       불교 음악이 애잔하게 울려퍼진다.


망  령  십년전 쯤일까? 동네 깡패 일곱명에게 강간 당한 게? 그때 자넨 꽁꽁 묶여 있었고 얘는 그 녀석들한테 차례로 당했지.

도  법  그만해.

망  령  그만하긴.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자넨 차례로 다 보았지. 처음엔 녀석들이 윗도리를 벳기고 다음엔 치마…… 속곳도 벗기고. 소리질러봐. 그때처럼. “살려줘! 살려줘! 이놈들아 제발 그만두란 말이야.” 그리고 그 순간 외면해버렸어. 낄낄거리는 녀석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모든 게 끝장나버렸지. 넌 곧장 입산했으니까.

도  법  …….

망  령  괴로운가?

도  법  (노려볼 뿐)

망  령  (빈정대며 詩를 읊는다)

        우리 모두 사랑하는 이를 갖지 말자.

        우리 모두 미운 이를 갖지 말자.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 괴롭고

        미운 사람은 만나서 괴로우니

        그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이

        모두 다 고통이 아니겠소.

도  법  아암, 고통이지. 고통이고 말고. 그러니 어떻게 할까? 저 마나님 붙잡고 덩실덩실 춤이라도 출까? 아니면 통곡이라도 할까? 원하는 게 뭐야? 말해 이 자식아.

망  령  (여인에게) 얘야 안 되겠다. 발작병이 다시 도진 모양이다. 어여 인나서 선을 보여. 네 멋진 춤으로 혼을 싹 빼버려.

여  인  (일어나 춤을 춘다. 춤추며 옷을 하나씩 벗는다)

망  령  쟤는 그래도 됐어. 웬만한 계집 같았으면 죽는다고 난리법석을 피웠을 텐데. 저렇게 상처를 스스로 치유할 줄 안단 말이야. 옳지 옳지. (도법에게) 옛날하고 똑같은 몸매지? 후후후.

도  법  그만해.

망  령 그만하라니. 그만두면 만사가 다 끝이 나냐. 네 놈은 어여된 게 만사가 순간 순간이야. 저 술집 계집이 여기서 벗지 않는다고 다른 데서도 안 벗을 줄 알어. 천만의 말씀. 그게 저년의 직업인 걸.

도  법  …….

망  령  (술을 마시면서) 잘 봐. 거기서 떠오르는 것이 있을 거야. 저걸 어려운 말로 묘유(妙有)라고 하지. 진공묘유(眞空妙有)! 묘하게 있다 이거야. 저년을 봐. 저게 영원히 있는 걸까? 아니지. 언젠가는 없어진단 말이야. 그러니까 없는 거지. 그렇담 완전히 없는 거야? 그것도 아니지. 있긴 있어. 묘하게 있는 거지.

도  법  (망령의 멱살을 잡으며) 시끄러. 이 자식아.

망  령  허허. (도법의 두 손을 쉽게 꺾어 눌러 앉힌다) 자넨 어째서 이 순간을 영원하다고 생각하지? 인생이 순간이면 영원한 건 없고 인생이 영원하면 순간이란 없을 텐데 말이야. 이건 앞뒤가 맞질 않아. 마누라가 강간당한 건 영원하고 마누라를 사랑했던 건 순간이라니 이런 엉터리 발상이 어디 있나.

여  인  (속옷차림으로 춤을 춘다)

망  령  (도법의 얼굴을 똑바로 들게 한다) 자비의 시선으로 저것을 봐. 봤어? 봤으면 이리 와. (도법을 일으켜 세워 탁자 있는 데로 와서 의자에 앉힌다) 불쌍하지?

도  법  …….

망  령  저년이 불쌍하지? 네 마누라는 변한 게 없어. 저년은 아직도 너를 생각하고 있으니까. 어쩔 수 없이 당한 건 죄가 아니야. 그건 새끼손가락에 난 생채기에 불과해. 변한 건 너야. 네가 잘못 본 거지. 아니 잘못 본 것도 아니야. 잘못 본 줄 뻔히 알면서도 시정하지 않았으니까. 범부의 세속이란 다 그래.

도  법  그래 난 범부야. 속인이구 죄인이구 머저리야. 물론 내 처는 아무 잘못도 없어. 그걸 나도 알아. 이치상으로 확실히 그래. 하지만 난 그 일을 지울 수가 없어. 지우려고 노력이야 했지. 잊어야 한다고. 그러지 않으면 저 여자나 나나 불행해진다고. 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어. 버선 코빼기만 보아도 그 일이 떠오르는 걸 낸들 어쩌란 말이야. 어떤 놈이든 붙잡고 물어봐. 지 마누라가 강간당하는 걸 보고 저건 色이요, 저건 空이니 집착하지 말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여겨버려라. 어떤 미친 놈이 그대로 따르겠어. 없어. 그런 놈은 세상에 없어.

망  령  왜 없어. 있어. 쌔구 쌨어.

도  법  그런 자들은 인간이 아니야.

망  령 인간이야. 그런 썩은 동태눈알 가지고 무슨 도를 닦겠다고 그래. 이놈아. 너와 마누라는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건으로 똑같이 당했어. 둘 다 시궁창에 빠진 거야. 그런데도 너는 말짱하고 마누라만 더럽다 이거야.

도  법  불리지말어. 난 그 일을 말갛게 지울 수가 없다는 것뿐이야.

망  령 누가 말갛게 지우래? 만약에 네 마누라가 당하는 걸 직접 보지 못했고 그후로도 눈치채지 못했다고 가정해보자. 어떻게 했겠어?

도  법  차라리 그 편이 나았겠지.

망  령  그런 어벌쩡한 말이 어딨어. 안 보면 괜찮고 보면 안 돼?

도  법  더이상 듣기 싫어.

망  령 그럴려면 뭣하러 중이 됐어? 불상은 왜 만들었어? 法을 보려고 했던 거 아냐? 그 법이 여기에 있는데 넌 지금 어디서 찾고 있는 거야 이놈아!

도  법 법이란 고통과 좌절의 아픔을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입장에서 얼만큼 견뎌왔느냐에 달려 있어. 나는 그 모든 법난(法難)과 정면으로 맞서 싸워왔고 그 좌절의 깊이만큼 지금은 상처가 아물게 되었던 것이야. 알겠어?

망  령  아니 모르겠어. 본디 그 일이 어떤 상처였으며 이제는 어떤 법으로 어떻게 아물게 되었다는 건지 엉망진창이라고. 다시 말해봐. 아주 쉽게.

도  법  당해보지 않은 놈은 몰라. 지 멋대로 입방아 찧지 말란 말이야.

망  령  헤헤헤. 자, 그럼 난 잠자코 있을 테니 네가 찬찬히 설명해봐.

도  법  알 필요 없어.

망  령  그럼 내가 설명해보지. 그러니까 깡패들이 네 처를 이렇게 눕혀놓고 (음악소리 순간 정지) 그 짓을 했다 이 말이지? (여인을 탁자에 눕히고 당시를 재현하려 한다)

도  법  손 떼.

망  령  못 떼.

도  법  안 떼겠어?

망  령  못 떼겠다면?

도  법  (헤라를 집어들며) 죽여버리겠어.

망  령  상처가 아물었담서?

도  법  그만두지 못하겠어?

망  령  우리끼리 서로 삭히지 못할 게 무어 있겠나. 색즉시공이요. 무욕무탐인 걸.

도  법  똑바로 들어. 마지막 경고야.

망  령  이놈아. 큰소리치지 말어. 넌 개자식이야.

도  법  개자식이라도 좋으니 어서 꺼져버려.

망  령  누구 마음대로?

도  법  어서!

망  령 좋다. 마음대로 해봐. 어디 악마가 이기나 까까중이 이기나 해보자구. (여인을 애무하려 한다)

도  법  야!

망  령  (태도를 돌변한다) 헤헤헤. 참게 참아. 한번 해본 거야. 우리가 이럴 필요가 있겠어. 잠시 머리도 식힐 겸 휴전을 하자고. 결론을 내릴 때가 되었으니까. …… 아는 노래가 있음 한 곡조 불러보게… 막간을 이용해서 유서라도 써 놓든지.


        창가로 가서 창문을 여는 망령

        심호흡을 몇 번 한다.

        잠시 후


망  령  소감이 어떤가? 넌 하나를 전체로 보았지.

도  법 그 일이 있은 뒤 등껍질이 벗겨지는 부두 노역을 하면서 지금 네 말처럼 하나를 전체로 보고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거듭거듭 생각해보았지. (힘을 주어) 내면 깊숙히 숨어 있던 모든 번뇌가 그 하나로 인해 모두 고개를 쳐든 거야. 분명히 말하건데 난 마누라 일이 동기가 되어 전체를 보았다고. 생노병사에 허덕이는 전체 인생의 백팔번뇌를 보았던 거라고.

망  령  해서 입산했다?

도  법  아암.

망  령  그리고 잊기 위해 수행도 했고?

도  법  이기기 위해서였지.

망  령  그래서 이겼나? 내가 보기엔 그 전체라는 게 하나처럼 보이는데? 아직도 그 하나 때문에 전체가 망가져가는 꼬락서닌데.

도  법  염려말어. 호락호락 망가지진 않을 테니까.

망  령  그럴까?

도  법  아암.

망  령  흥미진진한데? 자, 그럼 시작해볼까?

도  법  …….

망  령 이제부터 자네에게 마지막 최면을 걸겠어. 자넨 오늘 우리의 마지막 이별을 그 조각칼로 끝내야 돼. 알겠나? (여인의 옷을 벗기고 애무한다. 빠른 행동. 劇에 속도감이 붙는다) 어떤가? 보기 싫은가? 보기 싫음 지금 네 눈을 찔러버려. 그런 썩은 눈알이라면 계속 보아봤자 아무것도 깨닫지 못해. 사실 이런 일은 전에도 있었거든? 넌 지금 꿈을 꾸고 있거든? 그런데도 보기 싫어 미치겠다면 그거야말로 머저리지. 뭘 망설이나. 찌르라니까. …… 옳아! 그렇담 이 모습이 보기 싫지 않다 이거야? (더욱 격렬하게 애무하며) 보기 좋은가? 참을 수 있겠어? 색즉시공이야, 부처의 자비야? …… 보기 좋대두 지금 찔러버려. 이젠 안 보아도 자넨 자유자재함이야. 자넨 지금 마누라가 당하고 있는데도 대자대비의 시선으로 보고 있어. 그러니 미추가 따로 없음이지. 뭘해. 어서 찌르라니까. 만약 이런저런 연유로 찌르지 못한다면 자넨 이 끈적끈적한 속세에 아직도 미련이 많다는 것이고 결국 이런 식으로 더 확실한 것, 더 구체적인 것을 찾다가 종래엔 아수라가 되어 육도 윤회를 거듭하게 될 것이야. 망설이지 말고 어서 찔러! 어서! (더욱 세차게 여인과 정사한다)

도  법  (헤라를 집어든다) 개자식.

망  령  그래 그래. 어서 그걸로 두 눈을 찌르라니까?

도  법  (망령에게 다가가며) 더 이상 못 참겠어.

망  령  왜 나한테 덤벼들어. 자네 두 눈을 찔러버리라니까.

도  법  흥! 네 놈도 오늘로써 끝장이야.

망  령  그래? 죽여봐라 이놈아.


        더욱 격렬하게 정사하는 망령과 여인.

        격정적 감정에 휩싸인 도법. 헤라를 양손에 들고 부들부들 떤다.

        “야!” 하는 소리와 함께 망령을 마구 찌르는 도법.

        싸이키 조명이 비치다가 사라지면 순간, 암전.

        용명되면, 도법에게 한정된 불빛.

        쪼그려 앉은 채 양손으로 두 눈을 감싸고 있다.

        눈에서 피가 흘러내린다.

        망령, 녹로 위에 앉아 있다. 불상처럼.


망  령  자넨 나를 죽이려고 했지만 결국 자네의 두 눈을 찌르고 말았어. 난 자네의 번뇌와 불안일세. 세상 이치가 일체유심조라. 난 바로 자네일세. 자넨 자네의 추악한 부분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어. 그러나 이젠 보았겠지. 자네의 다른 한 부분이 얼마나 추악했던가를. 도법당. 미추를 포기하게. 아름답고 추함이란 한낱 꿈 속의 허깨비에 불과한 것이야. 본디 이 세상 모든 것은 묘하게 있을 뿐 미추란 없는 것이야. 그것을 자꾸만 추하다고 보는 자네 자신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일세. 도법당. 내 몸에 석고를 입히도록 하게.


        숙연해지는 무대.

        범패소리 크게 울리다 사라지면……

        도법, 망령한테로 가서 석고를 입히기 시작한다.


망  령  (지금까지의 말투가 아니다. 부처의 설법처럼 들린다)

        바닷가의 조약돌은 둥글고 예쁘지. 그 조약돌을 그토록 매끄럽고 아름답게 깎은 것은 조각칼이 아니라 부드럽게 쓰다듬은 물결인 게야. 나와 싸우려 들지 말게. 칡넝쿨이 보리수를 휘어감듯이 자네가 싸우려들면 우린 서로 파멸하고 말아.

도  법  …….

망  령  자, 이젠 자네의 외부를 보지 말게. 하늘에도 바다에도 산에도 들에도 자네가 벗어날 곳은 아무데도 없어.

도  법  (따라서 한다) 하늘에도 바다에도 산에도 들에도 벗어날 곳은 아무데도 없다…….

망  령  우린 태어날 때부터 완성자였어. 범부들은 이것을 몰라. 모든 것이 목탁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지.

도  법  (소리없이 울먹인다) 모든 것이 목탁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라…….

망  령  도법당, 어떤 사람이 인적 끊어진 숲속을 헤매다가 아득한 옛날 자신이 살았던 낡은 집을 발견하였네. 그 집에는 연꽃과 보리수가 있었지. 도법당, 나도 이와 같이 먼저 깨우친 분들이 걸어갔던 (손가락으로 허공을 가리키며) 옛길을 발견했을 뿐이야.


        도법, 바르르 떨리는 사지를 가까스로 진정시킨다.

        정지상태의 망령에게 환상적인 조명이 밝혀지면

        망령, 허공을 가리키는 엉거주춤한 모습의 신비스러운 불상으로 化하게 된다.

        1장에서 본 흉칙한 불상이…….



­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