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목탁 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

그것은 목탁 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

monomomo 2006. 12. 14. 20:10
 

8 장


       도법의 작업실 서전(西殿).

        불상구조물의 머리부분이 깨진채로 바닥에 널려있다.

        화덕에 불을 지피고 있는 도법.

        망령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창가에 걸터앉아 詩를 읊는다.

        탄성은 중앙 의자에 앉아 도법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탄성에겐 망령이 보이지 않는다.


망  령  날이 어두워지매 먼저 태어난 者들이

        다투어 개새끼가 되고파 안달함이 유행이라 하더이다.

        그러나 개새끼라고 다 개새끼겠소마는

        솔직히 개새끼라면 다 개새끼지요.

        하지만 모두 다 개소립니다.

        황금빛 언덕에 누우시려오?

        푸른 창공을 날으시려오?

        은빛 관세음보살 궁둥이에서

        천일 염불이 다 무슨 업보라덥니까.

        차라리 나무 십자가를 그 놈의 정수리에 꽂아박고

        천국 안 지옥이 어떠시겠소.

도  법  …….

탄  성  …….

망  령  (도법에게) 천국 안 지옥이 어떠시겠소?

도  법  …….

망  령  후후후 풍랑거지 쪽박 깨뜨린 형상이로군.

도  법  …….

망  령  잊어버려. 이미 깨져버린 불상에 미련 둬서 뭘 하나. 탄성이 말마따나 그게 다 집착이라고.

도  법  …….

망  령  그렇다고 날 원망하지 마. 자넬 골탕멕이려고 이런 게 아니니까. 전에 말했잖어. 부처와는 상극이라고… 뭐 크게 상극일 것도 없지만. (방금 떠오른 듯) 아, 그렇지. 내가 호랑이었다면 자네가 만든 불상은 고양이었어. 호랑이는 고양이를 보면 가만 놔두지 않거든. 어설프게 닮았다 이거지. 헤헤헤 이젠 속이 다 후련하군. (일어나서 찬장으로 간다) 이렇게 얘기하면 될걸 가지고 그동안 끙끙 앓았으니. 어때, 이젠 자네 속도 후련할 걸? 헤헤헤. (찬장에서 설탕을 꺼내 찍어 먹는다)

탄  성  누군지 짐작 가는 사람이 있나?

도  법  …….

망  령  내가 그랬지.

탄  성  바람이 넘어뜨렸을 리도 없고.

망  령  내가 그랬다니까.

탄  성  혹시 월명이가 덜렁대다가?

망  령  아휴 저 등신.

탄  성  대중스님들은 자네 짓이라고 하드만. 두가지 이유를 대더군. 첫째는 마음에 들지 않았거나 자신이 없어서. 둘째는 잠시 실성을 했거나 환각에 빠져서. 덧붙여 말하길 요즘 자네 행동으로 보아서는 후자가 합당할 거라고.

도  법  차 들 텐가?

탄  성  그러지.

망  령  좋지.

도  법  결명자?

망  령  좋아, 달착지근하게 끓이게.

탄  성  아니 담백한 것으로.

도  법  칡차?

망  령  에이 싫어.

탄  성  좀 무겁지 않나?

도  법  작설차?

탄  성  그래, 그게 좋겠군.

망  령  난 싫여. 그걸 무슨 맛으로 처먹어.

탄  성  자넨 제 맛을 낼 수 있을 거야. 월명이가 끓여오는 것은 그게 어디 차인가?

망  령  양잿물이지.

탄  성  구정물이지.

망  령  어이 나도 한 잔 줘. 이리 가져오지 말고 그냥 거기다 놔. 이리 가져오면 탄성당이 자넬 돈 사람 취급할 테니까.

도  법  (화를 억제하다 못해 망령에게로 간다)

망  령  (뒷걸음치며) 왜 이래?

도  법  왜 이래? 참는 데도 한도가 있는 거야. 도대체 넌 어떤 놈이야. 내가 너하고 무슨 억겁의 괴연을 졌는지 말해보란 말이야.

망  령  탄성당이 비웃어. 너 혼자 여기서 연극한다고.

도  법  불상을 부수고 종국에는 어쩌자는 거야. 원하는 게 뭐야.

망  령  허허 탄성당이 쳐다본대두.

도  법  꺼져, 사생결단내기 전에 어서 꺼지란 말이야.

탄  성  (도법을 붙들며) 도법당 왜 이래? 이 무슨 경거망동이야.

망  령  옳지 옳지.

탄  성  정신차려.

망  령  아암, 내 대신 혼내주게.

탄  성  (잡았던 것을 풀며) 허공에다 성낸다고 박살난 조각이 다시 붙어지겠나?

망  령  에이 한 대 쥐어 박을 것이지.

탄  성  찻물이 다 닳겠네.

도  법  (체념한 듯 화덕 있는 데로 가 작설을 넣는다)

망  령  그나저나 대단히 발전했어. 처음 봤을 땐 졸도하더니…….

탄  성  (의자에 앉으며) 이건 다른 얘기네마는 난 자넬 이해할 수가 없어. 나야 뭐 절이 뭐하는 데인지도 모르는 채 요만할 때 계(戒)를 받았지만 자넨 왜 중이 됐나? 듣자 하니 그림솜씨도 꽤 알아줬던 모양인데. 자네도 허무주의자였나?

망  령  마누라가 겁탈당했거든.

도  법  (망령을 쏘아본다)

망  령  아, 미안해. 그 상처는 건드리지 않도록 하지.

탄  성  (도법의 시선을 따라 살피다가) 왜 그래?

도  법  쥐새끼가 많아.

망  령  쥐새끼? 저런 고얀 새끼.

도  법  (찻잔을 건넨 다음 의자에 앉는다)

탄  성  (합장한 뒤 차를 마시면서) 아무튼 잘된 일이야. 그렇잖아도 자네가 만든 불상을 보면서 죽을 때까지 예불 드릴 일이 끔찍했었는데.

도  법  (차를 마실 뿐)

탄  성  다시 만들 셈인가? 큰 법당에 있는 불상도 아직 쓸 만하니까 웬만하면 그만두지 그래. 초파일도 이젠 며칠 안 남았어.

망  령  (주전자째로 마시면서) 그래, 아예 그만둬.

탄  성  망령이란 묘안이었어. 그렇지? 이 시점에서 합리화시킬 수도 있고 포기할 수도 있게 되었으니까.

도  법  (차를 벌컥벌컥 마신다)

탄  성  차는 그렇게 마시는 게 아니야. 천천히 사색하면서 느낌을 갖고.

도  법  탄성당 내 말을 믿게. (이내 낙담하며) 하긴 믿어서 풀릴 문제도 아니야. 그래 내 문제겠지.

탄  성  선방에 가버려.

도  법  아 모르겠어. 내가 나를 모르고 지나는 게 너무 많아.

탄  성  솔직히 대중스님들 보기가 민망할 지경일세.

도  법  용서하게.

탄  성  의기양양하게 써서 보낸 봉안식 초청장이 날 아찔하게 만들고 있어.

도  법 이젠 다 끝났어. 모두 참회하고 용서받고 싶어. 그동안 고마웠네. 어찌 보면 홀가분하기도 해.

망  령  그래 그래. 마음 잘 먹었지. 또 만들면 또 부숴야 해.

탄  성  떠나겠나?

도  법  가야지. 죄송스러워서라도 눌러 있을 수 있겠나?

탄  성  그런 이유라면 남아 있고.

도  법  아니야.

망  령  집으로 가. 가서 마누라 좀 찾아봐라.

탄  성  선방에 가련가?

도  법  생각해봐야지.

탄  성  불상제작도 집어치우고?

도  법  응.

탄  성  깊이 생각해보게.

도  법  생각하고 말 것도 없어.

탄  성  자식, 비겁한 놈이군.

도  법  ?

망  령  저 자식 왜 저래?

탄  성  (벌떡 일어서며) 이놈아, 너는 부처님과 약속한 거야. 애초에 방장스님의 명을 받아 초파일까지 완성하겠다고 한 것부터가 부처님과의 약속이란 말이야.

도  법  보름밖에 안 남았는데 나보고 어떻게 하란 말이야.

탄  성  앞으로 보름이나 남았다고 생각하면 되잖아.

도  법  보름 가지고 될 것 같애?

탄  성  임마 그걸 나한테 물어? 돼지우리 장판을 만들더라도 약속은 지켜야지.

망  령  아니… 저 … 저 자식이 산통 다 깨네.




­암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