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장
방장스님의 방.
방장스님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있는 도법.
방 장 거…… 기괴한 일이다.
도 법 제 말이 믿기지 않습니까?
방 장 있을 수 없는 일이지.
도 법 하면 환청이라는 뜻입니까?
방 장 아니지.
도 법 방장스님. 이번 일은…….
방 장 무엇이 가장 무섭던고? 그 모양인가?
도 법 아닙니다.
방 장 하면?
도 법 전체가 다입니다.
방 장 (생각에 잠긴다) 요새 앵두가 나올 때던가?
도 법 아직 이릅니다.
방 장 그럼 딸기는 나왔겠지?
도 법 예.
방 장 난 딸기보다는 앵두가 맛있더군. 앵두는 요만한 게 씨가 커서 먹을 게 별로 없거든. 발라먹어야 되지. 그러니까 맛있어. 언제 앵두를 보게 되면 요만큼만 갖다줄란가?
도 법 예.
방 장 많이 가져와도 못 먹어.
도 법 예.
방 장 내가 요즘 몸이 나빠. 되지도 않는 참선한답시고 몸만 버렸지. 그래서 며칠 전에 운동삼아 몰래 아랫마을에 내려가 보았어. 왜 시장 모퉁이에서 한약방 하는 노인 있잖은가?
도 법 예.
방 장 절이 시끄러워진 뒤론 한동안 못 봤거든. 약도 짓고 한담도 나눌 겸 해서 찾아갔더니만 죽을 때 다 된 놈이 무슨 놈의 몸보신이냐면서 술이나 몇 사발 받아줄 테니 따라오라는데, 딴엔 그래. 해서 나섰지. (꾸벅꾸벅 존다)
도 법 저… 스님……. 스님.
방 장 응?
도 법 저어…….
방 장 아, 내가 어디까지 말했지?
도 법 약주… 드시자고.
방 장 아, 그래 그랬어. 그래서 따라갔지. 가다가 어물전 앞에서 거지를 봤는데 그 녀석이 희한한 놈이더군. 옆으로 기어다니면서 동냥하러 다니는데 왼통 얼굴을 보자기로 싸맸더란 말이야. 멀쩡한 놈 같지 않겠나? 해서 지나가는 척하다가 보자기를 샥 벗겨보았지. 아뿔싸, 그게 아냐. 뭐에 어떻게 됐는진 몰라도 얼굴이 몹시 상했어. 내가 얼마나 난처했겠나. 거지는 거지대로 능욕당했다는 생각이 들어 막 싸우려 들지, 마을사람들은 삥 둘러서서 늙은 땡초 어떻게 당하나 두고보자는 식으로 야멸차게 구경하지… 한약방 하는 친구가 없었으면 크게 혼날 뻔했지. … 자네 정종 먹어봤나?
도 법 예.
방 장 속가에서?
도 법 예.
방 장 참 좋대. 그게 한 병에 얼만고?
도 법 모르겠는데요.
방 장 비싸겠지?
도 법 그렇게 비싸진 않을 겁니다만.
방 장 그래? 다음에 올 때 그것도 사다줄란가?
도 법 예.
방 장 몰래 가져와야 돼.
도 법 예.
방 장 그 날밤 정종을 여러 잔 마셨어. 얼굴이 부한 게 말이 많아지더군. 뭐 이런저런 얘길 했는데 거지얘기가 제일 많았지. 따지고 보면 인간이란 다 거지거든. 빈 몸뚱이에 빈 껍데기지. 해서 김삿갓부터 천사촌 거지 왕초 천팔만이 그리고 청라골 과부거지 등등. 근데 말이야 한약방 하는 친구가 거지에 대해서 아는 게 많더군. 하나가 그럴 듯하더란 말이야. 들어볼란가?
도 법 예.
방 장 중국 어느 지방에 거지가 있었는데 거지랄 수도 없는 거지였어. 왜냐면 아주 비싼 목걸일 하고 다녔거든. 그런데 거지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자기는 땡전 한 푼 없는 거렁뱅이로만 여기고 있었어. 그러다가 우연히 옛 친구를 만났는데 자초지종 얘길 들은 거지는 깜짝 놀랐지. 그 목걸일 보았던 거야. 친구가 알려줬지. “이 친구야, 자네 목에 값비싼 진주 목걸이가 있는데 뭐하러 동냥하러 다니는가. 그걸 팔아 장사를 해도 큰 장사를 할 수 있을 텐데……”
거지는 그제서야 그걸 알고 기뻐했지. 얼마나 기뻤겠어. 거지가 기뻐서 길길이 날뛰는 걸 보고 친구가 또 말했지. “이 친구야. 그 목걸인 본래부터 니 것이었어. 어디서 주운 게 아냐. 그런데 뭘 그렇게 좋아하는 거지?” (자신의 얘기에 재미있어 큰 소리로 웃는다) 본래부터 자기 것인 것을, 이제 생겨난 양 기뻐하는 꼴이 얼마나 우스웠겠나. 하하하하 모든 것이 목탁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지. 안 그래? 하하하하.
도 법 저어… 방장스님? 제가 여쭙고자 하는 것은…….
방 장 (손을 저으면서) 자기의 의지처는 자기인 것이야. 삼라만상이 다 내 것인데 그 무엇이 부족할꼬?
도 법 ……?
방 장 (주장자를 세 번 치고) 돼지 궁둥짝에 목련이야! 할!
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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