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원에서 나오면 안국동으로 바로 이어진다.
예전엔 앞 가슴에 달 수있는 꽃핀이 많이 있었는데 올핸 미니 꽃바구니가 주류를 이루었다.
것도 유행이 있나보다.
어쨌든, 날이 날이니 만큼 울 아부지 엄마를 잠시 생각 해 봤다.
울 아부지.
내 영원한 우상.
난 아부지, 엄마가 부부 싸움 하는 걸 거의 못 봤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인지 2학년 때인지
아침 이슬 마르기 전에 고춧모를 심어야 말라 죽지 않는다고
엄마는 새벽부터 밭에 나가 고춧모를 심고 오시느라 아침이 좀 늦었다.
난 그때부터 시간에 좀 철저했는지 어쨌는지 밥을 먹고 학교를 갔다가는 늦을 것 같아서
밥상이 들어 왔는데도 안 먹고 학교에 가겠다고 가방을 둘러메고 일어섰다.
그걸 본 아부지, 대번에 화를 내시면서 애 굶겨 학교 보낸다며 밥상을 집어 부엌으로 던지셨다.
밥을 먹고 학교에 갔는지 어쨌는지는 기억에 없다.
그날 엄마랑 아부지가 조금 티격태격하는 걸 처음 봤고
이후 한번도 못 봤다.
엄마는 모든 면에서 부지런하시듯 입도 부지런한 분이시다.
세상에 있는 모든 상황을 거의 입으로 다 말해 버리고 돌아서면 잊으시는 분이라고 여겨졌다.
연분인지 어쩐지 아부지는 다행히 그걸 들을 수있는 귀를 가지고 있지 않으셨다.
이만하면 화를 낼 법도 하신데 암말 없이 가만 듣고만 계신다.
엄마의 바가지는 좀 특이 하셨다.
며느리도 없는 것이 한복을 입어서 눈도 침침한데 동정 달게 만든다는 둥.
목아지도 좀 칼칼하게 씻지 더럽게 물만 살짝 같다 대는 고양이 세수를 하니까 동정이 빨리 더러워진다는 둥.
주제에 흰 양말만 신는다는 둥.
성질 고약한 건 발 뒤꿈치에서도 알아 본다는 둥.
발 뒷꿈치가 야무니까 양말이 톡톡 떨어진다면서 비오는 날 돋보기를 쓰고 양말을 꿰메셨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부지는 "무량청정정방심(無量淸靜正方心) 이란 청심주 독송을 눈을 지긋이 감은 채 정좌를 하고 외우고 계셨다.
엄마의 표현을 빌자면 백년 웬수가 따로 없었다.
가끔씩 밥 먹을 때 음색에 화가 섞인 엄마의 잔소리가 시작되면 아부지는 가만히 듣다가 거울을 들고 와서 엄마의 얼굴 앞에 대고 한마디 하신다.
"좀 보게, 어떻게 보이는가? 눈썹이 꽂꽂이 선게 싸납게 생겼지 않은가? 이게 자네 지금 얼굴이네, 보기 좋은가?"
그러면 엄마는 그 자리에서 또 웃음을 터뜨린다.
화가 많았듯 웃음도 유난히 많았다.
엄마가 소리를 내서 웃다가 자지러지듯이 웃으며 꼴딱꼴딱 넘어가며, 심지어 정말로 뒤로 넘어가며 웃으시는 모습은 아주 흔한 모습이었다.
엄마는 화 반, 웃음 반으로 하루를 보내신 분이시다.
어쩌면 그래서 연세가 90인데도 지금까지 정정하게 살아계신지도 모른다.
반면 아부지 표정은 항상 골똘한 표정이셨다.
아니면 무심한, 어디 먼데를 바라보는 듯한 그 아득한 눈빛.
남자답지 못하게 소리를 지르는 법도 없으셨고 껄껄껄 웃는 타입도 아니셨다.
그저 조곤조곤 말씀 하시고 히힛히힛 이렇게 만화책 주인공 호야처럼 끊어서 웃으셨다.
하지만 엄마의 잔소리가 좀 심하다 싶으면 아부지는 딱 한 마디 의성어로 제압을 하셨다.
"싯~~!"
이에 굴하지 않을 때는 두어마디 더 얹혀졌다.
"이~~ 사람이~~!!"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엄마는 어느새 아부지 앞에서 사라지고 없다.
쇠스랑으로 땅을 파고 오는지 호미로 밭을 긁다 오는지 해가 떨어져야 돌아 오셔서 밥을 하셨다.
그러니 서로 상대가 없어 더 싸울래도 싸울 일이 없었다.
초등학교 이후,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부지 화 내는 모습을 한 번 더 봤다.
난 그 모습이 어찌나 생소하고 귀엽던지 화났냐고 옆에서 다시 한번 해보라고 하다가 따귀를 맞았는데도
너무 귀엽고 처음 본 얼굴 표정이라 아프지도 않았고 울지도 않고 너무 신기해서 아부지 얼굴만 쫄쫄 따라다니면서 봤다.
이것이 부부싸움의 전부였고 아부지 화내는 모습을 본 전부였다.
자상하기로 말할 것 같으면,,여자가 거친 것을 만지면 독해진다고 생선이나 육고기는 항상 직접 만지고 요리를 해서 불만 지펴 끓이면 먹을 수 있도록 냄비에 담아 주셨다.
뜨게질을 유난히 잘하셔서 난 어릴 때 아부지가 짜 주신 털 옷(어릴 땐 게옷이라고 불리웠던)을 입고 자랐다.
난, 아부지의 요리 솜씨와 뜨게질 솜씨, 그리고 짜증 안 내고 화 안내는 것, 한량같은 기질을 고스란히 닮아 있다.
물론 나야 부릴이가 없어 그렇지 엄살 또한 고스란히 닮아있다.
엄마한테 전화를 드렸다.
무릎이 아프시단다.
병원 가시고 약 드시라고,,,
나더러도 아픈데 없이 살라고 했다.
잠시 생모도 생각해 봤다.
기억 할 것이 없어 생각 나는 것이 별로 없지만 어쨌든 일생에 눈물과 그리움으로 그리워 하던 여자.
세상에서 가장 치대고 싶었던 여자.
보고싶다기 보다, 뭐랄까,,,아련한,,,아득한,,,
저승에 계신 아부지 엄마,
살아 계신 엄마를 위해 힘 쓸 일 있으면 좀 쓰셔들.
너무 아프지 않고 살다가 곱게 갈 수 있도록 도와 줄 수 있음 도와주고.
알았지?
세상의 모든 엄마 아부지들에게,,,고마움을 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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