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참 길더라"
냉기 가득찬 소리가 유리창에 대고 불면 성에라도 낄 것처럼 여름 한 낮에 허옇게 담배 연기를 내 뿜으며 던진 어머님의 한 숨 속에 섞여 나온 말이다.
어머니 65세에 돌아가셨으니 내 나이 25살 되던 해였다.
"이젠 너랑 살아야겠다. 나 없이도 잘 살았는데 이제와서 뭘? 그러겠지만 지금이라도 너랑 살아야겠다."
다섯살 때 헤어지고 늘 나랑 사는 꿈을 꿔 오신 모양이다.
그 해 겨울 감색 치마에 팥죽색 스웨터, 토끼털 목도리를 두르시고 오셔서 내게 저런 말을 건네더니 그 겨을을 못 넘기고 돌아가셨다.
김장만 담궈 놓고 나에게로 오신다더니 김장 담구던 날 젖국 끓이시다가 쓰러져 영영 못 일어나셨다.
"아가, 나 살아있나 좀 봐줄래?" 그러시면서 만날 때마다 배에다 귀를 대 보라고 하셨었는데.
애기 둘만 낳으면 나에게 해 줄 말이 많다고 하셨는데, 못 하시고 간 그 말씀이 무엇이었을까?
다시 죽어도 좋으니 딱 하루만 다시 살아서 그 말 해 주고 가실 순 없는 일이란 거 알지만 그랬으면 좋겠다라는 허망한 생각을 해 본다.
살아 오신다해도 애가 둘이 없으니 안 해 주실 말씀이지만.
나의 정신 연령은 어디에 머물러 있는가?
사람들이 말하는 다섯살? 아님 스물 다섯 살?
내 요즘 사는 것이 참 길다.
어머님 가신 길과는 다르나 어쨌든 기일다.
어머님 기일이 가까워 온다.
도대체 무엇이 나를 힘들게 하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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