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지

어머니의 손

monomomo 2006. 12. 26. 13:09

 

 

 

 

 

나는 엄마가 두 분이다.

낳아 주신 분과 길러 주신 분.

엄마의 손.

아버님 기일에 가서 찍어 왔다.

생모랑 찍은 사진이 달랑 한장 있고 길러 주신 엄마와 찍은 사진도 딸랑 한장 있다.

아부지랑 찍은 사진은 한 두엇 되나? 세장 쯤?

아니다 길러 주신 엄마랑 찍은 사진도 두장인가보다.

어떤 행사든 나는 그 가족 안에 속해있지 못했다.

그래서 늘 카메라를 내가 잡았다.

작게는 몇명에서 많게는 수십명이 모여도 만약에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난 늘 카메라를 잡는 역할을 했다.

부러.

뭔지 모를 그 어색함 속으로 들어 가고 싶지 않았다.

이 아침(좀 전에 일어났으므로).

물을 끓였다.

정수기 물이 있는데도 가끔씩 끓인 물이 먹고 싶어질 때가 있다.

빽판을 사들고 카페에 가서 죽치며 종일토록 끓인 옥수수차 맛이 생각나서 시장으로 사러 갔다 까먹고 못 사와 슈퍼에서 티백으로 사왔었다.

어떻게 목적을 가지고 간 그 일을 잊고 올 수 있는지 당췌 이해가 안 간다.

넋을 빼고 사는 모양이다.

물이 끓자 티백으로 된 옥수수와 둥글레를 넣으려고 꺼내다가 티백 봉지가 뜯어져서 알갱이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대충 난감.

냉장고에서 깨진 날 계란 청소하는 것과 비슷한 심정.

내려다 보면서 저걸 줏어? 말어? 잠시 망설인다.

주전자에서는 계속 하모니카 소리가 나고,,,

바닥에 떨어진 걸 쓸어 모으면서 내 손을 봤다.

우연이었다. 

부스러기를 버리면서 문득 엄마의 손이 떠 올랐다.

내년이면 90세.

니 아부지 죽고 약 안 달이는 날 하루만 더 살다 죽고싶다더니 아직까지 건강하게 살아 계신다.

아부지가 하도 아파하셔서 아파도 아프다는 말 한 번 할 수 없으셨다고 하셨다.

숨이 끓어질 듯 기침을 하시다가 각혈을 하시는 아부지 앞에선 그 어떤 아픔도 아픔일 수가 없었을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니 아부지가 나중에 사줄테니 팔아서 비료 사자고 팔아 먹은 시계 아직도 안 사준다는 이야기를 어찌나 하시던지 내가 처음으로 번 돈의 거의 전부를 들여서 사준 시계 아직 차고 계신다.

"이거 아직 고장 안 났어?"

"그라제, 밥 잘 중께 잘 간다야"

환갑 때 받은 반지 끼고 계시다가 살이 점점 빠져서 어느날 설겆이를 하고 나니 없더란다.

"죄 받은 것 같다. 니가 등록금 걱정할 때 팔까 말까 했는디 그때 팔았어야 하는디,,,"

그 후로 사다 드린 저 관절염에 좋다는 자석 반지 끼고 계신다.

교회 다닌다고 그렇게 나무라시더니 지금은 더 열성이시고 십자가 목걸이 하나 사달래서 사 드렸다.

교회 가실 때 입으시라고 최고로 근사한 한복도 사 드렸다.

손가락이 저 지경이 되도록 일만 하신 분.

죽을 때까지 아부지가 보고 싶을 것이라는 분.

내게 최초로 살의를 일게해서 더욱 더 종교에 빠지게 만드신 분.

제주도에 산다는 또 다른 딸 찾기에 기꺼이 응해 주시던 그 모습에서 많이 늙으셨음이 느껴졌다.

여기저기 안 쑤시는 삭신이 없고 오줌을 싸면 둔덕이 빠질 것 같다는 말끝에 엄마, 쇠붙이도 10년이면 녹아내리는데 하물며 90년을 쓴 건데 안 아프면 그게 이상한거지,,라고 모진 말을 했다.

위로를 받고 싶었을 텐데.

하여, 처음으로, 45년만에 처음으로 그녀를 안아줬다.

엄마, 당신을 미워한 세월만큼 사랑할 순 없겠지만 건강하게 사세요,,,이 말 대신 한마디 던졌다."또 오께"

 

다음 주나 다다음 주에 미루고 미루던 취재를 간다.

미루어 짐작컨데 그때도 또 돌아서면서 하고싶은 말 다 못하고 "또 오께" 이러고 올 것이다.

 

 

 

범능스님 - 어머니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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