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 배추를 심으려고 텃밭에 갔다.
입추가 지나서 인지 바람결도 달랐고 하늘 색깔도 달랐다.
푸성귀들은 주인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는 말이 맞는 말인 것 같다.
마음이 답답할 때마다 두고 온 고국도 아닌데 망명자처럼 눈만 뜨면 사심해져 딱히 걷어 올 것이 없더라도 다람쥐 새끼마냥 들락 날락 거렸는데
지난주 수안보 캠프를 가느라고 한 주 걸렀더니 텃밭이 마치 미친년 속 것 뒤집어 쓴 듯 어지러웠다.
다행인 것은 다른 텃밭들도 그랬다.
농사를 잘 지은 분들도 계셨고
농사를 못 지은 분들도 계셨다.
아예 잡초를 재배한 밭들도 있었다.
이건 처음 보는 꽃인데 치커리 꽃이다.
양배추 수확 시기를 놓쳐 조금 썩긴했지만 그래도 반땅은 쳤다.
박, 위는 멀쩡한데 밑이 조금 썩어있어서 따다가 썰어서 말렸다.
깻잎도 원도 한도 없이 따 와서 장아찌를 담궜다.
하하하
저번 텃밭 모임에서 먹었던 수박 씨 뿌려 놓은 게 나서 꼬맹이 수박이 달렸다.
어차피 익힐 거 아니라서 따서 맛을 보니 지도 수박이랍시고 수박 냄새는 났다.
더덕 꽃이다.
한 몇년 두면 제법 잘 자라겠지만,,, 내일 일도 모르는데 내년을 기약하기가 좀 거시기 해서 뽑았다.
씨앗을 뿌렸는데 1년생 치고 제법이다.
한 뿌리 씻어서 입에 넣고 씹어 보니 역시나 지도 더덕이라고 냄새가 제법 독하게 났다.
밭을 다 뒤집어 놓고 보니 잡초 등등해서 한 가득.
저걸 밖으로 날라야 한다는데 무거워서 그냥 밭 고랑에 뒀는데
잘 삭혀서 퇴비로 만들어 쓸까 한다.
지난 여름 내내 모아 놨던 잡초가 퇴비가 되서 호미로 긁어 보니 이렇게 통통한 지렁이가 있었다.
아주 훌륭한 퇴비가 된 것이다.
날씨는 여전히 맑았다.
이틀에 걸쳐 잡초 제거와 퇴비 주기, 삽질하기를 했다.
내일도 가야 하고 모레도 가야 할 지 모른다.
비가 온다는데,,,3일 후에 파종을 해야 한다니.
지금은 온 몸 구석 구석 안 쑤시는 곳이 없다.
역시 삽질은 삽질인가보다.
불광역 2번 출구에 나앉아 배추를 팔 것도 아니고
혼자 먹고 살겠다고(사실은 다 나눠 주지만서도) 뭐 이렇게씩이나? 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그래도 내가 하는 삽질은 창조적인 삽질인데
명바기가 하는 삽질은 뭘 위한 삽질인지.
어쨌든,
푸성귀들은 적당한 온도와 양분만 받아 먹고 자라는 것이 아니라 모진 비바람과 쇠꼬챙이처럼 뜨거운 햇볕을 다 받으며 자란다.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죽은 놈도 있고 남들보다 월등히 잘 자란 놈도 있었고 더러는 큰 놈들 사이에 눌려 베실베실한 놈들도 있었다.
이놈들도 사람 사는 모습과 비슷했다.
5평 남짓한 땅뙈기에서 맛 본 힘든 노동(노동이라 말하기엔 창피하지만)의 참맛은
회색 도시에서 매연에 찌든 때를 씻어내리기 충분할 만큼 땀을 흘릴 수 있게 해줬고
뜨거운 냄비 안에서 튀는 콩처럼 자신을 들볶아대는 생활에서 잠시 벗어나 쉴 수있는 초록빛 여유를 즐길 수 있게 해 줬고
수확의 기쁨, 여러 이웃들과 나눔의 기쁨을 누리기에 과분할 만큼 등가교환의 가치가 있었다.
계절이 오는지 가는지 모르고 살다가
텃밭을 하면서 시기와 절기를 가늠 할 수 있게 됐다.
텃밭은 내게 있어 푸르르다 못해 찬란했던 것들도 때가 되면 시든다는 것과
모든 것은 어우러져 맞추어 살아야 한다는 순리와
그 동안 잊고 살았던 계절의 템포를 알려주는 인생의 메트로놈 같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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