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

시골 집에 다녀오다.

monomomo 2009. 7. 2. 15:27

 

 시골집 마당과 꽃밭

 

 

 

 

 

 

가까이 가보니 배도 몇 알 달려있다.

 

 

그런데?? 이 무스그 벌레??

 

 

90이 넘은 엄마 혼자 사는 집이라서 농기구 쓸 일이 없어서 저렇에 녹슨 낫을 찾아 들 수밖에 없었다.

 

 

  

전지를 하고나니 마치 이발을 한 머리처럼 말끔해졌다. 당연히 벌레들도.

쨔식들도 맛을 아는지 새로 난 가지에만 들러 붙어있었다.

 

 

꽃과 나무들

 

 

 

 

 

 

 

 

 

 

그런데 가만?? 이 빨래 가지랑대에 걸린 이 찌그러진 캔맥주 빈 깡통의 정체는???

 

 

하하하.

보리 국을 끓여 드시기 위해 심어 놓은 보리를 내년에 또 심기 위해 씨를 받아 말리는데 새들이 날아 와서 저 깡통 안에 돌맹이 몇개를 넣어 줄을 달아 마루에서 흔들어 쫒는 기구였다.

엄마의 성격이 그대로 그러났다.

아부지는 나무를 심고 엄마는 베고 또 심고 베곤 했다.

앵두 나무는 동네 애들이 와서 따 먹는다고 베버리고, 모과 나무는 먹지 못한다고 베버리고, 무화과 나무는 새가 먹는다고 베버리고, 딸기도 다 캐버리고, 포도 나무, 등등 이 외도 수없이 많다.

그래도 꽃은 무척 좋아하신다.

"아야 이쁜 꽃아 이라고 질람실로 머다로 폈드냐~~ 그래도 이것들은 해마다 피고 지는디 사람은 어째서 한 번 가면 영 안 오까잉~~"

저 말 속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들어 있는듯 했다.

지는 꽃을 만지면서 혼잣말을 하시기도 하고 나한테 설명도 해 줬다.

"지금은 저래도 저 꽃이 한창일 때는 아주 벙실벙실 이쁜 것이 꼭 새각시 치매폭 같이 이뻤단다"

 

 

 

심지어 농약 뭍힌 쌀을 놓았는데 새가 어찌나 영특한지 보리만 먹지 저 쌀 근처에는 얼씬도 않더란다.

이젠 감히 새 대가리라 말하수 없다는~~~

 

 

군청 사회 복지과에서 나누어 준 끌차.

해마다 군청에서 원하는 것 하나씩 해 준단다.

씽크대도 갈아 주고 좌식 수세화장실도 욕탕에 놓아 주고 도배도 해 줬단다.

수세식 화장실이 있는데도 엄마는 소변은 꼭 요강에 본다.

이유를 물었다.

"오줌 째깐 사고 물 내리면 아깝제. 그라고 요강에 받어서 논시밭에 거름으로 줘야제"

켁,

올 해는 지붕을 색칠해 준단다.

"그럼 내년에는 마루 샷시 해 달라고 하세요"

"비싼디 해 주까? 염치가 없어서 말 못해야"

그러면서 또 하시는 말씀.

"눈이 안뵌께 병원 갔더니 백내장인가 그거이라고 수술도 해 줘서 이젠 잘 뵌다야. 그란디 이빨이 영 시원찮해야? 머슬 못 씹어 묵겄어. 대리 아픈께 읍으로 안 가고 여그서 했등만 영 못쓰겄다야"

"가서 말 해. 아프다고"

"했제 안했건냐? 아퍼서 영 머슬 못 씹어묵겄닥한게 어디 내 이빨만 하겄냐고오 다 아프담시로 뻐쓴 거 묵지 말고 보드란것만 묵으라고 하드라. 그랑께 묵을 것이 없어야. 군청에서 일주일에 시번씩 반찬도 가따 주기는 한디 잉 먼 오징어 볶은 거 그런 거슨 못 씹어서 못 묵는다. 맵기도오사게 맵고, 그랑께 작은 집 갔다 줘 분다. 입에 단것이 있어도 그것만 속 빼묵고 줄 수가 없어서 죄 줘분다"

군청에서 틀니도 해 줬단다.

정부미라서 그런지 찰기도 없고 맛은 없지만 쌀도 준단다.

생활 보조금도 25만원 전후해서 나온단다.

일주일에 한번씩 복지사가 와서 물리 치료도 해 준단다.

줏어다 기른 새끼지 내가 낳은 자식 아니라고 사실 확인을 하고, 나역시 상속 포기각서와 엄마의 사실 확인을 인정하는 각서를 쓰고 나서 얻는 댓가이긴 하나 듣다보니 내가 가서 해 드린 건 전복을 사다가 고기랑 푹푹 과서 장조림을 해드리고 돈 몇풑 쥐어준 것 밖에 없어 군청이 나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팡이

 

 

얼마나 저걸 의지하고 다니셨으면 손잡이가 다 닳았다.

저것도 군청에서 나눠줬단다.

 

 

아부지가 절은 멍석

아부지는 뜨게질을 너무 잘 하셔서 당신 옷도 짜 입고 내게도 손 뜨게질을 해서 만든 옷을 짜서 입혔다.

거렁지, 꼴 망태, 등등 기운을 써서 하시는 일은 못하셨지만 차분하게 앉아서 손으로 만드는 것들은 다 잘하셨다.

특히 한 요리 하셨다.

 

 

나는 아직까지 우리 된장보다 맛있는 된장을 거의 먹어 본 적이 없다.

엄마는 음식 솜씨는 엉망인데 간장 된장은 잘 담그셨다.

내가 어느날 물었다.

"엄마는 반찬은 별로 맛이 없는데 간장 된장 하나는 정말 끝내줘?"

"머다? 누구는 머 만납게 할지 몰라서 그란데? 양념 애낄라고 그라제? 첩년들이 다 지돈 아니라고 아깐지 모르고 양념 푹푹 쓴께 만납제. 우선 먹기는 꼬깜이 좋다고 오살놈들, 지 빼꼴 뿌사지는지는 모르고"

어쨌든 엄마가 담그는 된장 간장 담그는 법을 전수해야 하는데.

간장이다.

섞여서 그렇지 40년도 넘었단다.

 

 

 

차부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한 마디 하셨다.

"인자 교회 가서 너 시집 가란 기도도 안 한다. 어짜든지 아프지 말고 살어라. 그라고 서울 살기 심들면 내롸 살어라. 너 지서묵고 사라고 밭 안 폴고 놔뒀다"

 

 

'횡설수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사인 / 달팽이 외  (0) 2009.08.10
재수없는 날, 재수없는 사람 된 날  (0) 2009.08.03
지금 우리 동네는  (0) 2009.07.02
그 많던 컵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0) 2009.06.26
텃밭  (0) 2009.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