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

김사인 / 달팽이 외

monomomo 2009. 8. 10. 12:21

 

 

 

달팽이 / 김사인

 

귓속이 늘 궁금했다

 

그 속에는 달팽이가 하나씩 산다고 들었다

바깥 기척에 허기진 그가 저 쓸쓸한 길을 냈을 것이다

길 끝에 입을 대고

근근이 당도하는 소리 몇 낱으로 목을 축였을 것이다

달팽이가 아니라

도적굴로 붙들려 간 옛적 누이거나

평생 앞 못보던 외조부의 골방이라고도 하지만

부끄러운 저 구멍 너머에서는

누구건 달팽이가 되었을 것이다

 

그 안에서 달팽이는

천 년 쯤을 기약하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고 한다

귀가 죽고

귓속을 궁금해 할 그 누구조차 사라지고

길은 무너지고 모든 소리와 갈증이 그친 뒤에도

한없이 느린 배밀이로

달팽이는 오래오래 간다는 것이다

망해버린 왕국의 표장처럼

네 개의 뿔을 고독하게 치켜들고

더듬더듬

먼 길을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 / 김사인

 

 

하느님

가령 이런 시는

다시 한번 공들여 옮겨적는 것만으로

새로 시 한 벌 지은 셈 쳐주실 수 없을까요

 

다리를 건너는 한 사람이 보이네

가다가 서서 잠시 먼 산을 보고

가다가 쉬며 또 그러네

 

얼마 후 또 한사람이 다리를 건너네

빠른 걸음으로 지나서 어느새 자취도 없고

그가 지나고 난 다리만 혼자서 허전하게 남아 있네

 

다리를 빨리 지나가는 사람은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이네

 

라는 시인데

(좋은 시는 얼마든지 있다구요?)

 

안되겠다면 도리없지요

그렇지만 하느님

너무 빨리 읽고 지나쳐

시를 외롭게는 말아주세요, 모쪼록

 

내 너무 별을 쳐다보아

별들을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내 너무 하늘을 쳐다보아

하늘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덜덜 떨며 이 세상 버린 영혼입니다.

 

*이성선 시인(1941~2001. 5) '다리' 전문과 '별을 보며' 첫부분을 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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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선 시인의 다리 전문과 별을 보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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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  이성선

 

다리를 건너는 한 사람이 보이네

가다가 서서 잠시 먼 산을 보고 가다가 쉬며 또 그러네

 

얼마후 또 한 사람이 다리를 건너네

빠른 걸음으로 지나서 어느새 자취도 없고

그가 지나가고 만 다리만 혼자 허전하게 남아있네

 

다리를 빨리 지나가는 사람은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이네.

 

 

 별을 보며   / 이성선

  

 

   내 너무 별을 쳐다보아

   별들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내 너무 하늘을 쳐다보아

   하늘은 더렵혀지지 않았을까

 

   별아, 어찌하랴

   이 세상 무엇을 쳐다보리,

 

   흔들리며 흔들리며 걸어가던 거리

   엉망으로 술에 취해 쓰러지던 골목에서

 

   바라보면 너 눈물 같은 빛남

   가슴 어지러움 황홀히 헹구어 비치는

 

   이 찬란함마저 가질 수 없다면

   나는 무엇으로 가난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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