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고, 명랑하고, 쾌활하고, 활동적이고, 타의 모범이 되고, 문학적 재능이 있고, 집중력이 있고, 창의력과 발표력이 뛰어나고, 두뇌가 명석하고, 리더쉽이 강하고, 협동적이고, 친구 관계가 원만하고"
생활기록부, 그러니까 통지표 행동발달사항을 장식하던 글귀들이다.
저러던 나는 어디로 간 것일까?
라디오에 사람이 들어있을 거라고 믿고 뜯어서 고장을 내거나 개미 굴을 파헤쳐 마당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는다거나 무지개를 잡으러 산에 올라가 늦게까지 안 들어 올때, 지는 해를 보기 위해 산 너머 산까지 내달리곤 하던 시절, 오밤중에 응가가 마려우면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이러는 귀신에게 잡혀 가느니 차라리 엄마한테 맞는게 낮다 생각하고 참을 때까지 참다가 이불에 실례를 하면 엉덩이가 불이 나게 때리면서 엄마는 말씀하셨다.
"산에 사는 뱅여시는 이 웬수 안 자버 묵고 먼묵고 사는지 모르건네. 이거시 콧구녕이 두갠께 숨을 쉬고 숨을 쉰께 사러따가고 사렀응께 사람이라가제 오따오따~~!! 끌끌~~호랭이가 열두불로 물어가도 속이 시원찬을 끌끌끌~~~"
어릴 적 엄마한테 이 말을 귓구멍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살았다.
호박에 말뚝 박기는 안 했지만 그만큼 엉뚱한 짓을 많이 하고 살았다는 이야기다.
저러던 나 역시나 또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이즈음 나는 좋은 것도 없고 싫은 것도 없고 하고싶은 것도 없다.
눈 감으면 자고, 깨면 눈 뜨고, 배 고프면 먹고, 먹었으니 싸고 산다.
콧구멍이 있으니 숨을 쉬고 숨을 쉬니 살았다고는 하나 엄마가 하던 말처럼 살아있다고 해서 사람이라고 말 할수는 없이 산다.
나처럼 살면 안된다는 기준이 되는 사람이 되지는 말아야할 텐데...라는 걱정만 빼면 그야말로 아무 생각없이.
종족 보존의 본능만 거세당한 동물이나 아메바처럼.
멍~!
텅~!
이렇게도 살아지는구나 싶게 살고 있다.
남은 여생을 알려주는 시계가 알려준 내게 주어진 시간 향 후 10년.
믿거나 말거나가 아니라 정말 믿고 싶다.
엄마, 아부지 돌아가셨을 때 느꼈던 하늘이 무너진듯 깊은 슬픔을 줄 사람이 없다는 안도감.
내 의지로 맺어진 관계나 사람을 만들지 않고 산 게 이렇게 홀가분하다니...
살다보니 이렇게 좋은 일이 내게도 벌어질 수 있구나 싶어 어찌나 위안이 되던지...
까짓 10년, 내 살아 온 인생에 5분의 1쯤이야 "날만 새면 내 것이다"를 읊조리며 날 밝기를 기다리는 점쟁이 징 두드리는 심정으로 버티기 작전이면 거꾸로 매달아논다해도 버틸 수있지.
덕분에 무지하게 편안해졌다.
나이 오십에 철딱서니 없이 저렇게도 좋단다아~~
징~~징~~징~~징~~!!
"날만 새면 내 것이다"
징~~징~~징~~징~~!!
"날만 새면 내 것이다"
징~~징~~징~~징~~!!
"날만 새면 내 것이다"
징~~징~~징~~징~~!!
헉, 가만?
내가 지금 징징대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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