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미련한 생각.

monomomo 2003. 8. 10. 12:57





그 동안 나는 내가 착한 사람인 줄 잘 못 알고 살았다.

착하지 않다고 생각이 드는 행동을 해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설사 조금은 맘이 내키지 않은 일이 있더라도

최소한 내 안에서 합리화가 가능한,

또는 피치 못할 상황 안에서,

직업상,

역할상.

즉 나와의 싸움을 해가며,

남에게 해가 되지 않는 일만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착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요즘은 자꾸만 착하지 않다고 느껴지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 돌아다닌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마음의 소리가 들려 온다.



“그러지 마라!! 그러지 마라!!”



그 동안 착하게 살 수 있었던 이유는

뭐 하나 파고 들면 무섭게 달려드는 성격을 동물적으로 알아서였는지

보지 않고,

듣지 않고,

외면했던 습관이 날 화나게 하거나 딴 생각을 할 수 없도록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를 탓하자니 살고 싶지 않고,

남을 탓하자니 치졸하고,

진짜 머리를 깍지 않는 이상 맘 다스리기 하기도 이젠 벅차다.

상실의 상처가 크다는 걸 너무 일찍 알아서인지,

사유(思惟) 하는 아름다움을 버린지 이미 오랜데,

영화를 버리기엔 너무 오랜 시간을 함께했고 집착했던 일이라,

마치 나를 버리는 일 같아 이렇게 망설이고 있는 것 같다.



병이 아닐까? 의심이 될 만큼 사고의 기능이 정지된 지금.

하고 싶은 일이 없어져버렸으니 해야 할 일도 없고,

삶의 목적이 없어져버렸으니 살아야 할 이유도 없는데,

인생일생 부운생(人生一生 浮雲生) 이요 인생일사 부운멸(人生一死 浮雲滅) 이라!했거늘.

나를 버리고는 살 수 없는 일이지만,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날 살아있게 만든다.

그래!

살아 주자!!

백 년도 못살 인생 살아있어 줘 주는 거야!!



靑山于要我以無語(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蒼空于要我以無垢(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 하네)

聯無愛以無憎(사랑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于如水如風而終我(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나옹혜근선시-



내 방에 정물이 된 듯 앉아서,

득도를 할 생각은 아니지만,

주문처럼 읇조리며 견디어 보자.




언제까지 날 방치 해 둘지는 모르겠다.

중요한 건 생각을 안 하는 것!!!

미련한 것은 계속 살아있어 줘야 한다는 것!!!




나는 소망한다.

날 들끓게 만들 무언가가 날 기다리고 있다면,

제발 나에게 다가 오지 말기를…….








심진스님-무상초.





'끄적끄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라톤 완주 경험기  (0) 2007.01.31
정답 고르기.  (0) 2003.08.15
정당성.  (0) 2003.03.22
봄, 토요일 오후4시에 동숭동 걷는 법.  (0) 2003.03.19
바람에게.  (0) 2003.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