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마라톤 완주 경험기

monomomo 2007. 1. 31. 02:29

 

 

 

마라톤 완주 경험기


그 해 봄에

ㄷ 일보를 펴든 순간

나는 문뜩 달리고 싶었다.

-벚꽃을 보고 달리다 보면 금방 반환 점을 돌아옵니다-라는 글귀에 속아서

아니 나로서는 그때 크게 달리 할 일도 없었고

어떤 견딜 수 없는 상황으로 내 자신을 내몰아 괴롭히고 싶기도 했었다.  

그때 황영조 선수의 인터뷰 가운데

나를 혹하게 했던 -인간이 할 짓이 못 된다고 봅니다-라는 한 마디 말이

나를 겁 없이 마라톤을 뛰게 했다.

도대체 인간이 할 짓이 못 된다는 그 상황을 경험하고 싶어서


올림픽 공원에서 네 번의 연습을 마치고

경주로 내려갔다.

역사 주변에 여관을 잡고

뛰기 두 시간 전에 먹어야 한다는 식사시간을 맞추기 위해

따르릉 시계 맞춰 놓고

소풍가기 전날 밤처럼 설레다가 잠을 잤다.


다음날

운동장에 도착해서

씩씩하게 몸을 풀고 스타트 라인에 섰다.

뜻을 함께 한 수많은 동지들의 씩씩함을 보며 행복해했다.

출발 신호가 떨어지고

우리는 뛰었다.

정말로 씩씩하게

‧‧‧‧‧‧

‧‧‧‧‧‧

‧‧‧‧‧‧

흐흐흐

그런데

경험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10KM도 못 가서 알게 되었다.

벚꽃은 필 생각조차 하질 않고

주최측의 준비가 엉성해서 마실 물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고

온 몸에선 땀이 말라 소금 마사지를 해 놓은 듯 껄끄러웠고

그래도 그 정도는 참을만했다.

괴로운 것은 그래도 오로지 뛰어야만 한다는 것

마라톤은 100M 달리기가 아니어서

되돌아 와야하는 반환점이 있을 줄이야

반환 점의 2분의1도 못 뛰어서

디지털 시계 차 매달고 돌아오는 선수들을 보며

알고는 있었지만 그때 그 막막함이란

달려간 만큼 되돌아와야 한다는 것. 

달리면 달릴수록 되돌아가야 하는 곳이 점점 멀어진다는 것.

그것은 곧 공포였다


완주는 했다.

42,195KM.

4시간 21분 16초.

나와 싸워 이긴 전리품

완주증과 금도금된 완주 메달을 받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다시는 궁금하다고 해서

겁 없이 시도하는 일은

두 번 다시 않겠다는 결심을 하던 중

잠이 들었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다섯 개의 발톱이 피멍이 들면서 죽어갔고

그 발톱들을 보며 악몽에 시달렸고

새 발톱이 나서 매끄러워졌는데도

절대로

절대로

잊을 수가 없었다.

아니 잊지 않을 것이다.

마라톤!

그 공포스럽던 절망에 가까운 막막함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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