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그저,,,그렇게

[Dead Woman's Blues]

monomomo 2006. 2. 27. 12:32

닷새만에 겨우겨우 저녁을 먹었다.

밥을.

 

춘천에서 조카가 왔다.

손자 놈들도 데리고 왔다.

손자 놈들한테 슈퍼에 가서 과자를 사 줄테니 고르라고 했더니

100원짜리 200원짜리 불량 식품같은 것들을 골랐다.

큰 녀석에게 맘에 드는 걸로 골라 보라고 했더니 초콜릿을 골랐다.

 

초콜릿,

초콜릿,

초콜릿,

 

2003년 초콜릿을 어림잡아 100만원어치 정도를 산 기억이 있다.

일단 외국에서 산 것이라 환전 계산이 안돼서 잘 모르겠지만.

내가 외국 여행을 간다고 하자 [Dead Woman's Blues]라는 인터넷 방송을 하던 아이가

"각국의 초콜릿이나 하나씩 사다 주세요, 사탕이랑"라고했다.

나는 그러마고 했다.

10번이나 비행기를 갈아 타면서 5개국 여행길에 올랐던 나는

가는 곳마다 그 아이가 부탁한 초콜릿을 사면서

내 손으로 초콜릿을 사서 먹어 본 적이 없던 나로서는 초콜릿 종류가 그리도 다양하고 비싸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처음부터 한 몫에 샀다면 100만원 어치를 사지 못 했을 것이다.

그냥 초콜릿이 눈에 보일 때마다 하나씩 둘씩 사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살 때마다 그 아이 것도 하나씩 같은 걸로 샀다. 덤으로.

그리그리하여 시간이 흐르자 짐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두개(짐이 늘어나자 하나는 현지에서 샀다)의 여행용 가방과 노트북, 작은 베낭을 들고 여행을 계속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가방 하나는 모두가 그 아이의 짐이었다.

시간이 흘러흘러 하와이를 가야 하는데 문제가 생겼다.

초콜릿이 다 녹아내린다는 것이었다.

그 많은 초콜릿이 녹아내리면 가방 속은 어찌 되겠는가?

하여 나는 결국 하와이와 일본 여행 티켓을 페널티피를 물고 포기하고 돌아오게 되었다.

우여와 곡절 끝에 그 초콜릿을 직접은 전해 주지 못했다.

그 추운 겨울날 약속 장소에 그 아이는 나오지 않았다.  

몇 시간을(몇 시간인지는 모르나 기다리는 내내 소주 두병을 마셨으니) 기다리다 그 무거운 짐을 식당에 맡기고 누가 찾으러 오면 좀 전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서울행 막 기차를 타고 돌아 오면서 취중이기도 했었지만 허망하고허망해서 블루스만 죽어라고 들었다.

편지로 어디어디에 맡겨 놨으니 찾아가라고 해서 나중에 찾아 갔다는 편지를 한통 받았다.

왜 나오지 않았느냐고 묻지도 않았다.

잊었겠거니 생각하고 싶었는데 알고도 안 나왔다는 말을 듣고 어이가 없기는 했지만

사람 맘이 저마다 달라서 이유가 있겠거니 하고 말았다.

초콜릿만 보면 그때의 그 기억이 떠 오른다.

아픈 기억이다.

성격이 이상한 건지 어쩐지 몰라도 쉬 마음 가는 사람을 만나기 어려운 내 마음을

마치 피붙이 같은 느낌보다 더 강하게 어떤 조건도 없이 무작정 마음이 가서 연인처럼 날 사로 잡았던 아이이다.

딱 밥 한끼 같이 먹었을 뿐인데... 가슴에 화인처럼 찍혀서...잊혀지지 않는 아이이다.

이후, 내가 영화 일로 바빠서 음악을 다운 받던 소리바다 방에 잘 가지 못했는데

어느날 갔더니 거기 사람들이 그 아이 아이디를 말하면서 나를 여러번 찾으러 왔다고 했다.

그리고 여행 가기 전에 시디 하나 굽는 분량의 블루스 파일을 좀 달라고 부탁을 했건만

마치 팔 하나를  잘라 달라기라도 한 것처럼 안 주던 파일을 몇개 주고 방송을 통해 목소리도 들려 주며 자기 안부를 전해 줬다.

2004년 11월의 일이다.

그 아이 아이디를 세개 아는데 마치 본인의 아이디처럼 연속적으로 이어보면 꽁꽁 잠그고 과거 속으로 도망 가 버렸다.

음악에서 슬픔이 뚝뚝 흘러 내리던, 눈물이라도 철철 흐를 것 같은 음악을 좋아하던 아이였다.

3년이나 지났건만 어찌하여 그 아이가 가슴에 박혀 잊혀지지 않는 것인지 나 조차도 미스테리다.

평생 동안 화두가 될 것 같은 조짐이다.

무섭다.

나의 예감은 항상 비켜 지나 가 주지를 않아서다.

마음만 먹으면 찾을 수 있었지만 내가 그 아이를 찾지 않았던 이유는 간단하다.

마치 영혼의 쌍둥이인냥 나와 몹시 닮은 사고를 하는 아이라서

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안 보고 사는 것은 참을 수 있으나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나 좋아하는 것은 더 견디기 힘들어하기 때문에

그 아이도 만일 나와 같다면, 그리고 날 싫어한다면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딱 한번만이라도 보고싶다.

하여, 머잖아 춘천행 기차를 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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