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것.
분명 죽음이란 것보다 더 어려운 일임에 틀림이 없을 것 같은데
쉽다고해서 삶을 포기하고 더 쉽게 택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
내게 있어 죽음을 두고 해 왔던 고민은 깨끗하게 죽음을 맞이 하는 일이 가장 컸다.
하여 깨끗한 죽음을 맞이 할 한 노인을 통해 한 아이와의 우정을 그린 시나리오도 쓸 만큼.
그때도 힘들었다.
그 할아버지와 노인의 입장에 서서 내 마음을 채화한 대사를 내 밷아야 했었기 때문에.
지금은 죽어 가는 한 여자가 자신의 부재 이후에 혼자 남을 남편을 위해서 자신의 역할을 대신 할 동반자를 찾아 주는 이야기를 쓰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마치 그 여자가 된듯 아프다는 것이다.
죽어 가는 한 여자가 치료비로 돈을 다 쓰고 가산을 거덜을 내고 갔다는 내용을 옆 자리에서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 장면의 드라마를 봤다.
그 죽어 가는 여자는 돈이 없기도 하지만 그래서 치료를 거부하고 있는 중이다.
아이들이 셋이나 있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치료를 하면 과연 사느냐가 문제다.
그런 시설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은 이렇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자신을 정리할 시간을 갖게 해 주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는.
해보지도 않고 치료를 거부하는 것은 나쁘다 이런식의 이야기 보다는.
생명의 존엄성에 관해 업씬여지자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생로병사의 문제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급사나 돌연사가 아니라면.
그래서 그런지 나는 장기 기증을 거부하는 사람이다.
진시황제가 불로장생의 불로초를 찾아 헤맸지만 불가능 했던 일 아닌가?
수 많은 의사들이 불가능에 도전하고 히포크라테스선서를 하고 의술을 발전 시켜 나가지만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다.
손톱 밑의 가시나 고름을 짜내듯 쉬운 병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병에 걸리면 그냥 순순히 받아 들여서 남은 삶은 잘 정리하고 죽는 것.
그 것이 마치 문화처럼 되어진다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집안에 환자가 있는 사람들이 들으면 맞아 죽을지도 모르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시나리오 처럼.
그런데 과연 죽음이란 뭘까?
생명체가 생명을 잃는다?
육신을 통한 생각이 없어진다?
이승에서 영혼이 사라진다?
나로서는 해답을 찾기 어려운 문제다.
하여 나는 이리 규정을 지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오듯이 자연의 섭리일 뿐이라고.
죽음은 끝이고 그 다음은 내가 할 걱정이 아니라고.
이상하다.
아픈 것은 두려웠지만 죽는 것은 두려워해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이 설혹 가슴이 찢어지게 아픈 이별이라 할지라도.
아버님 아프셔서 삶에 연연해 하시며 몸에 좋으시다는 온갖 약을 다 드실 때도 난 이렇게 물었다.
"아부지, 그렇게 살고 싶으세요?"라고 .
아부지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으면서도.
어머님 뇌사상태로 여러날 병원에 계실 때도 그랬다.
어차피 살 수도 없는 건데 괜히 고생만 하시는구나...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엄마를 사랑 했으면서도.
그런 엄마 돌아 가셨을 때 난 기절을 했었다.
그건 순전히 내 설움이었지 죽은자에겐 그저 순리가 찾아 와 맞이했을 뿐인데도.
친구가 자살을 했을 때 그 놀라움이란 이루 말 할수가 없었지만 나중엔 결국 생각을 정리 했다.
그렇게 정신이 나서 사는 것 보다는 잠시 정신이 돌아 왔을 때 본인을 인식하는 순간
더 사는 건 아니라고 판단한 그 친구의 용감함에 "참 현명한 아이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차라리 잘 된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은 옆에서 지켜 보는이들을 힘들고 아프게 한다.
나도 그랬으니까.
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건 옳다 그르다를 떠나서 인연을 맺지 않는 것이다.
특히 피붙이 같은 것은 더욱 더.
그것은 마음과 달리 천륜이기 때문에 인력으로 잘 안되는 부분이니까.
누가 내가 죽는다고해서 서럽게 울고 아파하는 상처를 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정도쯤이야 얼마든지 해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인생의 깊이와 맛을 99,99% 모르고 사는 삶이라해도 어쩔 수가 없다.
그리고 지금 그리 산다.
잘 사는 건지 못 사는 건지 생각하지 않는다.
난 그저 주어진 기간 동안 열심히 살다가 가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쓸쓸하겠는가?
그렇다고, 쓸쓸하지 않자고 생각을 바꿀 수는 없는 법 아니겠는가?
웬 괘변인지...
갑자기 수제비가 먹고 싶다.
살아야겠기에.
어쨌거나 내 시나리오의 주인공이 좀 씩씩하게 삶을 마감 하길 바란다.
다 쓰고 나면 나와 함께 사느라고 힘들게 살다 간 그 주인공을 위해서 기도해야겠다.
결론은 아무리 드라이한 척해도 그건 드라이한 척일 뿐이지 결코 드라이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거울이 되어 - 김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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