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라질,
휑한 기분이 영 사라지질 않는다.
게다가 소리를 지를 수도 없는 화까지 겹쳤다.
1년간 진행 해 오던 시나리오 개발이 더럽게 꼬이기 시작했다.
에이라는 회사에서 투자 개발을 시작했는데 비라는 회사가 500억 펀딩을 받아서
에이와 비가 어차피 같은 고리에 연결 된 회사이고 보니
에이에서 계속 개발을 할지 아님 비로 넘길지 아님 에이와 비가 같이 공동으로 개발을 할지
11월 초에나 결정이 난단다.
지금은 책임을 지고 의사 결정을 할 사람이 아무도 없단다.
우라질,
이런 경우를 뭐라고 해야 하나.
가슴 휑한건 내 개인의 문제니까 참으면 되고
목 디스크 역시 개인적인 문제니까 죽던 살던 내가 해결하면 되지만
저놈의 시나리오는 감독과 함께 쓴 작가와 프로듀서 그리고 함께 일하는 선배까지 결부 된 일이라서 쉽지 않다.
1년을 허비했다고 생각하니,,,책임감도 무겁고,,,마음 같아서는 까짓 계약금 그냥 콱 토해 버리고 다른데로 튀고 싶은 마음도 없잖지만 계약은 계약이니 그쪽에서 놓아 주어야 움직이든지 말든지 할 수 있으니 그도 수월찮은 일이다.
답답한 마음에 선배한테 전화했다.
"기다려 봐, 왜 그렇게 안절부절이니?"
"알았어"
알았다 그러고 끊기는 했지만 뭘 알았단 말인가?
선배는 항상 내편이지만 10년 넘어 알고 지내 온 지금까지 한번도 내게 말을 따뜻하게 해 준 적이 없다.
우린 그냥 믿는 사이인가?
머릿속이 온통 아수라장이다.
눈물이 나왔다.
누구 말처럼, 우는 게 아니고 눈물이 그냥 흘러나왔을 뿐이다.
그제 산행이 꼴랑 2시간 반짜리였음에도 무리였는지 장단지가 땐땐해서 걸을 때마다 아프다.
산에 가서 아픈 건 산에 가서 풀어야 한다는 말이 생각 나서
산에나 갈까싶어 베란다에 나가보니 북한산 자락이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안개가 덮혀있다.
마치 지금의 내 마음처럼.
안개로 뒤덮힌 맘 싸안고 안개 속으로 들어가 뭣하랴 싶어 가지 않기로 했다.
미련한 것 같으니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