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柱八字
네개의 기둥에 여덟개의 글자로 인생의 항로가 정해져 있다는 말이란다.
커허~~
이런 이런.
뭐 이리 말도 안 되는 억지가 있냐 이말이단 말이다.
하여간 어제 내 년월일시로 풀어 본 사주를 주절거려 보려한다.
양팔통
이른바 남자 사주란다.
그렇게 태어났단다.
결론은 안 좋다는 이야기다.
해서 질문했다.
시절이 바뀌었잖아요.
맞는 말이란다.
그래서 평생 일만하다 죽을 거란다.
내 꿈은 노는 건데
참 더러운 팔자다.
것도 꿈이라고.
미혼이라고 했더니
그선생 왈.
잘하셨어요. 그리고 하지 마세요.
만일에 했다면 남편이 이미 죽었거나 이혼했을 겁니다.
다시 한 번 크허헐~~
신앙이 있으시냐고
기독교라고
좋다고
이유인즉은 영혼이 너무 맑고 영해서 신앙을 가지지 않았다면
신 앓이를 하다가 신 내림을 받아서
작두를 타고 요령을 흔들면서 칼 춤을 췄을 것이란다.
칼춤이라,,,
어쩌다 따라간 나이트 클럽에 끌려나가다시피 무대에 오를라치면
그야말로 전신마비가 되는 내가 칼춤을?
상상만해도 끔찍한 일이다.
일단 나는 토(土)로 둘러싸여 있단다.
꽃 피고 새 우는 춘 삼월 같은 물 오른 높은 산.
하여 늘 세상을 바라 보는 눈이 하찮단다.
내가 하찮으면 하찮지 세상이 하찮다니,,,
그리고 목(木)과 수(水)가 적절히 있는데
토 3, 목 3, 수 2 이다.
여기서 문제는 금(金)과 화(火)가 없다는 것이다.
저런 인생은 죽 쒀서 개 주는 형상이라는 말이었다.
나를 통해서 남들은 다 잘 되는데 정작 나는 돈을 무지 만지고 벌긴 하지만 창고에 쌓일 틈이 없단다.
헐~~
그래서 팔도를 누비며 여관 밥 먹고 날 밤 새며 뒷 다리가 빳빳해지도록 뛰어 다니며 번돈으로 산 집 두채나 말아 먹었나보다.
어디 그 뿐이랴.
900평짜리 땅도, 300평 짜리 집 지을라고 사 놓은 땅도 다 말아 먹었다.
우수운 위안이 되었다.
판단력, 직관력,이 뛰어나고 정확하고 빠르단다.
그런 애가 돈을 갖다 버려?
현찰로 8천 넘게 떼이고 그 외에도 받을 돈이 근 4천이 넘는데 아무도 갚을 생각을 안 한다.
외려 내가 됫박쌀이라도 사다 줘야 할 형편이다.
달란 전화도 하지 않는다
더 빌려 달랠까봐 겁나서.
지금은 뭐 빌려 달래도 빌려 줄 돈도 없지만서도.
어째 이 대목은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주관과 개성이 뛰어나단다.
하긴, 귀는 얇지 않지.
개성?
개성이라면 한 개성 하긴 하지.
다만 그것이 퍼스낼러티가 아니고 도그낼러티라 문제지.
결론은 고집이 쎄다는 말이다.
배짱 두둑하고 중후하단다.
배짱, 좋지.
안 되면 되게하라가 내 생활관이니까.
게다가 물러나야 할 상황이란 거 뻔히 알면서도 일단 밀어부치고 보는 저돌적인 불도저형 아니던가?
-
잠시 새자면 엑스트라 300명 불러 놨는데 비가 와서 가고자 하는 촬영장을 갈 수 없었던 때가 있었다.
그럼 촬영은 펑크가 나고 수 천만원이 한 순간에 날라간다.
그래도 감사에는 걸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천재지변이니까.
헌데, 난 어쨌느냐. 모래를 서너차 사다가 뿌려 길을 만들어서 촬영을 강행할 정도였다.
작가들의 자유로움은 끝 간데가 없다.
한 겨울에 봄 장면을 써 준다.
그때, 난 어쨌냐하면.
비닐 하우스 한 동을 사서 카메라 앵글 안으로 들어 올 만큼 논과 밭에 푸성귀를 심고
소품부 닥달해서 진달래 개나리 만들어내라 족쳐서 길에 심게해서 촬영을 강행했다.
12월에 여름 장면 써 주는 작가도 있다.
그땐 또 어쨌느냐.
배우들 반팔 입혀서 온 서울, 경기 공원을 다 뒤져서 상록수만 있는 곳을 헌팅하게 한 후 찍었다.
심지어 어떤 작가는 모레 방송인데 오늘 원고 넘기면서-쮜리히 공항- 또는 -바그다드 모모 호텔 앞-
이런 장면도 넣어 준다.
그때도 물론 찍어낸다.
일단 자료를 수집해서 세계 어느 나라든 그 나라 글자가 쓰여진 소품을 준비해서 그 나라 비스무리한 분위기를 만든 후 찍는다.
프라자 호텔 귀퉁이나 회전문을 찍은 후 자막을 넣으면 그냥 저냥 넘어 간다.
그래도 찔리는 게 있었는지 우리끼리 농담을 한다.
"알아보면 어떡하지?"
"아니 그 호텔 회전문이라고 뭐 별 다르겠어? 달라봤자지 뭐. 그리고 알아 보는 놈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 눈깔을 확 뽑아 버리지."
진짜로 나타나면 눈깔을 뽑지도 못 할 거면서 입만 살아서 큰 소리만 쳤다.
다시 말해 순 사깃꾼이었다.
36박 37일을 하루도 쉬지 않고 촬영을 한 적도 있었고
잠 안자고 68시간을 촬영 한 적도 있었다.
짧으면 5박 6일에서 길게는 6개월까지 사방천지로 끌고 다니면서 촬영을 하던 시절
어떤 스텝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어제 집에 갔는데 말이야, 우리 애가 이 아삐를 못 알아 보더라구."
그땐 쫌 찔렸지만 어쩌랴,,내 하는 일이 그런 것을.
그때, 난 첫째, 시청자와의 약속을 가장 우선시 했을 때니까.
그 짓거리가 싫어서 때려쳤지만.
밥 굶기는 건 다반사라서 할 말도 없다.
독종이었다.
무식한건지 배짱이 두둑한 건지 군말없이 순순히 따라 준 분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
중후,,,정확한 뜻은 모르지만 이 덕대에 안 중후하면 어쩌라고.
가장 문제인 것은 이상과 꿈이 너무 고고해서
현실과의 갈등이 심해서 늘 힘들 거란다.
고고는 무슨?
영화쟁이라함은 술상에서 젓가락만 안 두드린다 뿐이지 이른바 화류계 인생인데,
내 흔히하는 말로 갈보같은 인생인데 뭔 고고?
의리가 있단다.
한 번 옳다고 생각하면 죽어도 뜻을 굽히지 않는
쉽게 설명하자면 조폭 기질이 있단다.
허~~
조폭이라니,,,
때리는 거 일생에 조카 두번 때려 본 거 외엔 그 쪽으론 전혀 문외한이거니와 취미가 없는데.
하긴 누가 취미로 때리겠는가만.
마음에 사람을 두면 절대 내치지 않는다는 부연 설명을 해 줬다.
맞는 말이다.
어쨌든, 그래서 어찌 살까요? 라고 물었다.
가장 어울리는 직업은 성직자지만 지금 살던대로 살면 된단다.
크~~
딱 중질이나 하면 어울릴 인생이군.
그러지 뭐.
뭐 달리 살 줄 아는 것도 없고.
서울이 싫은데 어디서 사는 것이 좋겠어요? 또 물었다.
따뜻한 남쪽 섬.
헉~~!
너무 놀랐다.
내가 늘 부르짓던 말이었다.
구체적으로 어디? 곧바로 물었다.
이를테면 제주도나 뉴질랜드 같은 곳요.
헉~~!
저 또한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 곳인데.
혹시,,,춘천은 어떤가요?
즉각 답이 나왔다.
방점을 찍듯 단호함이 서려있었다.
안. 돼. 요.
훔,,,시집 갈 때 고모도 저 시집 가는 데 따라 가면 안되겠냐고 하던 철부지 조카가 살고 있다.
이번에도 와서 전세금 빼서 거기다 집 사면 안 되겠냐고 징징 거렸다.
고속 철도가 완성되면 서울하고 한시간도 안 걸린다면서.
혹시 도화살 같은 건 없나요?
꼭 해보고 싶은 질문이었다.
전혀~ 단 한개도. 공방살만 그득하네요.
복주가리도 없지.
어쩐지 일생에 자고 싶은 사람이 없더라니 것도 팔자였네.
그럼 오래 사는지는 좀,,,
무지무지 오래 삽니다.
헉~~~!!
큰일이다.
정말 박복하구나.
심지어 오래 살기까지 한다뉘.
걱정이 태산 같아졌다.
내 전생은 파계승이었단다.
그래서 반 도사란다.
빼갈을 마셨다.
지금 일어났다.
아직도 입에서 빼갈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
주신에게 혼나고 있는 중이다.
어리버리어리버리.
이상 공식적으로 일생에 처음 본 사주팔자 이야기 주절주절 끝.
입 속을 뱅뱅 돌면서 못 물어 본 말 하나.
혹시 십자가를 버리고 칼 춤을 추면 돈 많이 버나요?
많이 번다면 잠시 작두를 타서 돈을 벌어 영화나 제작해볼까~~하는데.
차마 못 물어 봤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 본다면
아주 희귀한 팔자란다.
뭐든 닥치는대로
팔자려니 하고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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