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쏘옥 드는 기호 식품을 만난다는 것.
행복한 일이다.
후배가 커피를 하나 선물했다.
그 후배는
너 나없이,
양파육간에 끼인 투명막 만큼의 간극도 없이 지내는 아이다.
이쁘고, 사랑스럽고, 자랑스럽고, 심지어 존경한다.
당당하고, 책임감있고, 똑똑한데다가 심지어 슬기롭기까지 하다.
난 지금껏 그 아이처럼 흠 잡을 데 하나 없이 완벽에 가까운 아이를 본 적이 없다.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친구와는 또 다른 느낌의 아이다.
우리가 안지도 벌써 24년째 접어 들었다.
그 아이를 처음 만난 날이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자주 가던 단골 카페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술을 마시던 날이었다.
난 술을 마시면서
아무 생각없이 누구의 발인지도 궁금해하지도 않고
내 시선이 머무른 프레임 안에 꽉 찬 브로우 업 된 한 부분.
음악에 맞춰 발목춤을 추던 농구화 짝 하나만 보고 있었다.
술을 마시고 안주를 집으려 안주통에 손을 갖다댔는데 아무것도 집히지 않았다.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어머 이거 OO씨 안주예요?"
고개를 들어 소리나는 쪽을 쳐다 봤을 때 배우보다 더 이쁜 얼굴 하나가 클로즈업 되었다.
이어지는 팬 다운, 업.
발목 춤을 추던 농구화 짝 주인이었다.
생면부지의 사람이었는데 이름을 불러 놀라 물었다.
"저를 아세요?"
"예."
"어떻게?"
"아,,,친구한테 들었어요."
"뭐라고,,,"
"글을 잘 쓴다고,,,아니,,,글을 쓰고자 한다고"
켁,
그날 그 아이는 곧바로 난데없는 질문을 했다.
만난지 5분도 안되서 다벗번째 던졌던 말이었다.
"사랑이 동시에 두개가 가능 할까요?"
"글세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한참 긴 설명을 했는데 기억엔 없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내가 물었다.
"이름이 뭐예요?"
"아,,전 의상학과에 다니는 OOO예요."
"예"
"우리 이러지 말고 소주 사 들고 학교 올라가서 금잔디 광장에서 마실래요?"
"약속이 있어요"
"몇시?"
"OO시"
시계를 잠시 보고
"아직 시간 많이 남았네요"
우리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수퍼에 들러 소주를 사 들고 금잔디 광장 야외 음악당(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에 가서 소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참, 약속 있으시댔죠?"
"아,,연극 한편 보려고 그랬었어요"
"같이 가서 봐요"
우리는 하루도 끊일 날 없이 최루탄 냄새가 진동하던 캠퍼스를 가로질러 내려와 대학로로 향했다.
그날 본 연극 제목은 '멈춰 선 저 상여는 상주도 없다더냐'였다.
연극 보는 내내 술 기운이 있어서 그랬는지 반은 자고 반은 졸고해서 뭘 봤는지 기억에도 없다.
이후,
우린 툭하면 만나서 음악을 함께 들으며 술을 마셨고.
수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20대에 걸맞은 인식과 사유의 기쁨을 만끽했다.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최루가스 냄새를 겁내지 않고 휘젖고 다니며 목소리를 높였던 열혈투사.
덕분에 민주화가 왔는지 어쨌는지 모르지만
지금도 여전히 이땅의 문제에 대해 진진하게 고민을 하며 살고 있다.
짜증도 많고 화도 많았지만 늘 정의로웠던 아이.
지금 책 출판 문제로 잠시 귀국을 해서 호텔에 묶고 있다.
식당 밥이 싫다고 벤또(도시락)을 싸오란다.
어제, 도시락을 싸다 줬다.
귀찮아서 나도 잘 안 해 먹는 밥을 해서.
내게 즐겁게 도시락을 싸게하는 마음을 동하게 하는 아이에게 감사한다.
커피 냄새가 온 집 안을 휘감고 돌며 진동을 한다.
지금껏 내가 마셔 본 커피 중에 맛이 가장 마음에 든다.
딱 이거야싶게 입에 맞는 기호 식품을 만난다는 것.
행복한 일이다.
사람을 만나는 일도 이렇게 기호 식품을 만나는 일과 같다.
내겐 이렇게 입에 딱 맞는 기호 식품과 같은 친구와 동료 그리고 선 후배들이 있다.
행복한 일이다.
난 내가 가끔씩 자랑스럽고 뿌듯할 때가 있다.
그건 바로 다름 아닌 저런 입맛에 딱 맞는 기호식품과 같은 존재들을 명확하게 가려 낼 줄 아는 능력이 있다고 느껴질 때다.
사람을 마음에 들이는 일.
내게 있어 흔하거나 쉬운 일은 아니지만
평생을 갈 수 있는 아름다운 관계가 있다는 것에 또 한번 감사한다.
비가 온다.
낮 술 대신 커피를 마시면서
즐겨듣는 음악 방송 음악을 듣는다.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