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거북이 한마리-이 병률-끌림

monomomo 2007. 7. 4. 08:44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 다녀와 일을 하고 있었다. 전화가 걸려왔다. 모르는 번호가 찍혔다.

 

'던' 이란다.

던은 내가 두 번째 앙코르와트에 갔을 때 사흘 동안 사원을 안내했던 친구.

스물한 살이었고 얼굴이 까맸고 축구를 좋아 했고 사원에서 나를 기다린다고 해놓고 잠이 들어 나를 잃어버렸던 친구.

 

내가 앙코르와트가 좋아 그곳에서 한 달 정도 살고 싶다고 했을 때 다시 오면 알려 지지 않은 작은 사원에도 데려다 준다고 했던. 다시 오게 되면 그땐 일반 숙소가 아니라 농담처럼 너의 집에 머물겠다고 했을 때 [다 좋은데 우리 집은 전기가 안들어와서 어두워.] 라고 말했던.

 

전화를 걸어온 이가 던이라는 사실을 아는 순 간 아무말도 못하고 멍해져 있는 그 몇 초 동안 나는 내가 돌아온 날짜를 헤아렸고 내가 두고 온 것이 있는지를 되돌아봤고 사원의 조각과 나무와 바람들을 떠올리느라 대답이 늦었다.

 

나는 웃을 수도 없었고, [왜 전화했어?] 라고 물을 수도 없었고 [잘 지냈니?] 라고 물을 수도 없어 싱겁게 말했다. [한국에 온거야?] 아니라고. 캄보디아라고. 대뜸 그가 언제 올 거냐고 묻는다.

던은 '내가 다시 오게 되면' 이라는 가정으로 그에게 수도 없이 물었던 질문들을 기억하고 내가 곧 올 줄 알았나 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그렇게 금방 돌아갈 거라고 그는 믿었단 말인가.

나는 말을 잇지 못한다.

 

내가 오면 공항에 나와주겠다고 한다. 내가 오면 호수에 가서 수영하자고 한다. 나 오면 예쁜 여자 친구들도 많이 소개시켜줄 것이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타프롬 사원에도 다시 꼭 가보자고 한다.

그렇게 쓸쓸히 전화를 끊고 세수를 하겠단 마음이 들어 욕실에 들어가 거울을 보는데 내 얼굴은 무

엇으로 붉어져 있다.

그것이 앙코르와트를 감쌌던 노을 같기도 했고 앙코르와트를 적시던 아침 태양 같기도 했다.

 

어쨌든 그것은 세수를 하고 나서도 한참 동안을 붉었다.

 

 


사람이 사람을 믿어야 하는 일은 당연하고도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 일로 몇 번의 죽을 것 같은 고비를 겪은 적이 있는 사람한테는 사람 믿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을 거란 생각.
내가 아는 사람 중에는 마음 아프게도 사람때문에 마음 아픈 일이 많아 아주 먼 나라에 가서 살게 된 사람이 있다. 정말 그렇게까진 하지 않으려 했던 사람인데 사람을 등지는 일이, 나라를 등지는 일이 돼버린 사람.
 
쓸쓸한 그 사람은 먼 타국에 혼자 살면서 거북이 한 마리를 기른다. 매일매일 거북이한테 온갖 정성을 다 기울인다. 말을 붙인다. 그럴 일도 아닌데 꾸짖기까지 한다. 불 꺼진 집에 들어와 불 켜는 것도 잊은 채 거북이를 찾는다.
외로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존재가 세상 어딘가에 있을 거란 확신으로 거북이에게 기댄다. 근데 왜 하필 거북이었을까?
 
[거북이의 그 속도로는 절대로 멀리 도망가지 않아요.
그리고 나보다도 아주 오래 살 테니까요.]
 
도망가지 못하며, 무엇보다 자기보다 오래 살 것이므로 내가 먼저 거북이의 등을 보는 일은 없을 거라는 것. 이 두가지 이유가 그 사람이 거북이를 기르게 된 이유.
 
사람으로부터 마음을 심하게 다친 사람의 이야기.

 

 

*비가 억수로 쏟아진다.

 설마 어떤 이의 죽음을 애도 하는 것은 아닐테고

 하늘이 뚫린 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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