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그저,,,그렇게

정체불명의 요리.

monomomo 2007. 9. 18. 10:48

 

운동 삼아 오르락 내리락 거리기도 좀 부담스럽고 비가 억수 장마가 져도 끄덕없는 고지대 사는 관계로다가 담배가  떨어지면 게으른 나, 사러가? 마? 꽁초 주워 펴? 이런 갈등을 하지 않으려고 보루로 사 나르던 담배를 좀 줄여볼까 하고 낱갑으로 사다 폈다.

내 게으름을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왠 걸?

게으름을 이기는 놈이 있었으니 바로 중독이란 놈이었다.

 

며칠 전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 후배가 집에 가기 싫다면서 부침거리 야채들을 사와서 집에서 부쳐 먹었다.

그 때 남은 야채들이 그득한데 머잖아 이것도 썩어나갈 것 같았다.

친구들이 복숭아 세 박스 사 온 것 반은 이미 버렸다.

포도도 그대로다.

복숭아 썩어서 버렸다고 친구한테 말했다가 뒤지게 욕만 얻어 먹었다.

"이를 악물고 억지로라도 먹어야지 먹을 거 버리면 죄 받는다 너?"

"아니 누가 안 먹고 부러 버렸나? 입이 하나라서 그렇지. 남을 주재도 그렇지 동네 사람을 알아야 주지. 슈퍼 아주머니랑 식당 아줌마 그리고 미장원 아줌마만 아는데 슈퍼엔 복숭아가 그득하고 식당 아줌마는 눈 씻고 찾아 볼래도 웃음기라고는 안 보여 주고싶지 않고 미장원 아줌마는 시간차가 안 맞아서 부러 나가기가 거시기 하니까 못 줬어"

"그러니까 열심히 먹으란 말이야 열심히"

"누가 가지러 온다고 했는데 혹시나 기다려도 바쁘다고 안 오네? 그러니까 왜 그런 걸 그렇게 많이 사오냐고? 그렇게 좋아하는 무도 너무 커서 버리는 게 많아 잘 안 사는데"

되려 큰소리를 쳤다.

작년에 멋 모르고 겁없이 텃밭을 가꿔 거기서 나온 야채들 박스로 친구들한테 배달하고 김장철에 나온 무, 배추는 무의탁 노인들한테 다 기증을 하고 놀래서 올핸 그냥 선배 것 얻어 먹는데 것 마저도 소화를 못해서 이 사람 저사람 나눠줬다.

 

이 소릴 들은지 얼마 안되서 그랬는지 마음에 걸리는 게있어 야채들 썩기 전에 부침을 부쳐 먹기로 했다.

아뿔싸, 그런데 부침 가루가 모자라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사러 갈 내가 절대 아니다.

모자라면 모자라는대로.

으흐흐흐.

가관인 부침개가 되었다.

일단 끈기가 없어 뒤집어지지도 않았다.

후라이를 하고 싶어도 늘쌍 스크램블을 만드는 실력으로 그냥 익기라도 하라고 후라이팬 뚜껑을 덮어 뒀다.

잠시 후 보도 듣도 못한 정체불명의 요리가 탄생했다.

부침개도 아닌 것이 죽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볶음도 아닌 것.

중국 음식 해물탕처럼 걸죽한 것이 야채탕이 되었다.

안 먹고 버려도 본 사람 없고 내가 말만 안 하면 욕할 사람도 없건만 꾸역꾸역 먹었다.

"이를 악물고 억지로라도 먹어야지 먹을 거 버리면 죄 받는다 너?"

이 소리 두 번은 듣고 싶지 않아서 먹긴 했지만 실수로라도 이런 음식은 만들어지지 않기를 바라지만 이런 일 또 생기면 아마 그 때도 난 부침 가루를 사러 가지 않을 것 같다.

게으름, 약도 없는 고질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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