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 겨울,
이른 저녁을 먹고 산책을 나갔다.
상원사 입구에 있는 전나무인지 삼나무인지 가로수가 쭉 펼쳐진 곳으로.
눈이 무지무지 많이 내렸던 날이었는데
걸으면 걸을 수록 멀어지는 절집을 뒤돌아 보며
되돌아 가야 하는데,,,되돌아 가야 하는데,,,를 되뇌이며 앞으로 걸었다.
해질녘, 슬로프를 마다하고 클로스 오버 코스로 새서 스키를 타다
홋카이도 바닷가 절벽 앞에서 흰색에 홀려 넋을 놓고 서 있었다.
배를 타고 제주도에 갔다.
브이자를 만들며 부서지는 흰색 포말의 강렬한 유혹에 홀려 엉엉 울었다.
가을 산에 군락으로 펴있는 하얀 구절초에 홀리고
흰구름에 홀리고
산안개에 홀리고
물안개에 홀리고
홀리고 홀리고 또 홀리고
하얀 것들에게 홀리면 머릿 속까지 새하얗게 된다.
홀리면서 사는 삶.
돌아 보면 새하얗게 빈 것.
허무하고, 허망해서,
단호하게 절제하며 질 높은 삶을 살아내기 위해 참고
기실 상처가 두려워 포기하고 외면해 버린 삶.
그 우아한 삶, 가슴 속 깊은 곳에 꼭꼭 숨어 사라지지 않는 것.
이해하고, 용서하고, 고마워 하고, 심지어 지금 시간과 아무 상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있었던 사실은 없어지지 않는다.
침묵이 관계에 있어서 얼마나 많은 분별을 하게 하는지
분별로 인해 받는 상처의 깊이는
찌른 자는 없어도 찔린 자만 있는 절대 고독의 순간이다.
영화의 시작은 잔물결에 겹쳐진 여주인공 젊은 시절 얼굴에 나레이션이 깔리면서 시작된다.
직설적이면서도 모호하고 달콤 하면서도 아이러니한 사람 휘오나는
기억하려 해도 돌아서면 잊혀지는 것.
잊으려해도 잊혀지지 않은 것들이 있다고 말한다.
'허무하고 허망하다' 주인공 남자가 한 말이다.
영화를 보는 동안 두어번 울컥 하긴 했으나 거기서 쉬 그쳐졌다.
헌데, 다 보고 나와서 화장실 앞에서 하악~~하악~~ 후게질까지 하면서 엉엉 울었다.
정신과 육체.
힘든 문제다.
극장 이름 '미로스페이스'와 어울리는 주제를 가진 영화였다.
횡설수설 주절주절.
이 나른한 노래가 흐르기도 한다.
Neil Young-Harvest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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