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영화

꿈을 이뤄내는 일.

monomomo 2007. 1. 28. 08:15

 

영화계에 들어와 영화 만들기를 하다가,

어느날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어떤 연유로,

무엇이 계기가 되어 지금 이곳에 있는가? 

그냥 좋아서라고 말하기엔 부족한 느낌.

생각 해 봤다.

언제부터 영화 만들기를 꿈꿔 왔는지.

확실하게 그 시점에 대한 기억은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언제부터였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꿈 속의 꿈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영상으로 대신 설명 하자면,

다섯 살 때부터가 아닌가 짐작되어 진다.

그랬을 것이다.

다섯 살,

그때 나는,

인생이랄 것도 없는 그 나이에, 

인생의 큰 변화를 맛 보았다.

의지와는 아무 상관 없이 맞닥뜨려진 생 별리.

그것은, 그때 당시 여러 가지 시절적인 이유들을 대서 감안하고 본다고 해도,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엔 제법 큰 사건이었다.

그날 이후,

모르는 가족들 틈에서,

그날 이전을 그리워하며, 그림 그리기 작업에 열중이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뭔가 말로 표현을 하면 안 될 것 같은 기류를 읽어내고,

혼자 놀기에 바빴다.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잊지 않기 위하여, 혹은 기억 해 내기 위하여,

나와 연관된 모든 사건과 사물과 사람들을, 그려보곤 했다.

- 선창가, 늘 비린내를 풍기던 따듯한 엄마의 품, 풍어제, 그물 깁던 혹부리 아저씨, 상여꽃을 잘 만들던 손가락이 잘린 아저씨, 아파서 누워 있던 모습 외엔 기억에 없는 아버지, 얼굴에 덴 흉터가 커다랗게 있어서 무서워 했던 주인집 아줌마, 적 벽돌과 쇠비름, 찬밥 속에 든 두불 콩, 엿가락과 바꿔 먹은 양재기와 놋쇠그릇, 햇빛을 받아 갈치비늘처럼 빛나던 바다, 맥아더 장군상, 시멘트 종이로 만들어진 봉지에 든 쌀, 공사판, 파벽들 사이에서 반짝였던 못들, 우유병이 담긴 주전자, 포대기, 기차, 철교, 공동 화장실, 뽑기를 사먹던 언덕, 쓰레기통에서 유혹하던 과일 껍데기들……-

두서없이 떠 오르는 단편적인 것들. 거기엔 분명, 이야기가 있었다.

상이 그려지고, 이야기가 떠오르고, 그림을 그리기 위하여 눈을 뜨지 않은 채,

원하는 시절들을 각색하고 윤색해서 생각하기 편리하게 편집하기도 해 봤다.

이른바,

그때부터 영화 만들기를 한 것이다.

설혹 억지스럽게 꿰 맞춘 느낌이 든다고 해도,

지금 여기 서있을 수 있게 만든 동기를 달리 설명 할 길이 없다.

 

집을 지은 적이 있었다.

부모님이 시집 보내려 모아놓은 돈과, 

살던 집 방 보증금을 빼서. 어딘가 있던 세 칸 짜리 한옥을 뜯어다,

키다리꽃 노랗게 피어있던 꽃 밭 앞에.

 “전생에 죄 많은 사람들이 집을 짓는단다”라며 투덜대던 아버님은, 마을에 하나 밖에 없었던 초가가 싫었는지 “집을 지을 땐 모름지기 원래 있었던 자리보다 물러나 앉힐 수 없다”라며, 마당을 줄여 가며,

집을 한 채 지었다.

그 때,

물건들을 정리하기 위하여,

뒤주며 경대, 소품 창고 같던 독과 소가죽 여행용 가방을 뒤지다가,

생각지도 못했던 어린 시절과 만났다.

찌라시,

이름하여 광고 전단.

총 천연색 시네마스코프, 허장강 윤정희, 신성일, 황정순……어쩌고저쩌고 쓰여진.

장터에서 천막을 쳐 놓고 영화를 한다고,

무성영화 변사조로 스피커를 통해 동네를 흔들며 달리던,

삼륜차 바퀴 뒤를 따라 달려 쫓아가다,

먼지와 함께 뿌려지던 전단지들을 차곡차곡 모아 놓은 뭉치들을 만난 것이다.

지금 생각 해 보면,

영화에 대한,

영화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던 그 시절에,

나를 지배하고 있었던 세계가 고스란히 유물처럼 들어 앉아 있었다.

만일 집을 짓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몰랐었을 기억에 없는 채.

밤마다 베갯잇 수를 놓던 처녀들은,

내가 주은 전단지를 들고 장터로 향했다.

그때마다 처녀들은, 영화가 끝나고 만날 수 있는 옆 마을 총각들 때문이었는지,

진짜로 영화가 보고 싶었는지,

 “나,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요”라고 대변 해 줄 수 있는 나를, 마치 증인처럼 데리고 다녔다. 

생각해 보니 그때, 이미 알고 있었다.

이들이 나를 필요로 하는 이유를. 아무것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 되어지는 내가,

그 처녀들에게 방패가 된다는 사실을.

그리고 아무 말 않고 있으면, 그들의 마음 마냥 적당히 달구어진 오징어 다리 맛도 함께 음미할 수 있다는 것을.

거기다 영화까지.

영화의 반쯤은 천막 밖에서 소리 만 듣고,

또 그 반의 반쯤은 필름이 헤져 잘려 나갔고,

나머지 반의 반의 반쯤은 장대비가 내리는 듯 흐르던 화면.

정말 행복한 시간 보내기였다.

그때,

잠 안 오는 밤마다,

눈을 감고 잠을 청하면,

천막 밖에서 소리만 들렸던 그림들이 그려지고,

잘려나간 그림들이 그려지고,

연결이 안 되는 영화들을 새로 만들어 보았다.

처녀 총각들의 달뜬 감정들을 고스란히 기억하면서.

 

뜻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적어도 현실 안에서는.

모든 것이 시시해서 심드렁해졌을 때.

그때,

영화를 생각했다.

성냥곽을 이리저리 보게 하시더니,

그 느낌을 묻고, 유언처럼 남기셨던 아버님의 말씀.

“꿈, 그것은 꿈 같은 것이어서 이루어지지 않더라!, 살고 싶었던 여자를 평생 가슴에 묻었고, 아들 하나 갖고 싶었던 것, 그것도 꿈이었는지 못 이루고 말았단다. 그래, 니가 무슨 일을 하는 지는 잘 모르겠다만, 사물이 놓여진 그곳, 그렇게 보이는 것,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눈을 가지고 세상을 볼 수 있다면, 그래, 한번 해 봐라. 해 봄 직 할 것이다.”

그 말씀을 보듬고, 살고 있던 나는,

꿈은, 꿈처럼 이루어 질 수도 있고,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며,

가닥을 잡지 못 하고  헤매다가, 

어차피 못 이룰 꿈이라면,

스크린,

그 큰 여백 안에 그림이나 그려보자.

굳은 결심을 하고,

영화 판에 들어 왔다.

중이 될 수 없다면,

그림이나 그려 볼 심산으로.

그렇게 살고 있다.

그 꿈 같은 꿈을 이루어 보려고.

 “그렇게될것이야그렇게될것이야!” 염불을 외우듯이 주문을 읊조리며.

뜻대로 안 되던 일.

영화에서는 가능할 것 같으므로.

 

또 다른 세계와의 만남.

시절 저편에서 늘 유혹하곤 했던,

그 나른하고 불확실했던 것들이 선명해 질 때까지,

시절의 한영을 벗어 던지고,

꿈을 가진 사람들의 꿈을 저버리지 않고,

씩씩하게 걸어 갈 것이다.

 

영화는 내가 살아야 할 불멸의 구심점이자 짱짱한 버팀목이므로.

 

내게 있어 영화 만들기는,

곧,

꿈을 이뤄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