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허망하다.

monomomo 2008. 5. 10. 14:19

 

허망하다.

 

생긴 건 장군처럼 생겨가지고 설라무네

왠 눈물이 그리 많은지,,,

 

어젠 어버이날이란다.

내 안에 딱 하나 남아있는 감정 있다면 측은지심이라

그지 깡깽이처럼 독한 나지만 엄마한데 전화를 했다.

"저예요."

"oo냐?"

"예, 걷는 건 어때요?"

"그작저작한다."

"그렇지 뭐, 저도 그래요. 다담주에 갈게요."

"오냐."

"근데 엄마, 이건 엄마한테 할 말은 아니지만 90 넘게 사는 거 지겹지 않아?"

"질고도 질다."

"그러게 나도 질어. 근데 아부지는 엄청 살고싶어 했잖아? 엄마도 그래?"

"아니다. 난 고만 살고 잡다"

"노인들 그런 말 다 거짓말이라든데 엄만 왜 그래?"

"다리 아픈께 그라제"

헉,

다리 안 아프면? 이라 물을라다 말았다.

"그렇구나. 나도 사는 거 별로 안 좋아해. 그런데 말이지 내가 산 만큼 더 살아야 엄마 나이가 되는구나."

엄마가 웃었다.

날 길러 주신 엄마다.

불 때면서 책을 읽으면 "저걸 빗자루로 싹싹 쓸어서 부삭에다 쳐 넣버려야 하는디" 라거나

라디오를 들으며 불 쏘시게로 아궁이를 두드리며 장단을 맞추면 "저것이 술집나가 술이나 따를 년이다" 라는 말로 내 기를 죽였던 분.

교회 다닌다고 엄청 때리셨는데 지금은 엄마가 외려 나더러 교회 왜 안 나가냐고 하신다.

우리집 식구들 다 인도하고 내가 교회 안 나가니까 사탄이 씌였다고 난리들이 아니다.

 

우리 집.

그래 우리집,,,식구들,,,있긴 하지.

직계 큰 조카가 나랑 아이가 두살 차이다.

나 태어나던 그 해에 큰 언니가 결혼을했고 이듬 해 조카를 낳았다고 한다.

이런 조카들이 양가, 더구나 생모 피붙이랑 합치면 족히 관광버스 두대가 넘는다.

난 그 중 아무와도 가까이 지내지 않았다.

오로지 아부지랑만 소통을 하고 살았다.

나중에 저번에 돌아가신 사촌 오빠와 그의 딸 춘천 사는 조카와만 왕래하고 산다.

그러니 다시 말해 스스로 고립을 자처한 고아다.

고독했지만 외롭지 않았다.

사람이 내 대화의 상대는 아니었으니까.

책과 음악과 자연을 제외한 모든 것들에 심드렁하고 시큰둥했다.

집 안에 장관이 있었고 국회의원이 있어 늘 정치꾼들이 득시글 거렸다.

게다가 아부지는 고장에서 몇 안 되는 일본 유학까지 다녀 온 지식인이라

아부지를 비롯해 행동하지 않은 어줍잖은 지식들로 세상에 대해 불평을 늘어 놓는

말도 안되는 말잔치들을 하는 사람들이 싫었다.

그래서 사르트르가?

그래서 소크라테스가?

밥을 먹여 주더냐? 이런 반발심에 난 오로지 밥만을 위한 일만 했다.

존재? 웃겨! 밥 안 먹고 존재 할 수 있어? 그럼서.

웃기는 일이지만 글 써서 억이 넘게 벌어 먹고 살았다.

내가 유일하게 목적성 없이 쓰는 글 공간이 블로그다.

22개 일간지를 읽으면서 한 회의도 지긋지긋하고(회의는 그래서 지금도 싫어한다)

그래서 개발새발 게거품도 물고 버럭 화를 내거나 찡얼거리는 공간이기도 한다.

왜?

돈과 무관한 공간이니까.

일주일에 한 번 퇴근하면서 발에서 간장 냄새 나도록 뛰댕기며 뼈빠지게 일해서 번 돈으로

어떻게 한 번 편히 먹고 살아 볼까?

아님 진정 내가 쓰고 싶은 글을 한 번 써 볼까? (지금은 그 생각도 없다. 어떻게든 일류 옆에 빌붙어 삼류로나마 살아 볼까만 연구 한다.)하는 안이한 생각을 하고 벌인 사업이 망하고 개쪽박을 찼지만 아직 집도있고 농사지어 붙여 먹을 땅도 있다.

다만 게을러서, 혹은 어디로 부터 멀어지는지 멀다는 느낌이 들어 고향으로 못 갈 뿐.

무식한 건지 재수가 없는 건지 세번 벌인 사업이 다 망했다.

하난 극단과 극장이고 하난 영화사고 하난 오락실, 피시방이었다.

다 억억씩 잡아 먹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두고 쓰고 살 걸,,이런 후회를 하지만

다, 죽은 자식 불알 만지는 일이라,,,

하지만 다 망한 건 아니다.

공옥진 할머니 작품으로 그 해에 문예진흥기금을 1등으로도 냈었고

종로구에서 주는 표창장도 받았다.

지금은 후져졌지만 당시엔 꽤 괜찮았던 소극장을 직접 공사 현장을 지휘하며 지었고

모래시계 조연출로서 대박도 내봤고

문화방송 최초 영화 꽃을 든 남자 조감독도 했으며

교양제작국에서 아나바다 운동을 시작해서 정착 시켰다.

영진위에 시나리오로 상금도 몇번 받아 먹고

망했지만 당시 65억짜리 최고 예산인 영화 천년호도 기획 제작이사도 했으며

2년 동안 실미도를 기획하며 뺑이도 쳤다.

헌데 다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나를 비켜 간 것들과 스쳐 간 것들의 차이 외엔 아무 의미가 없다.

그저 허망할 뿐이다.

 

어쨌든 그래서 난 지금 살기가 싫다.

그저 텃밭이나 가꾸면서 아무 생각없이 살다가 죽고싶다.

바램이 있다면 하루라도 빨랐으면 하는 것이다.

다만 그냥 사는 게 좀 심심해서이기도 하지만 밥 술이나 뜨고 살거면

일생에 숨쉬기 운동외엔 안 해 본 내가 환경 운동을 좀 하면서

깡통 차고 살 수 없으니 장사를 해 볼 생각이다.

친 환경 제품 유통업.

할려고 맘 만 먹으면 무엇이든 가능할 것이라는 건방진 오만함이 사라지고 나니 외려 좀 살 것 같다.

이젠 오로지 내 육신 하나만 건사 하면서 취 할 것도 버릴 것도 없이 사는 것만이 내 유일한 욕망이다.

그런데 왜 좋은 카메라랑 좋은 오디오랑 좋은 텔레비젼은 갖고 싶은 것일까?

치사 빤스한 것 같으니라구

어딘가 분명 덜 떨어진 게야.

 

이상 잘난 척, 끝.

쓸쓸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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