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그저,,,그렇게

텃밭 - 배추 걷어 오다.

monomomo 2008. 11. 19. 18:33

 

갑자기 날씨가 영하로 떨어진다고 했다.

아는 이가 와서 텃밭 구경도 시켜 줄 겸 갔다가

가뜩이나 잘난 무랑 무늬만 배추인 배추가 얼까 봐 걷어 왔다.

 

무는 지난 번 단무지 담고 남은 것을 마져 뽑아왔는데 꼴꼴이 가관이다.

아는 이랑 다듬어서 절궈 놓고 난 술을 마시고,,,

마시다가 골아떨어져 자는 동안 김치를 담궈 놓고 갔다.

아는이가 조금 가져 가고 내 것 조금 남기고 아는 이들 두어 집 나눠 줬다.

 

 

동그란 무 몇개 씨를 뿌렸는데 가장 큰 놈이 요만하다.

김장을 하려고 무를 사와 비교해 보니,,,엄청 차이가 난다.

 

 

 

 

내 배추는 거의 봄동 수준.

 

 

 

개중엔 물론 이런 놈도 있었다.(2개)

 

 

 

걷어 온 배추 쌓아 놓은 것.

 

 

 

배추 겉 이파리. 배추보다 양이 더 많을 정도다.

 

 

 

 

그런데 막상 절구기 위해 배추를 갈라 놓고 보니 겉 모양새완 많이 달랐다.

"췟, 겉만 보고 판단하지 마시라요. 이래뵈도 당신이 무시하던 무늬만 배추인 것만은 아니라니깐요"

배추가 억울해서 이렇게 외쳤다.

사람이나 배추나 겉만 보고 판단하면 안된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겁나 뿌듯하기도 하고 괜시리 배추한테 미안하기도 했다.

 

 

 

 

 

내년에는 텃밭을 하지 말아야지 했다가

그럼 이제 난 어디서 누구랑 놀지? 이런 생각하며  다시 할까 하다가

오백만년을 살 것도 아닌데 뭔,,,에이 관두자,,,오락가락 쑈쑈쑈를 하던 중

막상 배추를 소금에 절궈 놓고 바라보니,,,

헴헴,,,

내년엔 정말로 한 번 신경 써서 잘 해봐야지,,,이런 맘이 들어 화들짝 놀랐다.

시장에 내다 팔면 누가 500원도 안 쳐 줄 모양새와 크기지만

미우나 고우나 내 구박 받아 가며 발자국 소리 들어 가며 자란 배추라 생각해서 그런지

나름 애정이 마구마구 샘 솟았다.

으이구, 겨우 배추에게 애정이라뉘.

쩝.

그래도 어쩌랴, 저것들이 지난 여름, 가을, 나를 행복하게 해 준 것들이니 고맙게 생각할 밖에.

 

 

 

 

참고로 이 배추의 크기는 시장에서 파는 배추 크기의 4분의 1 정도다.

그래도 첫 농사 이 정도면 따봉이다.

 

그나저나 배추 값이 너무 싸서 농민들을 생각하면 많이 아프다.

겨우 땅뙈기 다섯평 가지고 감놔라 팥놔라 해가며 지은 걸 가지고도 이 난리를 치는데.

나야 잘 모르지만 수천년을 농사를 지으면서 산 나라가 어째서 농사 정책 하나 딱부러지게 못 내놓는지. 

 

하여간, 배추를 절구다가 사고를 쳤다.

손가락을 벳다.

것도 아주 많이.

피가 철철 났다.

응급처치를 하려 하니 밴드도 없고 반창고도 찾을 길에 없어 급한대로 비닐로 묶어 놨다.

어째서 이리 조심성이 없고 덤벙대는지.

팔자대로 살고 생긴대로 살자고 다짐해 보지만 이런 일은 좀 안해도 되는 거 아닌가 싶다.

 

 

해마다 김장철이면 엄마 생각이 난다.

엄마는 김장을 담그기 위해서 멸치 액젓을 다리다가 뇌출혈로 쓰러져서 끝끝내 일어나지 못하시고 돌아 가셨다.

손가락을 보고 있노라니 손톱 끝에 물든 봉숭아 꽃물이 눈에 들어 왔다.

특별히 폼새를 위해 가꾸거나 치장하지 않는 내가 해마다 봉숭아 꽃물을 들이는 이유는

봉숭아 꽃물이 첫눈이 올 때까지 지워지지 않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거나 하는 낭만적인 생각에서가 아니라

어느 해 여름 방학 때 엄마가 봉숭아 꽃잎에 백반을 넣고 찢찧어 물을 들여 준 기억이 있어서다.

봉숭아 꽃잎을 손톱 끝에 올리고 그 물이 다 들 때까지,,,

손톱이 자라나 맨 마지막에 간당간당하게 남을 때까지,,,

마지막엔 손톱을 자르지 않고 길어가면서까지,,,

별 것도 아닌 손톱 끝 한 치를 보면서 늘 엄마와 함께 있는 듯한 착각과,,,

그 착각에 보태지는 든든한 믿음을 느끼고자 하는 간절함이 이런 유아적인 행동을 하게 하나보다.

 

 

 

 

배추를 다 절구고 나서 창 밖을 보니 지난 봄에 화사하게 폈던 목련 나무 이파리가 단풍이 들어 있었다.

 

 

 

11월.

쇠락해 가는 이 계절.

쇄락한 일이 일어나길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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