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맞어?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이면 언니와 저녁을 먹기로 약속한 오늘 회식이 있었다.
언니와 생전 처음 한 식사 약속이었는데……
팔자려니 생각하라고 전화를 건 뒤 나는 밤 늦게까지
동료들과 술을 마셨다.
언니는 매 시간마다 언제 오느냐고 전화를 걸어 왔다.
한번도 언제 들어 오느냐는 식의 전화를 받아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구속 아닌 구속으로 느껴져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할 수 없이 삼차를 가는 동료들을 뒤로하고 집으로 가야만했다.
집에 도착을 하자 문을 열어주는 언니보다 더 먼저 나를 맞이한 것은 문 틈으로 새 나오는 간장 냄새였다.
멸치를 볶고 있었던 것이다.
온 집안에 진동을 하는 간장 냄새와는 달리 집안은 너무나 깨끗이 정리가 되어 있었다.
“내 집 맞어?” 나의 질문이었다.
언니는 집안의 쌓아둔 재활용 종이들과 빈 병들을 모두 정리를 하고 발닦이도 깨끗이 빨아 놓았다.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구석구석에 쌓인 먼지와 침대밑, 음반장, 책장, 티비, 화장대…… 모두모두 깨끗이 닦아 놓았다.
화장실도 반짝반짝 하게 닦여져 있었고 배란다도 깨끗이 닦여 있었다.
옷들도 다 빨아서 건조대에 널려 있었고 심지어 양방의 침대 시트와 이불들도 모두 빨아져 식탁과 거실,
런닝머신…… 걸칠 수 있는 곳엔 다 널어 놓았다.
-이정도면 앞으로 일년은 버틸 것 같군. 흠!-
그리고 난 뒤 밑반찬(내가 좋아하는 연근조림, 멸치볶음, 코다리조림 –전부 간장으로 졸여야만 되는
반찬-)을 준비하며 냉장고 정리를 하고 있는 중에 내가 들어 왔던 것 이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깍두기 몇 조각에 늦은 밥을 먹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아팠던 모양이다(그러고 보니 요즘
입에다 “배고파! 배고파!”를 달고 다녔던 것 같다).
걱정도 팔자지. 그렇게 먹고도 아픈데 없이 잘만 살았는데……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반찬이 하나도
없었는데 잘 됐군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난 원래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고 또 잘 만들어 먹는 편이라 생각한다.
하필이면 김치밖에 없을 때 언니가 와서 그렇지.
언니는 이것 저것 봉지에 담아서 냉장고에 차곡차곡 담으며 잔소리를 했다.
“까만봉지에다는 뭐 담아 놓지 마! 안 보여서 잘 안 먹게 돼! 항상 투명한 봉투에 담아서 넣어 놔! 알았지?”
“응”
“대답은 잘한다. 봉지 사다 놨다. 그리고 버릴 것 알아서 버린다? 니 돈 주고 산 거니까 너는 아까워서 알고는
못 버릴 거고!”
“응”
“그리고 좋은 것만 사 먹고 살아라!”
“응”
“너는 응 밖에 모르니?”
“응”
우리는 처음으로 동시에 웃었다.
언니가 냉장고를 정리하는 동안 나는 컴퓨터에 앉아서 작업을 하면서 채팅방에 들어 갔다.
일을 하면서 음악을 들으려 들어가는 방인데 음악도, 접속하는 사람들도 아주 괜찮은 방이어서 요즘 거의
매일 들어간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책상이 정리가 돼 버려서 메모지를 뒤지는데 당최 찾을 길이 없었다.
언니에게 물었다. 버린 것은 없냐고…….
언니는 말했다. 그놈의 쓰레기 같은 종이 쪼가리는 니가 신주 단지 모시듯 해서 다른 것은 몰라도 책상 위에
놓인 것은 버리지 않았으니 잘 찾아 보라고…….
아이고 머리야!
언니는 냉장고 정리를 다 마치고 들어 와 내 옆에 딱 붙어 앉아 어디서 이 음악은 나오느냐? 너는 누구냐?
어떻게 질문과 대답을 찾느냐?등등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왼 쪽 팔에 침이 튀어 이슬비가 오는 듯 했다.
또 한번 아이고 머리야!
참다 못해 내가 한마디 했다.
“아니 구강 구조에 이상이 있나? 이거야 나 원 참! 우산을 바치든지 아니면 말을 말든지 둘 중에 하나를 택해!”
언니는 아랑곳 않고 계속 얘기를 하다가 내가 상대를 안 해 주자 침대에 누워 금방 잠이 들었다.
피곤도 했을 법하다. 집안 분위기를 이럴게 바꾸어 놓았는데…….
아침이 되었다.
또 한번 익숙치 않은 소란스러움에 눈을 떴다.
언니는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침을 먹으라는 언니의 소리가 너무나 무서웠다.
이 시간에 밥이라니?…….
그래! 한끼쯤 먹어주자…….
언니가 말했다.
이제는 건강에 신경 쓸 나이라고, 인삼, 대추를 넣고 물을 끓여 냉장고에 넣어 놓았으니 꼭 먹으라고,
그리고 갔다.
기차를 타고 갈까? 비행기를 타고 갈까? 한참을 고민하더니 기차를 타고 가라는 나의 말을 듣고 그러겠노라고
했다.
가면서도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 붙였다.
“너도 늙었구나! 이 눈 밑에 주름 봐라! 아이 크림 꼭 바르고 다녀! 썬크림도 바르고! 양산을 쓰고 다니라면
안 들을 것 같고. 하나 사서 부쳐 주리?”
우리는 피식 웃었다.
그야말로 피~식.
언니가 떠난 후 웬지 가슴 한켠이 허해져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성격상 그녀에게 대면대면하게 굴었던 꼭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리라.
출근 길에 여기 저기 서랍을 뒤지며 든 생각 하나.
그나 저나 여기저기로 숨어 든 나의 물건들은 어떻게 찾지?
짱짱 ^*^))// 방글방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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