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몇 정거장쯤 지났을까?
눈을 뜨자 게슴츠레한 시야 속으로 꿈인지 현실인지 구별이 안 가는 느린 화면 한 컷이 희미하게 들어왔다.
지팡이를 접으며 들어 오는 시각 장애인 부부를 본 건 전철 안이었다.
구걸하는 하는 모든 이를 도와 줄 수는 없지만, 맨 처음 만나는 이들에게 무조건 적선 하리라 스스로 약속을
한 나는, 비몽사몽 중인데도 미리 돈을 준비하기 위해 무심결에 지갑을 꺼내고 있었다.
그리고 지폐를 막 꺼내려는 순간, 뒷통수를 한대 얻어 맞은 듯한 그들의 대사를 들었다.
“ 여기야!”
“ 마지막 칸 맞아?”
“ 응. 이쪽으로 서.”
고개를 들어 그들을 봤을 땐 그들은 벌써 전철 끝 쪽에 나란히 서 있었다.
그들은 휴대용 카세트도, 하모니카도, 그리고 구멍 뚫린 빨간 플라스틱 바구니도 들고있지 않았었다.
나는, 얼굴이 화끈거리고 심장이 뛸 만큼 당황한 나를, 혹여 주변에서 누군가 알아 챌까 봐 지갑에서
어색하게 손을 거두었다.
편견이 낳은 빗나간 연민이 낭패를 본 순간이었다.
연민을 받아야 할 사람은 그들이 아닌 바로 나였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들은 그냥 평범한 승객이었을 뿐이었다.
2>
어느날 친구 집에 놀러 간적이 있다.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배가 고파서 라면을 끓여 먹기로 했는데 집에 라면이 없었다.
친구는 남동생을 불러 라면을 사오라고 했다.
남동생은 자기 방에서 비디오를 보고 있었다.
별 생각 없이 이야기를 이어가던 나는 그 남동생이 슈퍼에 갈 채비를 하는 모습을 보고 기절하는 줄 알았다
(그 친구의 남동생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
친구의 남동생은 다리를 심하게 절어 보조 의족을 해야만 걸을 수 있는 지체 부자유한 장애자였다.
“ 아이 참, 그런 건 미리미리 준비 해 놓지 . 아니면 아까 비디오 빌리러 갈 때 미리 사오라고 하던지. “
10분에 걸쳐 보조 다리를 장착하면서 악의 없이 누나를 힐책하는 친구의 남동생.
“ 아이 자식, 이 누나가 배가 고프다는데 말이 많어!. 넌 임마 남자잖아! 그럼 늙은 내가 가리? ”
“ 알았어! 누가 뭐래? ”
남동생이 현관을 나가자 친구에게 물었다.
“ 야~~아! 저래도 되는 거야? ”
“ 뭘? 아~아! 저 새끼? 저 새끼 지가 남자라고 여자가 할 일은 손가락 하나 까딱도 안 하는 놈이야! “
아! 그는 단지 남자였을 뿐이었다.
짱짱 ^*^))// 방글방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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