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그저,,,그렇게

첫정!

monomomo 2002. 6. 21. 18:54





첫정에 대하여…….




한 때 비영리 문화 단체인 극단과 극장을 꾸려 간 적이 있었다.


극단 <동그라미>와 극장 <열린 극장>.

번갯불에 콩 궈 먹듯 급하게 공연을 기획해서 창립작으로 – 공 옥진 1인 창무극-을 동숭아트 센터에서

막을 올리기로 결정을 하고 보니 기간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었다.

그때 나는 연일 계속되는 야간 회의와 일요일도 없이 출장과 미팅으로 인해 피곤에 지쳐 있었다.회의가

한 번 시작이 되면 예술과 경제 논리의 거리감 때문에 뜬구름 잡는 얘기들만 잔뜩 늘어놓다가 결론도 없이

끝내고 나면 새벽한 두시가 되기 일수인 마라톤 회의였다.

수입에 반비례 되는 지출을 각오하긴 했지만 한 조직의 대표로서 막중한 책임감 때문에 어찌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흥행에 성공도 하고 작품성도 있어야 하고 재미도 있어야 하는 연극을 기획해서 올려야 하는 책임감과

중압감이 늘 나로 하여금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게 만들었다.

심지어 팍 아프기라도 해서 드러눕고 싶다는 생각까지 할 만큼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었을 때였다.

인쇄물을 다자인 해서 제작을 해야 하고 포스터를 붙이고,

현수막을 걸고 구청<그 때 알게 된 것 하나-서울시내 스물 두개의 구청이 게시판에 게시물을 올리는 법규가

달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놀라운 나라였다.>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협회의 심의도 받아야 하고 어찌나 할 일이 많은지

몸이 열 개라도 당해낼 재간이 없을 만큼 바빴다. 그 와중에 홍보를 하기위해 방송국은 물론이요 4대 일간지,

4대 스포츠지를 포함한 보도 듣도 못한 신문사에 이르기까지 직접 뛰어 다녔다.

다행인 것은 공옥진 여사님께서 병상에 계시다가 몸을 추스린 후 5년만에 공연을 하는 것이라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었다.

신문에 한 번 나가면 그 다음날은 300통에서 500통의 전화가 왔었으니까.

예매률도 당연히 좋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매진이되는 횟수가 많아지고 이른바 대박 예감이 들었다.

공연 첫 날.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극장앞에서 발을 동동 거리고 왔다갔다 하면서 할머님의 건강 상태를 계속 체크를 했다.

시간이 되기도 전에 관객들이 줄을 서기 사작하는데 극장앞에 길이 막혀 교통 체증이 일어날 만큼이었다.

560여석정도 되는 좌석이 만석<각 구청마다 노인들께 드리라고 회당 200매씩의 초대권을 배포해서

모두 현매는 아니지만> 이 되고 첫 공연을 무사히 치렀다.

그날 우리는 흥행면에서나 내용면에서나 성공적인 공연을 마치고 단원들과 술을 마셨다.

수고 하였노라고 …… 남은 기간 동안도 열심히 하자고……

그 때 갖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으로 사회에 나온 한 단원이 말했다.

“대표님 저는 오늘 이 공연을 못 잊을 것 같아요. 대표님도 못 잊구요”


내가 말했다.

“오늘 공연은 나에게도 못 잊을 공연 같구나. 그런데 너는, 너는 기억 할 수 있을지 그것은 자신 할 수 없구

나. 내게 있어 이 공연은 처음으로 제작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기억 할 수 밖에 없지만 너는 내가 일로 만난

사람 중에 몇 번째인지……글쎄다. 그런데 너는 아마 나를 잊지 못 할 거야. 네게 있어 나는 사회에 나와

처음으로 만난 사람이니까.”

그랬다.

녀석에게 나는 기억 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일 수 있겠지만 나에게 녀석은 그렇지 않았다. 지금은 녀석이나

나나 연극을 떠났다.

녀석은 마치 내게 자기를 기억시켜 둘 요량인지 가뭄에 콩나듯이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어 와 녀석을

못 잊게 만든다.

첫 정!

그렇다.

모든 처음은 잊기가 어렵다. 아니 잊을 수도 없고 잊혀지지가 않는다.

무심하게 지나치는 많은 사람들과 사물들을 보면서,

나에게 모든 것이 처음과 같기를 간절하게 바란다면

너무지나친 욕심일까?



*그 공연은 암표가 나돌만큼 연일 매진을 했다. 그 때 팜플렛에 기고한 원고 옮겨 놓는다.



<기적, 이유 있는 살아 있음이여!>


“아이구, 징해라. 꼭 예순 여섯 이네”

몇 달 전 공선생님께서 극단 사무실 문을 들어서서 쉼 없이 오른 계단을 바라보며 하신 첫 마디.

우연일까?

그 동안 외롭게 오르셨던 외길 인생 66년.

공 선생님께선 분명 마지막 계단을 힘껏 차고 오르셨을 것이다.

병석에서 기적적으로 일어섰던 그 때처럼 말이다.

그렇다.

더 이상 오르지 못할 뻔한 계단을 눈앞에 두고 공선생님의 머리 속을 채운 것은 꺼지지 않은 예술혼으로

불 붙은 삶에 대한 간절함일 것이며, 생의 필연의 이유일 것이다.

기적이 아닌 , 필연. 참을 수 없는 한의 뒤틀림!

왜 공옥진,1인 창무극인가?

인간은 어차피 혼자이며 고독한 존재이다.

어찌 보면 우리 모두는 한번 주어진 생에서 자기 나름의 모노 드라마를 하다 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1인극 배우, 공옥진 선생님의 고독한 몸부림은 관객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선생님의 창무극은 지금껏 살아오신 인생을 통해 발견한 인간 세상에 대한 나 름의 해석이자 철학이다.

그 해석과 철학이 애정과 연민의 동작으로, 때로는 냉소와 희화화된 몸짓으로,

또 어떤 때는 거부와 항거하는 몸부림으로 표출되기에 우리는 쓸쓸하게 박수를 보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난 생명을 추는 것이제. 이쁜 것만이 다가 아니랑게. 니들은 안즉 멀었어.”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는 것.

생에 있어서 만큼은 필연의 이유를 가진 예인 공옥진 여사님의 예술혼이 펼쳐질 이번 공연을 통해 안타까운

고통과 한숨의 예순 여섯 고개를, 그리고 그 고갯길 마다 삼킨 눈물의 몸짓을 병신춤이나 곱사춤이 아닌,

'생명춤’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짱짱 ^*^))// 방글방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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