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묻는다 ㅡ 글 <안도현> 판화 <이철수>
맨 처음 이 시를 접했을 때 쿵! 하고 가슴이 따끔거렸다.
쿵! 하고 무너져내린 경우는 가끔 있었지만 쿵! 하고 따끔거리는 경우는 첨이었다.
ㅡ 나는 언제 누구를 뜨겁게 해 준 적이 있었는가? 없었는가? ㅡ
나를 향한 눈빛들을 외면했던 지난날을 반성하며,
나는 정말 언제 누구를 한번이라도 뜨겁게 해준 일이 있었는지…….
가슴만 따끔거렸다.
고 2 때였다.
한 소년과 알고 지낸 적이 있다.
<학원>이라는 학생 문예잡지에서 주최한 글짓기 대회에서 시로 장원을 한 소년이다.
나는 그때 지금은 제목조차 기억에 없는 동화로 입선했었다.
내가 쓴 동화는 바닷가 마을에서 사는 할아버지와 소년 이야기였다.
아버지는 태풍이 지나간 날 이후 바다에서 돌아오지 않고 엄마는 돈을 벌러 뭍에 나간 후 돌아 오지 않자
소년은 날마다 선착장에서 부모를 기다린다는 내용이다.
20년 전 일이니 내용도 잘 생각이 안 나지만 어렴풋이 기억 나는 내용이 이 정도다.
이 문학상을 계기로 소년을 알게 되어 우리는 편지를 주고 받았다.
우리는 문학이라는 같은 병을 앓던 사이라서 빠르게 친해질 수 있었다.
소년은 시를 쓰는 아이라서 그랬는지
100여<6개월 동안 100 통이면 이틀에 한 통 꼴이다> 통의 편지를 주고 받는 동안 긴 편지 몇 통을 제외하고
모두가 엽서 한바닥을 겨우 채울 만큼 짧은 내용의 글을 보내왔다.
ㅡ쓸쓸한 가을에ㅡ.
ㅡ바람이 붑니다ㅡ.
ㅡ비가 오는 날이면…ㅡ.등등…
반대로 소설을 쓰고 싶었던 나는 거의 긴 글을 보냈다.
우리는 고 3이 되었고 공부를 열심히 하자며 편지 주고 받기를 중단하자고 했다.
왜 그랬을까?
참으로 바보 같은 일이었지만 그때만해도 모범생이었던 우리는
뭔가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 소년은 마지막으로 거퍼 두통의 엽서를 보내왔다.
ㅡ2인의 시화전이 끝났습니다ㅡ.
ㅡ저무는 ‘78년ㅡ
우리는 서로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심정적으로 연애 감정을 가지고 있었었다.
소년은 모르겠지만 나는 아무튼 그랬다.
교복의 목 위로 2밀리쯤 올라 온 하얀 칼라 깃과,
검고 굵은 뿔테 안경 너머로 세상을 바라 보던 시선이 맑게 빛났던 그 소년이,
힘들고 어려웠던 나의 사춘기를 빛나게 해 줬던 건 사실이었으나,
그 때부터 뭔가가 열리지 않는 나의 마음을 잡아채기에는 소년의 에너지가 부족했었다.
편지 주고 받기를 끝내고 허전한 마음에 잡문들을 많이 썼던 걸로 기억이 난다.
그 때 쓴 잡문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아무튼 내 가슴속에 멋지게 새겨진 그 소년은 일찍 등단을 했다.
그 소년이 어른이 되어 쓴 시가 바로 ㅡ 너에게 묻는다 ㅡ이다.
내게 보내던 엽서에 쓴 글 만큼이나 짧은 시.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소년은 그때 내게 시를 써서 보냈던 것이다.
긴 글을 써서 보내던 나는
그 긴 편지보다 더 긴 영화를 만든답시고 이 바닥에 아직 점 하나도 제대로 찍지 못하고 살고 있는데,
그 소년은 벌써 수 많은 사람의 가슴에 수 많은 점으로 남는 시를 써서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있다.
그가 쓴 시중에 가슴을 패던 시 일부를 옮겨 적으며 지금은 어른이 된 그 소년을 생각해 본다.
ㅡ……외로움도 끼고 살다 보면 애첩이 되리ㅡ
짱짱 ^*^))// 방글방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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