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그저,,,그렇게

어떤 소재.

monomomo 2002. 8. 19. 18:10







-그 사람에게서 내 냄새가 났다.-





궂이 핑계를 대자면,
향수 때문이었다.
아니, 환절기 때문 일 수도 있겠지.
아니, 아니, 그렇다고 볼 수도 없고,
아니라고 볼 수도 없다.
모르겠다.
첨부터 문장이 되지 못 하고 있다.
하여간, 분명한 것은.
그 사람에게서 내 냄새가 났다는 것.
그런데 그것이 중요한 일 인가?
역시 모르겠다.

오랜만에,
정말이지 아주아주 오랜만에
예전에 자주 가던 까페엘 들렀다.
4년 전,
어떤 사건(?) 이 후로 한번도 들르지 않았던 까페.
폭풍으로 인해 섬으로 취재 가려던
그 날의 스케줄이 무산이 되고,
프랑스로 유학 갔다 그 곳 남자와 결혼해
아예 눌러 앉은 후배한테서 전화가 와
홍대 앞에서 만나 소주를 마셨다.
후배는 임신을 해서 소주를 전혀 마시질 않았다.
대학 땐 운동을 한답시고 자유가 어떻고 민중이 어떻고......
시절을 탓하며 깡 소주께나 마시면서
내 집에서 석 달 동안 도피 생활을 했던 후배였었는데......
혼자서 소주를 마셔서인지
취기가 훨씬 빠르게 왔다.
프랑스로 건너 간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둘째를 가졌다니......
세월이 깡패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여차저차 얘기를 나눈 후 후배와 헤어지고
쓸쓸한 마음에 예술가를 찾았다.
여전히 조용했고 손님도 없었다.
괜히 미안한 마음에 작정을 하고 술을 샀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취했었는데......
어쨌든,
거기서 내 냄새를 가진 한 사람을 만났다.

취기 때문이었는지......
섬에 가려다가 못 갔기 때문인지......
아니면 예전에 그 까페에 함께 자주 가던 사람이 생각나서인지......
아뭏튼 그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약간 흥분이 돼 있었다.
어쩌면 “반대급부적인 현상이야” 라며
조금은 화려하게 변모한 자신의 입장을
애써 변명하려하는 후배의 억지스런 모습이
눈에 아른거려서였을지도 모르겠다.
무지막지하게 엄습하는 쓸쓸함을 달래기 위하여
스스로 최면을 걸어 빨리 그 집 분위기에 동화되기를 바랬다.
그래서인지 다소 격앙된 감정에 취기까지 겹쳐 많이 오버를 한 것 같다.
성격상 남의 술자리에 끼어들어
수다를 떤다거나하는 따위의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인데도
막무가내로 두 사람이 앉은자리 사이에 앉아 왕 수다를 떤 것을 보면.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고 했다.
지금은 이름이 생각나지만
그 날은 그리 이름이 잘 외워지지 않았는지.
원래 이름이나, 전화번호 못 외우는 걸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 할 만큼 탁월한 재주가 있긴 하지만
그 날은 정도가 좀 더 심했던 것 같았다.
첨엔 얼굴을 보지 않고 스텐드에 나란히 앉아 얘기를 했던 것 같다.
취중이어서 그런지 목소리가 아주 친근하게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얼굴을 보니
오른쪽 옆 얼굴이 왠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웃을 땐 어금니까지 고르게 보이는 것도 익숙했고,
웃음소리가 가랑가랑 거리며 짧게 떨리면서 이어지고,
툭툭 내밷는 단 문장의 말투가 일단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모든 상황이 다 제대로 이어져 기억나는 대목은 없다.
하여간 어떤 상황에선가 그 사람이 내 어깨를 툭툭 치게 됐다.
나는 농담으로 대당 만원씩 달라고 했고 그 사람은 돈을 줬다.
합이 삼만 이천원. 이유야 어쨌든 내 농담에
이런식으로 적극적으로 합류해 오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 사람에 대해서 더욱 더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쩌면 작가적 본능을 자극하여
소재를 발견한 느낌과 혼돈하고 있었을지는 모르겠으나
쓸쓸했던 기분이 점점 풀리기 시작했다.
뭐랄까? - 어쩌면 대화가 될지도 몰라 - 라는 생각이 들면서
은근한 기대감이 일었다.
그랬다.
나는 직업상 너무나 많은 사람을 만나는 관계로
의도하는 바와 상관없이
아쉬운 소리도 해야 하고 친한 척 해야 하는 일들이 종종 있었다.
절대로 그렇게 될 것 같지 않았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기성인이 되 버렸다고나 할까?
하여 주변에 아는 사람은 많아도
진심을 얘기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가 않다.
아니, 진심이라기 보다 대화가 통하는 사람.

그런 와중에 그 사람에게서 내 냄새가 났다.
"이 향수 이터니티죠?”
"예”
"저도 이 향수 써요”
"대학교 이 학년 때부터 썼는데 이 향수 이름 알아 맞추는 사람은 첨 봐요.”
그때 갑자기!
그 전까지 만해도 아무 상관이 없었던 사람이 -훅!- 하고 친근감이 느껴져 왔다.
향기가 주는 친화력!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는 일인데
타인에게서 내 냄새가 났다는 것!
나로서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그 후.
어떻게 해서 그 사람이 내 집까지 왔는지는 모르겠다.
가겠다는 그 사람을 자고 가라고 붙잡았고.
엄밀히 따지면 모르는 사람인데.

"추워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전기장판 켜 드릴게요. 금방 따뜻해 질 거예요.”
"그런 식으로 말구요.”
그 사람은 춥다며 나를 끌어안으며 가슴팍으로 파고들었다.
또 한번 -훅!-하고 달려드는 그 사람의 혹은 나의 냄새 때문이었는지
온몸의 잔털들이 바짝 곤두서는 느낌이 들었다.
잠시 후 고른 숨소리가 들렸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잠이 들었다.
-아무 일도 없었음. 있을 수도 없고-

다음날, 숙취로 깨질 듯한 머리를 싸매고 그 섬엘 갔다.
베실베실 웃으면서......
망망대해를 보며 그 사람 생각을 했다.
무슨 생각인지도 모르겠지만
그 사람 생각이 머리를 떠나질 않았다.

우수꽝스러운 건
그 사람 얼굴이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는 것.
세상에나!
이토록 얼굴이 떠오르질 않다니!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것.
그것도 재주라면 나에겐 그 재주가 있다.
일단, “사랑은 없다”고 생각한다.
있다고 쳐도 적어도 지속적이지 않다는 얘기다.
감정의 영원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설혹 마음이 가는 사람이 나타난다손 치더라도
순수하게 감정과 나 사이에서 작은 전쟁을 치루고 나서
상대방과 아무런 상관없이 정리한다.
때로는 신열이 오르고 잠도 못 자고 끙끙 앓는 적도 있긴 하지만
참아서 참아지지 않는 게 없듯이 꾹 참아버리고 만다.
짧으면 삼일, 길어야 석 달 짜리 감정에 빨리 변화가 오기를 바라면서.
그러면 어김없이 감정이 없어지고 만다.
슬픈 일이긴 하지만 당연한 결과이고
인간 누구에게나 있는 본성인 가변성을
내가 갖고 있다는 사실의 확인일 뿐이다.
가볍게, 인생을 농담처럼......
그렇게 살고 싶은 사람이기에.

섬에 있는 내내 그 사람을 생각했다.
나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이 생각이
화가 났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인데.

섬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이 섬이 좋다는 얘기를 했던
그 사람의 말을 떠올리며 취재를 다녔다.
뭐라고 설명 할 방법은 없지만
가슴에 행복 하나가 자리 잡고 있는 듯 한 기분으로
일에 임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목적으로 여행을 한 탓인지
무척 피곤했다.
술이나 한 잔 할까 해서 슈퍼마켓으로 술을 사러 나가면서
그 사람에게 전화를 했다.
그러고 보니 하루 종일 전화하고 싶은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 가는 사람과 만나기도 하고 전화도 하고
그럴 수 있는 일인데
왜? 무엇이 이 마음을 제어하고 있는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 사람이 전화를 받았다.
생각과 달리 시덥잖은 말을 몇 마디 나누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우수운 결심을 했다.
-아! 이 사람한테는 전화하지 말아야지-
가슴이 떨렸기 때문이었다.

그 날밤.
술을 진탕 먹었고.
아침이 돼서 무심코 전화기를 확인해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사람의 전화 번호가 찍혀 있는 것을 보고.
결심과 상관없이 무의식이 저지른 일.
실수나 하지 않았는지.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떠나가지 않는 그 사람에 대한 환영에
시달리고 있었다.

며칠 후.
다시 그 까페를 갈 일이 생겼다.
프랑스에서 온 그 후배에게 섬에서 사온 멸치를 전해주러.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그 사람이 나타났다.
순간, 아! 가슴이 꿍! 하고 울리면서
심장이 터질 듯이 아파 왔다.
그때 얼핏 그 사람의 얼굴을 보았다.
저렇게 생겼었구나!
보니까 조금 생각이 나지
생전 처음 본 얼굴처럼
생경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왜 가슴이 아픈 것일까?
시근이 생각과 이어져 눈동자가 불안하게 굴려지고,
괜히 호흡이 가파지고......
길진 않았지만......
고통스러웠다.

춥지도 않은데 벌벌 떨리고,
덥지도 않은데 땀이 삐질삐질 났다.
마음이 떨리면 몸도 떨리는 건가?
뭔지도 모르는 상황에
원치 않은 반응이 일어나고 있는 자신에게 화가 치밀었다.
후배가 하는 말에 대꾸를 하면서도
무슨 말을 하는지 얘기의 핵심이 자꾸 비껴가고
집중이 되지 않아 접속사들만 아련하게 들렸다.

대충 감이 잡혔다.
아! 나는 앓고 있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우습기도 하고,
하여간 싫지 않은 감정이긴 하지만
원치 않은 감정이기 때문에.
오래 갈 감정도 아니고......
완벽하게 나 혼자만의 감정이기 때문에
그러니 어쩌란 말이냐!
그 사람을 위해 참아 보기로 했다.
이른바 -온통 견디고 있음-이다.
과연 이건 며칠 짜리 일까?

그러나 결국 나의 의식은
무의식에게 지고 말았다.

한심하기 짝이 없고 화가 났다.
나 항상 강하고 강한 사람이었는데
게다가 날씨까지 한몫을 하고 있으니......
무지하게 쓸쓸하다.

그 . 날 . 이 . 후 .

먹은 음식을 게워 내기 시작했다.
그것이 아니어도 아니 환절기만 되면
계절을 앓느라 정신이 없는데.
어쨌든,
내 속을 헤집고 다니는
이 감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그 사람을 만나고 싶다!





짱짱 ^*^))// 방글방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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