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동안 거의 두문불출하며 지내자 드디어 먹거리가 떨어졌다.
아주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는 동시에 두 가지를 못하는 나로서는 일단 노는 것도 일축에 들었다.
한달 동안 시장 한번 안 갔으니 먹을 것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애꿎은 냉장고 문만 열었다 닫았다 하다가 결국은 김치찌개 아니면 된장찌개를 끓여먹거나 라면을 끓여 먹기를 한달.
계란도 떨어지고 된장찌개에 넣을 재료도 없고 기타 등등.
먹고 사는 일이 정말 일로 생각이 되었다.
먹은 것도 없는데 설거지는 쌓이고 배는 왜 이렇게 시간 맞춰 고픈 것인지.
영양제처럼 물로 꿀꺽 삼키면 저절로 배가 부르는 것은 없는지.
중국 음식을 싫어하니 턱턱 시켜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정말 귀찮은 일이었다.
그런 일들을 내 나이 또래 아줌마들은 매일 하고 살았을 거라 생각하니 엄청 존경스럽다.
게다가 내 한 몸 하나도 이렇게 귀찮은데 가족들을 위해서 1년 365일을 한다고 생각하니 더욱더 존경스럽다.
어쨌든.
라면을 사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나간김에 반찬거리라도 사볼까 하고 시장 쪽으로 향하다가 야채트럭 앞에 섰다.
감자나 사다 삶아 먹을까… 아님 오이나 사다 씹어 먹을까… 아니다 …
생선이나 한 마리 사다 … 아니다… 아서라… 저걸 언제 … 아고 모르겠다…
이러다 결국은 귤 몇 개 사 들고 돌아섰다.
슈퍼에 가서 콩나물과 밀가루를 사고 라면을 산 뒤 이것 저것 유혹하는 많은 먹거리들을 뒤로 하고
집으로 오르는 골목에서 왠지 쓸쓸했다.
별일이군, 늘 있는 일인데 …….
혼잣말을 하며 현관문을 열자 아이고 왠 경로당 냄새가 났다.
그간에 두문불출하며 펴 댄 담배 찌든 냄새가 마치 팔순 노인이 혼자 사는 방에서나 남직한 냄새가 났다.
냄새를 맡으며 그림 하나가 그려졌다.
방바닥에 떨어진 살 비늘을 손바닥으로 쓸어 모아 엄지 손가락에 침 발라 재떨이에 떨고
개미나 쫓아다니며 잡고 머리카락을 주어 손바닥에 가지런하게 모았다 비벼서 쓰레기통에 버리는 컷!
아아~~~
생각만해도 끔찍한 그림이다.
일단 창문이란 창문을 다 열고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대 청소를 하기 시작 했다.
하필이면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바람마저 심하게 불어 체감온도는 거의 영하의 느낌이었다.
말 그대로 칼 바람이 불었다.
집안이 깨끗이 정리되자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 기분으로 라면을 맛나게 끓여 먹었더니 이제 배까지 불러서 더욱 기분이 좋아졌다.
깨끗한 기분으로 내일 투자자를 만나서 브리핑 할 서류를 정리하고 음악을 들으며 하루를 정리했다.
허나, 저 라면이 다 떨어질 때쯤이면 오늘과 같은 기분이 또 들 텐데.
하여간, 청소 전과 청소 후, 배고플 때와 배 부를 때.
행복한 순간이 순식간에 왔다 갔다 하는 순간이다.
지금은 어쨌거나 배 부르고 등 따시고 남 부러울 것이 없는 행복한 순간이다.
이젠 좀 정리하는 버릇을 길러야겠다.
아님 어질지를 말던가.
짱짱 ^*^))// 방글방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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