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기행문

monomomo 2003. 1. 21. 17:18









기행문



북경이라는 글자가 마치 춤을 추는 모양새로 공항에 써 붙여진 걸 보았을 때

중국에 왔다는 사실감이 느껴졌다.

붉고 길쭉한 한자어.

초서와는 그 느낌이 조금 다른 날림체의 글자에서 그 나라 민족의 멋스러움이 물씬 풍겨졌고

그들의 만만디 정신이 조금 감이 잡힐 듯한……


길고 긴 여정이었다.

처음엔 길 양쪽 주변 모두가 한국의 여느 시골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다섯 시간 정도 달리고 나자 내가 원하는 풍경들이 보이기 시작 했다.

사진과는 사뭇 그 느낌이 다른 풍경들이 자연이 주는 감동,

그 이상의 것을 느끼게 해 줬고 기시감과는 조금 다른 친근감이 마음을 편하게 해 줬다.

끝없이 펼쳐지는 옥수수 밭을 보면서

비록 내가 잘 마시지는 못하지만 고량주 그 특유의 냄새가 나는 듯한 환취 현상까지 느껴졌다.

비포장 도로를 말이 뛰듯 달리는 차 안에서 무려 열 다섯 시간이나 시달린 끝에 몽고에 도착 했다.

두 번이나 길을 잘 못 들어 산 넘고 물 건너서 돌아 다니느라

어찌나 몸이 피곤한지 온 몸이 주리를 트는 듯 했지만 낮은 구릉, 산등성이, 겹겹이 겹친 봉우리들의

산허리를 수없이 에스 곡선을 그리며 달리는 차 안에서

뭔가 가슴에 차오르는 벅찬 감정을 억 누를 길이 없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나무터널 사이로 해가 지고 있었고 가끔씩 보여지는 몽고의 농부들과 함께 걸어다니는

궁둥이가 튼실한 말의 털이 석양 빛을 받아 윤이 나서 그 곡선이 더욱 더 예쁘게 보여졌다.

한 마디로 늠름 그 자체였다.


아침을 먹지 못하고 점심은 입에 맞지 않아 부실하게 먹어서인지

새벽 세시에야 먹을 수 있었던 저녁은 오히려 더 입 맛을 잃게 만들었다.

게다가 각종 고기 종류들은 무서운 양과 속도로 나오기 시작하는데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 봐도 푸성귀 종류는 찾아 볼 수 없었다.

늦은 저녁이어서인지 사람들은 감탄사를 연발하며 원형 탁자를 돌리며 맛있게 먹었다.

나는 속으로 “극복하자! 극복하자! 극복하자!”라고 주문을 외운 뒤 먹어 봤다.

생각 보다 맛이 있었다.

느끼하지만 않다면, 아니 김치만 있었어도 충분히 먹을만한 음식들이었다.



비 오듯 땀을 흘렸지만 호텔에서 나오는 물이 얼음물처럼 차가워서 세수와 발만 닦고 샤워는 할 수 없었다.

전화도 없고 인터넷도 안되고 완전히 적막강산 이었다.

워낙 외진 곳이라 그런지 종업원들이 영어를 하나도 못해

바디 랭귀지와 필담으로 의사소통을 해 보려 몇 차례 시도를 해 보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함께 간 여자 감독과 한 방을 썼는데 말도 안 통하고 처음 본 사람하고 한 방을 쓴다는 것이 생소하긴 했지만

자리에 눕자마자 언제 불면증이 있었냐는 듯이 잠이 든 모양이다.

피곤이 약이었는지 죽은 듯이 잠을 잘 수가 있었다.

그럴 수 밖에.

정신이 어쩌고 저쩌고 육갑을 떤 게 다 사치스러운 감상이었나?

부끄럽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땐 몹시 피곤했다.

모처럼 눈이 떠지지 않은 상태에서 모닝콜에 의해 억지로 자리를 떨어야 했던 아침이었다.

침을 삼키기 어려울 만큼 편도가 부어 아팠다.

약을 살만한 곳도 없는 산중이어서 참아야만 했다.

반지로 몸 상태를 점검 해 보니 약간 부어 있었다.

아침을 먹었다.

이름 모를 음식들이 상에 가득한데 삶은 계란 두개와 차 한잔으로.

밖으로 나가 보니 벌판 한 가운데 선 호텔에 묶었었다.

찌르레기 소리가 우리나라의 매미 소리만큼이나 시끄럽게 났다.

색 색깔의 이름 모를 꽃들과 나비가 함께 어울어진 벌판.

정말 멋진 풍경이었다.

망초꽃을 그 원산지에 와서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벌판을 보았다.

촘촘히 박혀 늘어뜨려진 수술이 달린 붉은 일산을 들고 벌판을 걷는 몽고의 왕들이 환영처럼 그려졌다.

환경이 만들어 주는 기질적 특성.

푸른 초원, 그야말로 평원.

무엇이 아까워 한 곳에 터를 닦겠는가?

그 곳이 아닌 또 다른 그 곳에도,

또 다른 어느 곳이라도 다 이 곳과 같은데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하려 하겠는가?

유목민들이 자연에 의연하게 대처하며 살 수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변화를 갖고 싶어 일말의 기대를 하고 찾아온 벌판.

벌판에서, 양지꽃, 아기붓꽃, 마아가렛, 쑥부쟁이…… 그 밖의 이름 모를 키 작은 꽃들을 보았다.

너무나 좋아서 뒤로 넘어 갈 것 같았다.

거기서 나는 적어도 내가 원하는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벌판에서 두 팔을 벌려 만세를 부르는 자세로 한참을 서 있었다.

이런 곳을 마음 맞는 사람과 함께 와서 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
…….
…….
아!
…….
…….
…….

내가 찾는 것은 격정이 아니라 평화 였다는 것.

내 안에 거하는 격정을 잠재우고 평화를 찾을 수 있다면 거기서 모든 것이 정지된다 하여도


살 . 수 . 있 . 을 . 것 . 같 . 았 . 다.


원래는


그냥,


그저,


그렇게,


살려고 했다.


안되면 안 되는대로 되면 되는대로,

모르면 모르는대로, 알면 아는대로.

그러나 자꾸만 그러고 싶지 않아진다.

뭔가를 극복해낸다는 것에 재미가 붙은 것 같다.

세상에 대해 겁이 없어진 건가?

이 작품을 끝내고 나면 많은 것을 배울 것 같다.

하여 대동소이한 문제로 가타부타 왈가왈부하지 않기로 했다.

일의 진행상 각 개개인의 능력을 믿어 주고 책임감을 주어 자율적으로 맡기기로 했다.

그렇다면 이 타협의 소리들이 어떤 절대를 원했을 때 충분히 타협 없이 가능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인간적이든 합리적이든.


이런저런 생각 끝에 벌판에서 든 생각인데

한 아이를 향한 나의 이 감정을 꼭 버려야야만하나? 라는 의문이 생겼다.

삶의 활력이 된다면 굳이 버려야 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낮에 두부스프에 들어간 푸른 이파리 하나를 잘 못 씹고 역해서 양치질을 오랫동안 했는데도

잔내가 남아 속이 하루 종일 울렁거렸다.

극복 한답시고 이것 저것 먹어댔는데 아니다 다를까? 역시 설사를 했다.

괄약근에 힘을 주고 이동해야 할 일을 생각하니 걱정이 앞 선다.


중국의 마을들은 마을의 규모도 작고 집의 크기도 작고 호수도 적었다.

우리나라 70년대 모습과 많이 닮아있었다.

파벽으로 지은 듯한 허름한 느낌이 집들이 새 집을 짖고 있는데도

오래된 집처럼 낡게 보였다.


하의만 입은 하동들이 그물을 가지고 하천에서 물놀이를 하고 그 옆 하천에서는 준설 작업이 한창이었다.

밑둥과 끝의 굵기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침엽수림이 끝없이 펼쳐지고

하루종일 내달려도 끝이 나지 않는 나라.

그 잠재적 저력에 기가 죽었다.

최근에 본 적 없는 칠흑 같은 어둠을 보았다.

씨가렛 브로큰 타임을 즐기며 별자리를 보았다.

무리를 해서 먹은 저녁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토했다.

극복이고 나발이고 그냥 굶기로 했다.

이렇게까지 토하고 설사를 하면서까지 나를 바꿔야 할 필요가 과연 있는 걸까?


“니가 아니어도 세상은 돌아가”라는 충고를 받을 만큼 일에 한번 몰입하면 앞뒤 좌우 가리지 않고 철저하게

준비하고 몰입하는 타입이었는데 이번 헌팅 준비는 그렇질 못 했다.

비상약도, 비상 음식도, 필수품도, 자료들도……


씨씨 티비 세트장 가는 길에 지평선을 보았다.

어마어마한 세트장 규모에 놀랐다.

자존심도 상하고 화도 나고 부럽기도 하고 엿 같은 기분이었다.

삼십만 평이나 된다는데 완벽에 가까웠다.

날씨가 더워서 신주단지처럼 물을 모시고 다니면서 먹어댔는데도 화장실에 가지 않을 만큼 땀을 쏟아냈다.

얼굴이 몹시 따가웠다.

썬크림을 가져 왔어야 했는데.

이놈의 햇볕 알러지 때문에 긴 팔을 벗을 수도 없고.


하루종일 세트를 보고 다녔다.

놀라기도 귀찮고 하도 기가 막혀서인지 나중에는 눈에 인이 박혀서 놀랍지도 않았다.


저녁을 먹었다.

정말로 맛있는.

붉은 네온들이 불야성을 이룬 곳 어느 식당에서.

영화에 나오는 가든 파티의 한 장면 같은 시간이었다.

영어와 중국어와 한국어들이 오가며 한 템포씩 늦게,

혹은 뉘앙스로 웃으며 보낼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행복했다.


극도로 피곤하다.

바쁜 일정 때문에 아플 틈도 없다.

마음에 점 하나 찍어 놓은 관계로 일하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세상이 달리 보인다.

그러나 행복하다.

어찌나 행복한지 너무나 피곤함에도 정신과 육체가 양극점으로 치달아 벨런스가 맞아서인지 견딜 만 하다.

일점을 향해 일광을 집광 시키면 타들어 가듯이

물에 불은 비누처럼 신경들이 흐물흐물 다 풀어 헤쳐진 기분이다.


복잡한 문제들이 나타나기 시작 했다.

순전히 감정적인 문제들.

말로 하자니 쪽 팔리고 안 하자니 속이 끓고. 에라 모르겠다.

이런 생각들은 일단 보류하자.

나는 지금 혼자 노는 중임


비행기 컨폼을 잘 못해서 이틀을 상해에서 머물고 또 제주를 경유하여…

제주는 폭풍우가 몰려오고 있었고

또 다시 서울 가는 비행기가 없어서 청주로 가야하는 기타등등…

하여간


한국에 돌아 왔다.

우여 곡절 끝에.





짱짱 ^*^))// 방글방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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