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꿈, 너무나 생생한, 그러나 결국은 개꿈.

monomomo 2003. 9. 27. 09:05







꿈, 너무나 생생한, 그러나 결국은 개꿈.




낮잠을 잤다.
어찌나 곤히 잤던지 죽은 듯이 잔 것 같다.

꿈.
때는 일제 말기.
난 이주민이었고 독립운동을 하는 아들을 한 명 둔 사람이었다.
어떤 기시감도 없는 너무나 생경한 풍경 속.
만주인지 러시아인지 아무튼 우리나라는 아니었다.
며느리와 손자도 한 명씩 있었다.
며느리는 중국 여자인 것 같았다.
손자 녀석이 어찌나 예쁘던지 그 아이와 함께 있으면 너무나 벅차서 가슴이 터질 것처럼 차 올랐다.
꿈에.
어느 날 아들이 왔다.
아들은 수염을 잔뜩 기르고 있었고 털벙거지를 쓰고 있었다.
날씨는 몹시 추운 날이었다.
아들은 며느리가 업고 있는 나의 손자의 얼굴에 자기의 얼굴을 계속 부벼대며 어디론가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자마자 떠나는 아들을 바라보는 나의 심정은 그냥 덤덤 그 자체였다.
며느리는 연신 눈물을 훔쳐내고 있었다.
그야말로 아들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홀연히 떠나고 나는 며느리와 쓸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아들이 없어도 며느리와 나는 손자를 잘 데리고 밭에 나가서 푸성귀를 줏어서 먹고 살았다.
어느 날인가, 고향을 생각해 냈다.
해남, 우리 이러지 말고 해남에 가서 살자고 나는 며느리에게 제의했다.
며느리는 처음엔 한사코 가지 않겠다고 하더니 나중엔 결국 나의 말에 동의를 하고 우리는 해남에 갈 차비를 했다.
그러나 며느리는 나중에 돌아올 남편이 걱정이 되었든지 어딘지는 모르나 러시아 관공서 같은 곳엘 가서 뭐라고뭐라고 부탁을 하고 나왔다.
나도 그때 함께 동행중이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누군가 쏜 총에 맞아 며느리와 손자가 내 눈앞에서 쓰러지는 것이 아닌가?
죽은 것이다.
나는 너무나 겁이 나서 무조건 뛰고 또 뛰었다.
바로 그때 러시아 사람 하나가 날 붙잡아 세웠다.
난, 거의 체념을 하고 그래 죽일려면 죽여라 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거울을 보진 않았지만 얼굴엔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었다.
그런데 뜻 밖에 그 러시아 사람은 내게 죽은 오리 두 마리와 죽은 닭 두 마리를 건네주며 가져다 먹으라는 시늉을 했다.
나는 그 와중에 축 늘어진 죽은 오리 두 마리와 죽은 닭 두 마리를 양손에 들고 낡고 허름한 집으로 왔다.
집으로 오자마자 나는 양손에 든 닭과 오리를 철썩 내려놓으며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이름은 까먹었지만 그 아이(며느리와 손자 녀석)들의 이름을 부르며 땅바닥에 철푸덕 앉아
“살려내! 살려내! 제발 좀 살려내 줘! 안 그러면 날 데리고 가든지!!”
그러면서 어찌나 소리를 지르며 울었던지 그 소리를 내가 듣고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떠보니 나는 소리내어 울고 있었다.
귓가로 눈물이 흘러 귀밑머리 쪽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고 얼굴이 온통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나는 눈을 뜨고 꿈이라는 걸 알았으면서도 한참을 그렇게 울었다.
나중엔 딸꾹질을 해 가면서까지 울었다.

꿈에서 깨서 생각 해 봤다.
이상하다. 그런데 왜 남편은 없었을까?
아들이 예수가 아닌 것이 분명하니 내가 마리아는 아니었을 테고, 그렇담 남편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에라잇! 박복한!!
꿈속에서까지도 …남편이 없다니..
엄청나게 짧았지만 엄청나게 행복한 한 순간이 있었고
엄청나게 짧지만 상실의 아픔으로 엄청나게 절망적인 한 순간이 존재했던
엄청나게 짧았지만 꿈이라 말하기엔 엄청나게 생생한 꿈이었다.
죽은 내 며느리와 손자는? 그리고 아들은?
두 마리의 죽은 닭과 오리는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밖으로 나가서 담배를 한 대 폈다.
가슴 깊숙이 연기를 빨아들이고 내쉬며 생각했다.
상실......
상실이 주는 아픔을 대신 할 만한 아픔은 존재하지 않다고......
하여 비록 꿈이었지만 깨어나서까지 그 감정이 이렇게 연장되는 것 아니겠는가 하고.....
난 여행을 오면서 혼자 오지 못했나보다.
맘은 두고 몸만 왔어야 하는 건데.
여전히 복잡하다.
하오의 따사로운 광선 속으로 사라지는 희회색 담배 연기를 보며
채양막 밑 의자에 등을 기대고 비스듬하게 앉아
저 연기처럼......
저 담배 연기처럼 공기 중에 떠돌다가 산화되어 버릴 수 있다면.....



쓰잘데기 없는 생각을 하며 덴버의 가을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 난 여기에 왜 와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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