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몸살 나다.

monomomo 2003. 9. 28. 08:20


해가 뜨고도 한 참을 더 달려 고추 농장에 도착했다.

농사를 본격적으로 지어 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농삿꾼의 딸이라며 큰 소리 땅땅 치며 고추 농장에서 고추를 땄다.

해가 너무 뜨겁기 때문에 일찍 따고 와야 한다며 새벽길을 나섰으니 해가 중천에 오르기 전에 얼른 따고 가야 한다.

고추는 한국 고추의 두 세배쯤 컸다.

고추 뿐만 아니라 뭐든(과일, 야채, 사람, 그리고 농장, 땅덩이 등등) 좀 큰 편에 속했다.

한국 사람들은 농장에서 고추를 직접따서 말려서 빻아서 먹는다고 했다.

사서 먹어도 되련만, 난 속으로 극성스럽다고 생각했다.

잠깐이지만 미국에 와서 든 생각이 있다면 그것은 여기로 이민 온 사람들 대부분이 이민 올 당시의 사고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었다.

낡고 권위적이고...나열하기조차 귀찮다.

정말 창피했다.

아주 환경이 나쁜 곳에서 사는 불쌍한 고국의 동포로 보여진 나는 속으로 어찌나 우습던지.

일일이 아니라고 설명 하기도 귀찮아서 그렇게 생각하다 죽든지 말든지 난 아무 대꾸도 안했지만

참 그런 고정 관념을 믿고 사는 그들이 내 입장에서 볼 땐 안타깝기 그지 없었다.

그리고 한국을 뭐 금방 다 망해가는 나라로 오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신 상태가 어쩌고 저쩌고......뭘 안다고.

-우수웠던 것은 나이가 들면 나라에서 다 연금이 나와서 죽을때 까지 걱정 없이 살수 있다나? 어쩧다나? 참참참!!! 저런 사고방식으로 살다니...연금을 받아먹고 살 생각을 하다니, 난 그런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마치 거지 근성처럼 느껴졌다. 가난한 나라에서 먹을 것이 없어 노동이민을 와서 막일을 하다가 이제 나이가 들어 먹거리를 준다 하니 오죽 좋을까 싶어 이해 하려했지만 이해 하고 싶은 맘이 추호도 안 생겼다. 우리나라는 이미 1차 산업에서 벗어났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신 상태가 잘 못 되어서 중국에 노동력을 빼앗겼다나 어쨌다나? 정치들에는 또 어찌나 일가견들이 있는지 뉴스멘트를 달달 외우듯이 한 말씀씩들 하고 있었고 관심들이 있었다. 미국에 와서 한국의 소식을 듣다니, 나처럼 거의 1년에 가깝게 티비나 신문을 보지 않는 사람은 몰매감이었다.(매미 소식을 물을때는 좀 겸언쩍었다. 엄청 큰 피해가 있었던 모양인데 묻는 말에 답을 못했다)참나...아니 그럼 우주선이 왔다 갔다하고 광통신이 세계를 누비는데 아직도 대나무로 소쿠리나 만들고 있어야 한단 말이야? 식당에서 혹은 건물에서 궂은 일하며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하는 그들앞에서 뭐라고 대꾸 할 말은 없었지만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하여간 서너 시간에 걸쳐 고추를 따서 집으로 왔다.

오자마자 씻고 나는 곧바로 뻗어 버렸다.

허리가 짜게지는 것 같았다.

농사를 지으면서도 한 번도 안 해 본 노동이었다.


한 숨 자고 일어 났더니, 온 몸이 불덩어리처럼 펄펄 끓고 다리가 무겁고 근육에 가랫톳이 서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코피가 터지고 손도 퉁퉁 붓고 얼굴도 퉁퉁 부었다.

콧 구멍에서 단내가 나고 편도가 부어서 침도 삼키기 어려웠다.

일교차는 어찌 그리 심한지 밤이 되자 너무 추웠고 아침이 되자 더 추웠다.

풀리지 않은 여독에 노동까지 했으니 감기 몸살이 온 것이다.

언니는 타이레놀이 무슨 만병 통치약이라도 되는 양 계속 먹으라고 준다.

.....

그리고 며칠째 난 감기 몸살로 집밖으로 한 발자국도 못 나가고 앓고 있다.


얼른 추스려서 다음주엔 또 켈리포니아로 가야 하는데...

연일 머리가 깨질듯이 아프고 온 몸이 너무도 뜨거워서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다.

거기다 생인손을 앓아서 오늘 아침에는 손톱에서 고름을 짜냈다.

평소엔 손톱이 어디 있는지 몰랐는데 손톱이 어디 있는지 알겠고 그닥 큰 아픔은 아니더라도 신경이 쓰인다.

아~~ 누룽지가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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