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진 후에 별들이 언덕과 나무숲 뒤에서 무리지어 나오는
모습을 보면 좀더 호기심에 차고 감동적인 밤을 보내지 못한
나의 무능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소로우의 일기 / 소로우
난 요즘 아무 생각도 안 난다.
왜 그럴까?
돌아서면 잊혀지는 것들.
지금만이 전부인냥 살고 있지만
이렇게 새카맣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다니.
오로지 지금.
지금만이 중요하다.
어젠 종일 우울했다.
만일 같이 간 언니 내외만 아니었다면
헐리우드 어느 거리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서
맥주를 홀작이며 눈물께나 쏟았을 것이다.
그리운 것들.
보고 싶은 것들.
사라져가는 것들.
그리고 언젠가는 사라지고 말 감정에게
최선을 다 할 수 없는 상황이
날 숨막히게 했다.
맘이 정리 되는 듯 했지만
고질병처럼 고개를 들고 일어서는 적멸(寂滅)에 대한 유혹과 올가미에 또 다시 사로잡히고 만다.
얼마만큼 그 부침의 시간이 되풀이 되어야 벗어 날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오랜 침잠의 시간에서 벗어나려면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의지에
신의 힘이 보태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힘이 든다.
날 쥐고 흔드는 이 무형의 무게감이
생각없이 파고드는 자존에 대한 깊은 책임감이
언제까지 날 끌고 다닐 것인지
이젠 그만 헤어나고 싶은데...
가슴이 짖눌려 숨을 쉬기 어렵다.
게다가 여행하는 내내 아프다.
여전히 왼쪽 팔은 24시간 저리고.
미열을 동반한 잦은 두통과 답답한 가슴.
그리고 난생처음 앓아 보는 생인손이(이젠 엄지 손가락) 벌써 3번째다.
몇 달씩 이동하며 밤을 새고 촬영하며 다녔어도 끄덕없던 나였는데.
몸도 마음도 극도로 피곤하다.
아무것도 그리워하지 말자.
미련처럼 미련한 것은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것이 삶이든, 사람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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