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랑하지 않는자 모두 유죄
나는 한때
나 자신에 대한 지독한 보호본능에 시달렸다.
사랑을 할 땐 더더욱이 그랬다.
사랑을 하면서도
나 자신이 빠져 나갈 틈을
여지없이 만들었던 것이다.
가령, 죽도록 사랑한다거나,
영원히 사랑한다거나
미치도록 그립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내게 사랑은
쉽게 변질되는 방부제를 넣지 않은 빵과 같고,
계절처럼 반드시 퇴색하며,
늙은 노인의 하루처럼 지루했다.
책임질 수 없는 말은 하지 말자.
내가 한 말에 대한 책임 때문에
올가미를 쓸 수도
있다.
가볍게 하자, 가볍게.
보고는 싶지 라고 말하고,
지금은 사랑해 라고 말하고,
변할 수도 있다고
끊임없이 상대와 내게 주입시키자.
그래서 헤어질 땐 울고불고 말고
깔끔하게, 안녕.
나는 그게 옳은 줄 알았다.
그것이 상처받지 않고 상처주지 않는 일이라고 진정 믿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드는 생각.
너, 그리 살어 정말 행복하느냐?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죽도록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만큼만 사랑했고,
영원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나 당장 끝이 났다.
내가 미치도록 그리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나를 미치게 보고 싶어하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사랑은
내가 먼저 다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버리지 않으면 채워지지 않는 물잔과 같았다.
내가 아는 한 여자,
그 여잔 매번 사랑할 때마다 목숨을 걸었다.
처음엔 자신의 시간을 온통 그에게 내어주고,
그
다음엔 웃음을, 미래를, 몸을, 정신을 주었다.
나는 무모하다 생각했다.
그녀가 그렇게 모든 걸 내어주고 어찌 버틸까,
염려스러웠다.
그런데......
그렇게 저를 다 주고도 그녀는 쓰러지지 않고,
오늘도 해맑게 웃으며 연애를 한다.
나보다 충만하게.
그리고 내게 하는 말,
나를 버리니, 그가 오더라.
그녀는 자신을 버리고 사랑을 얻었는데,
나는 나를 지키느라 나이만 먹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모두 유죄다.
자신에게 사랑받을 대상 하나를 유기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속죄하는 기분으로
이번 겨울도 난 감옥 같은 방에
갇혀,
반성문 같은 글이나 쓰련다
글 : 노희경
이걸 몰랐었다.
아니 알고는 있었으나 잠시 잊었었다.
나는 전자 쪽이고 그녀는 후자 쪽이었다는 걸.
그래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무의식 중에 후자 쪽에 속한 사람을 난 경멸하고 있었던 것 같다.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성을 쾌락의 도구로 삼는 것을.
그렇지 않는다고 해서 결코 행복한 것도 아니면서.
알고보니 나 역시 이런 편견을 가지고 내 잣대에 맞춰서 재고 있었던 것이었다.
오십을 향해가는 이 나이에
이 고루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어찌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가끔 스스로 의문이 생긴다.
그래도 변치 않을 것이라는 걸 아니까 더욱 그렇다.
언제쯤 도덕선생 같은 사고에서 혹은 고리고리짝 사고에서 벗어 날 수 있을까?
그런데 과연 벗어나고는 싶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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