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좋다.
일단 눈을 뜨지 않아도 되니까.
그 선율이 보고 싶어 불을 켜 볼 때가 있었다.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것이 손에 금방이라도 잡힐 것 같아서.
아니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몇 번이나 속아놓고,,,도돌이를 한다.
그 순간은 그렇게 믿어지기에.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한 기억이 없지만 음악을 떠나서 살아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어릴 적 뜨거운 여름날 처녀들이 김(잡초제거)을 맬 때 어린애들 기저귀 묶는 노란 고무줄로 칭칭 동여 맨 트랜지스터라디오 보다 더 큰 건전지가 묶인 라디오를 밭이랑에 옮겨 놓는 일을 도맡아 하면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김정구 조미미 노래를 따라 부르며 놀았던 기억이 아마 내가 처음 음악을 접했을 때가 아닐까싶기도 하고 아버지가 날 재울 때 옆집 철수는 개똥밭에 재우고 우리 아가는 꽃밭에서 재운다 뭔 이런 가사가 있는 자장가를 들으면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밤이면 낮에 같이 풀 매던 처녀들 집에 가서 다듬이 방망이를 마이크 삼아 노래를 부르면 놀았다.
라디오를 들으며 마당 가장자리에 놓인 화덕에 팥죽 쑬 팥을 삶을 때도 부지깽이로 솥뚜껑을 두드리며 노래를 따라 부르다가 검게 그을린 부지깽이로 가사를 마당에 적곤 했던 기억이 있다.
그 집에 전축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친하게 지냈던 친구도 있었다.
음악이란 게 시골에선 도롯도라고 불리던 트로트가 전부였던 시절. 라이브 음악이라곤 매년 겨울이면 동네 청년들이 열었던 콩쿨대회가 전부였다.
악기라고는 기타가 전부인.
거기서 상을(부상으로 솥단지, 탁상시계, 후라이팬,석유난로,괘종시계등이 있었다) 타면 남자든 여자든 인기가 참 많았었다.
가물가물 하긴 하지만 그러그러하게 만나서 연애를 하던 처녀 총각들도 있었던 것 같다.
만화가게를 하던 친척 오빠가 당시에 꽤나 값이 나갔던 독수리표 카세트라디오를 사서 이런 저런 테이프를 넣고 들려 줘서 만화도 좋아하긴 했지만 만화를 보려고 만화가게를 갔었는지 음악을 들으려고 갔었는지 구별이 안 갈 만큼 자주 갔었다.
세월이 흘러 맨 처음 라디오 에프엠(FM은 단파 방송이라 산 넘고 물 건너 시골까지 전파가 오지 않는다)을 접하고 팝과 클래식을 들을 때 그 느낌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베에토벤이나 모차르트에 반했다기 보다도 레이프 가렛이나 진추하 장국영 등등에 더 반했었던 것 같다.
이후, 커피를 마시러 카페를 가는 것이 아니라 친구랑 음악을 들으려고 빽판을 사 들고 자주 찾던 카페도 있었다.
빽판이라는 게 장마다 그 두께가 달라서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바늘 무게를 조절 해 줘야 하는 경우들이 많았다.
10원짜리 동전으로 한개 혹은 두개를 덧얹어서 제대로 바늘이 판에 패인 홈을 읽게 해 줘야 잘 들렸었다.
지금이야 시디가 나와서 그럴 일도 없지만.
부드러운 융으로 된 천으로 앨피를 정성껏 닦아 턴테이블에 올리고 약간은 지찍 거리는 소리와 함께 들었던 기억이 생각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좋아하는 음악을 골라서 녹음한 테이프가 마르고 닳도록 듣다 보면 늘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그땐 테이프를 냉동실에 잠깐 넣어 뒀다가 들으면 다시 정상적으로 들리기도 했었다.
오래 전 일이다.
지금도 나는 음악을 듣는다.
두서없이 감정 가는대로 한곡만을 줄그리장창 듣기도 하고 또 장르를 넘나들면서 듣기도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장르에 음악이 있다면 블루스다.
아~! 블루스.
죽은 것과 진배없었던 시절을 가장 가까이서 위로해 준 게 음악이다.
뜨겁게 와 닿아서 일 것이다.
혈연에 대한 집착도 없고, 맺고 싶은 인연에 대한 욕망도 없어 바람 같은 삶을 살아 왔지만 때로 때때로 혼자 살다 저물어 가는 인생에 쓸쓸함이 엄습하면 그 허허로움을 음악으로 위로 받고 살았다.
살면서 힘들 때나 기쁠 때나 언제나 함께 했던 음악.
언제나 변함없이 내게 기쁨과 슬픔을 줬던 음악.
시절의 고비를 넘길 때마다 함께 했던 음악들이 당시의 기억들을 고스란히 살려 추억 속으로 데려다 주는 타임머신이다.
음악은 내게 있어 숨과 같은 존재였고 내 인생의 여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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