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장
요사체 마당.
노랑 빨강 초록색의 연등들이 쌓여있다.
무대 중앙의 평상에 도법 탄성 월명이 앉아 초파일에 쓸 연등을 만들고 있다.
운력시간이다.
월 명 (노래를 부른다) 외로워 외로워서
탄 성 어허 저놈이.
월 명 (더 힘을 주어) 못 살겠어요.
탄 성 저놈도 전생의 업장이 두터워서 가수로 못 풀리고 중이 됐지.
월 명 (혼잣말로) 이번엔 삼만원짜릴 만들어볼까? 주지스님, 스님들이 꼭 이런 일을 해야 된답니까?
탄 성 뭘?
월 명 이 연등 만드는 것 말예요.
탄 성 일일부작(一日不作)이면 일일불식(一日不食)이니라.
월 명 좀 쉬운 말로 해요 쳇.
탄 성 하루 일을 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는 뜻입니다. 아수라야, 알아듣겠느냐?
월 명 지 말은 이런 장사를 꼭 해야 되느냐 이 말입니다, 스님들이.
탄 성 장사라니?
월 명 아 그럼 이 종이딱지 원가가 얼마나 된다고 돈 받고 팔아요?
탄 성 이놈아. 자고로 절이란 초파일 쇠서 여름 나고 칠월칠석 쇠어 가을 나는 게야. 그래야 절도 짓고 스님들도 먹고 살지.
월 명 절은 더 지어서 뭘 해요. 사방천지가 절이고 있는 절도 개판인데. 지가 큰스님 되면 사원건축 불허령을 내리겠어요.
탄 성 저놈이 무당 푸닥거리 신세를 면케 해주니까 이젠 큰스님이 어쩌구 어째?
월 명 너무 무당 무당 그러지 마세요. 울 엄마가 뭐 무당 짓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아세요?
탄 성 그럼 사내 밑둥지 맛보고 싶어서 하던가?
월 명 스님은 외붕알이라고 합디다.
탄 성 그럼 네놈은 겹불알이었더냐.
월 명 스님은
탄 성 이놈아. 대장부란 아무리 약 올려도 성냄이 없어야 되는 법, 항상 무심(無心)으로 살아.
월 명 관두세요. 저는 금생(今生)에 성불(成佛)은 포기했으니까요.
탄 성 (월명의 허벅지를 세게 꼬집으며) 시급한지고. 네놈의 팔자가.
월 명 왜 꼬집어욧?
탄 성 아프냐?
월 명 그럼 안 아파욧?
탄 성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그 아픔과 안 아픔이 다 니 마음속에 있느리라. 월멩아, 알아듣겠느냐?
월 명 흥! 제 법명은 월명스님이에요.
탄 성 돌멩아, 아직도 모르겠느냐?
월 명 쳇!
탄 성 (알밤을 주며) 공부 좀 하거라. 허구헌날 애기보살 꽁무니만 쪽쪽거리고 쫓아다니니 퉁퉁 불은 불알 잡고 무슨 공부를 했겠느냐. 그러니 대가리가 맹탕인 게야.
월 명 지가 언제 애기보살 꽁무니만 쪽쪽거리면서 돌아다녔다고 그래요?
탄 성 이놈아, 후원보살 딸년은 애기보살이 아니고 무엇이라더냐.
월 명 아이고 아이고 기가 막혀. 걔는 이제 여섯살이에요.
탄 성 (알밤을 주며) 이놈아. 잔소리 말고 잘 새겨들어. 일체유심조란…
월 명 흥! 원효스님의 일체유심조를 모르는 중이 어딨어요.
탄 성 무슨 뜻이더냐?
월 명 일체의 것은 모두 마음먹기에 달렸다 이겁죠.
탄 성 하면?
월 명 보름 전에 서울 점박이보살이 백일기도하러 내려왔습죠?
탄 성 그래 나도 안다.
월 명 후원에서 쌀을 씻고 있대요. 찬찬히 보고 있다가 지가 이렇게 말했지요.
“네년 젖통이 듬직하구나.”
그 보살이 열 받대요.
“네 이년! 뭘 그리 못마땅한 눈알로 흘겨보느냐?”
그것도 주둥인 뚫렸다고 한마디 뱉을 기세에요. 지가 바락 소래기를 질러댔죠.
“네 이년! 자고로 미련한 년이 젖통만 큰 게야.”
머리 끝까장 약이 올랐겠죠. 지가 이렇게 한수 가르쳐 줬습니다요.
“화났느냐? 기분이 상했어? 이것아, 그 성냄과 성내지 않음이 다 니 마음속에 있는 게야. 관세음보살.”
탄 성 인석아, 그 보살이 바로 우리 봉국사 화주(化主)보살이야.
월 명 점입가경이올시다.
탄 성 좋다.
월 명 가래를 뱉으려고 “칵”했는데 큰아버지가 저쪽에서 오기에 도로 가래를 삼키고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했지요.
탄 성 그래서?
월 명 이때 우린 여기까장 끄집어낸 가래를 아무 생각없이 먹은 것인데 그 누런 가래를 책받침에 일단 뱉었다가 먹으라고 하면 못 먹는다 이 말입니다. 재료나 색깔은 똑같은데 마음이 요랬다 죠랬다 요술을 부린 거지요.
탄 성 을쓰꿍! 어느 똘중한테서 듣긴 들은 모양이구나.
월 명 뽀뽀만 해도 그래요. 순진한 나로서는 전혀 이해가 안 가지만요, 뽀뽀할 때 상대방의 침을 쪽쪽 빨아먹는다고 합디다.
탄 성 옛끼 이 녀석.
월 명 그 뽀뽀를 이렇게 해보자 이 말입니다.
탄 성 어떻게?
월 명 서로 주둥이만 살짝 갖다대고 침은 각자 사발에 칵칵 뱉어 건네준 다음 상대방의 것을 핥아먹는 거죠. 똑같은 재료에 똑같은 양인데도 병신이 아닌 다음에야 누가 그것을 핥아먹겠어요. 역시 마음의 조화라 이거죠.
탄 성 옳고 옳고. 그 아름답고 추한 것이 다 지 마음속에 있는 것을…….
월 명 결국 사람들은 똥이라면 더럽다고 오도방정 다 떨면서, 밑닦은 다음 똥을 확인하고 휴지를 접고, 닦고 보고 접고, 닦고 보고 접고 하는 엉망진창 괴물단지라 이겁니다. 더럽다면서 뭘 그리 쳐다본답니까요?
탄 성 그래 그래. 네놈 말이 맞다.
월 명 일체유심조라. 해가 떠서 밝다고 보는 것도 한때의 마음이며 해가 져서 어둡다고 보는 것도 한때의 마음인 것이니라. 탄성아 알아듣겠느냐?
탄 성 예, 큰스님.
월 명 둥근 그릇엔 둥근 물, 각진 그릇엔 각진 물. 그런데도 너는 그 사실을 잊고 물의 모양에만 마음을 팔고 있어. (바닥을 세번 치고 나서) 돼지 궁둥짝에 목련이야, 할!
탄 성 큰스님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월 명 말씀 낮추시게. 손님이 가고 없다고 하여 여관이 없어진 것은 아닌 것처럼 자네와 나와의 나이 차이야 어디 가고 없어진 것이 아니지 않는가?
탄 성 무진법문이옵니다. 하오면 (월명의 허벅지를 세게 꼬집으며) 이젠 안 아프시옵니까?
월 명 (꾹 참으며) 그 아픔과 안 아픔이 다 이 마음속에 있느니라.
탄 성 관세음보살.
월 명 니미에미티불.
그 때 원주스님이 쟁반에 먹을 것을 들고 등장한다.
원 주 아유, 운력시간 한번 조촐하네요. 스님들이 예비군 훈련이다 뭐다 하여 다들 나갔지 뭐예요. 재무스님이사 그 지체 높으신 양반이 이런 데 나올 리 없고.
월 명 흥, 주지스님도 나왔는데 재무라고 안 나와.
탄 성 허허, 이놈이 아무래도 삼천 배를 해야 될란갑다.
월 명 할 때 하더라도 할 말은 해야지요. 지가 언제부터 재무라고, 양말 빨아라 신 닦아라 하냐구요. 처녀보살이 오면 “월명아 꿀차 타 와라” 할머니보살이 오면 “월명아 먹다 남은 칡차 있쟈?” 흥! 주지스님이 혼 좀 내야 한다구요.
원 주 (먹을 것을 평상에 내려놓는다)
월 명 (집어먹으려고 한다)
원 주 아이구. (월명의 손을 탁 치며) 우리 큰스님께서 뭐 이런 걸 다 잡술려구요. (탄성에게) 자, 드시고 하세요.
월 명 누군 입이고 누군 주둥이랍니까?
원 주 뭐야? (순간 도법을 보고는) 어머 도법스님도 와 계시네. 저는 스님이 서전에 계신 줄 알고 행자시켜 그리고 보냈는데 이를 어쩌나. (탄성, 떡을 먹으려 하자) 잠깐 잠깐! (탄성에겐 떡을 몇점 놓고 나머진 모두 도법에게 갖고 간다) 그나저나 바쁘실 텐데 어떻게 나오셨어요?
도 법 이제 다 끝났습니다. 금박만 올리면 되지요.
원 주 어머 어머 보고 싶어라. 그동안 참 고생 많으셨어요.
도 법 고생은요. 걱정이 앞섭니다.
원 주 도법스님 하시는 일이 어련할라구요.
도 법 (떡을 먹으면서) 언제 제사 있었습니까?
원 주 그냥 했어요. 찹쌀떡이에요. 아유! 이번 초파일을 어떻게 쇨지 걱정이에요. 재무스님하고 손발이 맞아야 척척 착착일텐데 그 답답한 양반하고 대사(大事)를 치르려면……. 아니 주지스님은 왜 그렇게 조용하세요? 주지스님답지 않게.
탄 성 거 스님은 남자답게 딱딱 끊어서 말 할 수 없소. 계집애처럼 재재재재 재재재재.
원 주 어머 어머. 지가 언제 재재재재 재재재재 했어요. 내 참 내 원 기가 막혀서.
탄 성 그러니까 보살들이 계집애 같다고 맨날 놀려먹지.
원 주 체, 바느질에 손놀림만 부드럽다고 칭찬합디다.
탄 성 쯧쯧.
원 주 그럼 어느 절이고 살림하는 원주가 다 그렇고 그렇지 뭘 그래요.
탄 성 어깨를 좀 탁 펴고 에헴 요년들 어디 와서 나발나발대는 거야 이래야지 (원주 흉내를 내며) 호호호호, 흥! 내 참 내원 기가 막혀서. 아이구 이 오도방정 이게 뭔가.
원 주 아이구, 언제는 원주 잘 만나 청국장 잘 얻어먹는다고 아양만 떠시더니 무슨 사내 마음이 요랬다 죠랬다 바람난 얘기보살 같답니까?
탄 성 언제 또 바람난 얘기보살과 놀아났던가.
원 주 화두가 없음 조용히 묵상하세요.
탄 성 자네 걸음걸일 볼 때마다 엉뎅이에서 비파소리가 들리는 거 같아 화두를 들 수 있어야지.
원 주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답니다.
탄 성 굽은 망아지는 달릴 수가 없답니다.
원 주 길은 갈 탓 말은 할 탓.
탄 성 하하하하 악담이 덕담이니라.
원 주 저런 스님이 말하고 싶어서 어떻게 묵언(?言)을 했을꼬. 쯧쯧쯧. 자, 장 보러 가니까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시방 말씀하세요.
월 명 저 신이 떨어졌는데요.
원 주 몇 문?
월 명 대충 사오세요.
원 주 발 좀 이리 내. (적으면서) 십문 칠. 다음부턴 외워.
월 명 또 여름양말 네 켤레요.
원 주 두 켤레만 사고. 또요?
월 명 떡 더 없어요?
원 주 왜요 있지요. 하지만 적게 먹고 가는 똥 싸셔야죠.
월 명 (탄성의 흉내를 내며) 하하하하 원주가 오랜만에 옳은 말 했구나.
원 주 아니, 죠것이. 넌 깜장 고무신이야.
월 명 여보게 원주, 노여워 말게. 꼬부랑 자지는 항시 지 발등에 오줌눈다 안 하던가.
원 주 아니 어머 어머 (아랫도리를 가리며) 뭐 자……? 아이구 나 말 못해 말 못해.
월 명 (자기 입을 때리면서) 아이구 오도방정. 그 흔한 불알마저 없을지도 모르는데.
원 주 뭐야? 왼종일 재수가 없더니 이젠 저것까지 깐죽 깐죽대네 그랴.
월 명 재수가 없을라면 비행기 속에서도 독사한테 물려죽는다고 안 합디까?
원 주 아유 죠게 정말.
도 법 아, 원주스님.
원 주 (표정을 밝게 하며) 네?
도 법 붓 좀 사다주세요.
원 주 어떤 붓인데요?
도 법 에 그게 어느 거냐며는… 월명아.
월 명 예.
도 법 서전에 가서 노랗고 이렇게 두꺼운 붓 좀 가져오너라. 탁자 위에 있느니라.
월 명 예.
도 법 조심해서. 다른 것 건드리지 말고.
월 명 알았습니다. (나가려 할 때)
도 법 열쇠를 가져가야지.
월 명 (열쇠를 건네 받고 퇴장)
원 주 또 없으세요?
탄 성 여기 있소.
원 주 뭐예요?
탄 성 부라자 좀 사오시오.
원 주 부라자요? 어디에 쓰시게요?
탄 성 (원주를 흉내내며) 당신 주려고용.
원 주 쳇 별꼴이야. 제가 뭐 살림하는 중이라고 약 올리는 거에요? 나도 이 짓 하기가 죽기보다 싫다고요. 오십원짜리고 백원짜리고 재무스님한테 죄다 결재 맡아야지, 능구렝이 같은 후원보살 달래야지, 절 살림해야지. 요즘은 또 읍내 사람들이 무슨 수작인진 몰라도 우리한테 불매운동을 벌여서 배추씨를 살래도 전주까지 나가야 된다고요. 그리고 뭐 점방마다 영수증 끊어달라면 옛슈 하고 척척 내주는 줄 아세요?
탄 성 그렇게 귀찮은 원주 노릇 뭣하러 해. 속퇴하고 광주 양동시장에다가 한복집이나 차리시지.
원 주 저도 내년에는 선방에 갈 거에요.
탄 성 열녀전 끼고 서방질하시려고?
원 주 뭐 스님만 선방수좌예요?
탄 성 이년!
원 주 요놈!
탄 성 봐라. 당신은 이년이고 나는 요놈이지.
원 주 아이구 포산사 운곡스님도 돌았지. 저런 스님을 제일 수좌로 꼽았으니……. 하심(下心) 좀 하세요.
탄 성 운곡스님도 당신을 보았다면 마음이 달라지셨을 걸.
원 주 그럼요 그럼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다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십일장 이십팔절.
이때 월명이 헐떡거리며 뛰어들어온다.
월 명 스님, 스님, 큰일났어요.
도 법 ?
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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