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염없이 기다린다는 것.
투자사에 의해 택함 받는 다는 것.
게다가 성향이 좌지우지 된다는 것.
난 항상 내가 택해서 무슨 일을 해 왔던 것 같다.
신춘문예를 제외하고 가슴에 아픔이 남을만큼 도전해서 떨어져 본 기억이 없다.
그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자존심이 상한다.
그 동안 이 말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자존심이 상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 길도 없었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 없었으므로.
그런데 요즘은 알 것 같다.
아니 안다.
것도 정확히.
이런 것이었구나.
기분이 아주 더러워지는 것.
제기랄.
니기미.
쓰바르.
이런 욱두문자들을 속으로 웅얼거리게 하는 것이라는 걸 알아버렸다.
몰라도 되는 것인데 알게 되어 버렸다.
그간엔 하면 됐다.
뭐든.
그냥 하면 되는 것인 줄 알았다.
하면 됐으므로.
영화를 말아 먹었을 때도 지금 같은 기분은 아니었다.
그땐, 스스로 실패를 인정하기 어려웠던 것이었고
자인하기까지 방황이 끝나고 난 후엔 부끄러웠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은 아니었다.
"제작부는 갈보다"
이런 정신으로 일을 해 왔는데 이젠 더 이상 갈보가 하기 싫어졌다.
자존심이 상해서.
자존심이 상해서 말이지.
없던 자존심이 생겨버려서 말이지.
아는 아짐 아들을 안아봤다.
품 안에서의 느낌이 옹글졌다.
남의 아들을 보고 "한 번 안아보자" 이런 말 해 본 적이 처음 있었던 일이다.
생각조차 안 드는 일이었기 때문에.
자존심이 생긴 것.
남의 아들 안아 본 것.
늙어가는 것이었다.
2004년 9월에 영화사를 차리면서 전화-좀체로 일어나지 않는 일이지만 화가 머리 끝까지 치미는 어떤날 전화기를 패대기 쳐 박살을 내고 다시 사지 않은채 번호를 묶어 버렸다-를 개통했다
이름은 거창하다.
주식회사 아이리스 필름.
아이리스-조리개.
이른바 세상을 보는 눈이다 .
무얼 하든 이름은 항상 거창했다.
독립영화를 한답시고 후배랑 지은 영화사 이름은 -고고-다.
이 이름을 짓기 위해 콘사이스 국어 사전 한권을 다 읽고 몇몇 물망에 오른 단어를 지워가며 고른 이름이었다..
중의적인 내용이 가장 많이 담겨져 있었고 함축적이었다.
높고 높다. 높고 외롭다. 영어로 가자가자. 전진하자라는.
독립영화 정신이 살아있는 느낌이 확 드는 이름이었다.
극단은 동그라미-모든 것을 수용한다라는 의미였다.
내가 직접 지은 극장 이름은 열린 극장이다.
공연을 올리려는데 극장 잡기가 어찌나 어려운지 그냥 하나 지어 버렸다.
항상 열려있고 누구에게나 대관해 주자라는 의미로 열린극장이라 이름 지었다.
온갖 소극장을 다 순례하면서 앉아 보고, 연극도 보고, 조명 시설이나 사운드 등등 조목조목 따지고 연구해서 시멘트 먼지 먹어가며 악바리처럼 번듯한 극장 하나 지었다.
비용 6억 중에서 사운드 시설비가 최고의 시설은 아니었지만 상하급 중상급으로 2억 정도 들었다.
가장 신경을 많이 썼었다.
겨울에 관객들이 입고 오는 외투에서 먹어 버리는 소리까지 계산해서 방음 장치도 죽이게 했다.
일반 소극장에서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있으면 지나가기 어려운 점을 감안해서 수없이 앉았다 걸었다를 반복하며 다리 펴고 걸었을 때 걸리적거리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해서 의자도 잘 앉혔다.
200석 규모의 연극 소극장, 대학로에서는 그 정도 규모를 갖추기 어려울 정도로 아담하게 잘 꾸며 놨는데도 지금은 잘 나가는 극장이 됐지만 난 늘 적자를 면치 못했었다.
게다가 초연으로 올린 공연, 세익스피어 작-환타스틱스가 개박살이 나게 깨졌다.
제작비 1억 천,,건진 돈 800만원.
그 전 공연이 성공해서 순수익 1억2천이었지만 그걸로 위안이 되지 못했다.
연극을 한 세월이 합이 6년.
손을 털고 나왔을 땐 아,,, 이렇게 세월을 버렸구나,,,였다.
지금도 가끔 그 극장 앞을 지나다 그때 만들어 매달아 놓은 간판을 보면 씁쓸한 느낌이 든다.
영화에 대한 갈증 때문에 무얼하든 늘 헛헛했다.
방송국 근무 십년동안 미친듯이 일만 했다.
의자에 쪼그려자고 운동화 벗을 새없이 팔도를 돌아 다니며 여관 잠 자며 일 말고는 한 것이 없었다.
돈만 벌었지 보람이 없었다.
연극, 보람은 있었지만 바위에 계란을 던지는 식의 무모한 일이었다.
허망하다.
그리고 지금은 논다.
말이 노는 것이지 늘 바쁘다.
처음엔 어떻게 놀아야 할지 엄청 힘들었는데 지금은 잘 논다.
놀아보니 노는 것 역시 허망하다.
존재의 허망함일까?
지금껏 참여해서 극장에 올려진 작품이 한 열댓개 되나?
엎어진 것 포함하면 한 이십개 될까?
많은 것도 아닌데,,,
내 첫 사수, 오야붕 감독이 인사동에서 밥집을 하며 매일 노가리를 풀며 노가리를 찢는다.
영화과 수석으로 졸업하고 한때는 잘 나가던 감독이었는데
마흔 넘어 산 사람이랑 결혼해서 아들도 하나 낳고 잘 살고 있다.
그 감독은 어떻게 영화를 그만 뒀을까?
매번 궁금했지만 아픈 곳 후비는 일 될까봐 못 물어 봤는데.
그 결단력이 부럽다.
난, 왜 영화를 하려고 하는 것일까?
촌년이 가진 문화적인 허영심일까?
영화 아니면 진정 내가 할 수있는 일은 없는 것일까?
Only God Knows!!
꿈 이야기를 들은 후배가 말했다.
기가 쇠잔해서 그래 그건.
그러니까 운동을 해.
하다못해 집이라도 좀 정리를 해, 운동 삼아서.어지러진게 눈에 안 보여?
응, 내 눈엔 다 제자리에 있어. 이사가기 전엔 어려울 것 같애. 내가 한 대답이다.
그럼 이사를 가~~!!
이건 도를 닦은 수준 이상이야.
어떻게 이렇게 지낼 수가 있지?
웃었다.
사람들이 이해를 못했다.
어떻게 전화 없는 사람이 있어요?
2년을 그렇게 살았다.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어요?
살 수 있었다.
죽어도 연락이 닿아야 할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연락이 되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다.
아무런 불편함 없이.
오늘 아침, 이 놈의 전화를 또 없애버려? 이런 생각이 든다.
몇달째, 또는 몇주째 오지 않는 투자사 전화를 기다리는 짓거리를 하고싶지 않아서.
그리고 쓸데없는 전화를 한 것에 대한 후회로.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당췌 모르겠다.
알 길이 없다.
소재를 얻기 위해 미친듯이 책을 읽고
시간을 죽이기 위해 미친듯이 음악을 듣는다.
눈을 잠시 붙이면 헛 손질만 해대는 가위에 눌리고
활자가 눈밖으로 튕겨져 나가고
선율이 소음으로 들리기 시작하면
망막해진다.
Give Me Strength~~!!
망 막 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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